"길이 구부러진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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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구부러진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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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3> 낙동강 순례 다녀와서

정말로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4대강 살리기 사업이란 것이 마치 동맥경화증 환자의 좁혀진 혈관을 넓혀주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을 살리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멀쩡한 사람의 혈관을 느닷없이 마구 찟고 할퀴고 숙대겨대는 것이라면 어찌 사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저절로 잘 흘러가는 강을 난데없이 마구 파내고 긁어대고 막아놓는 것이라면 어찌 강을 살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나무가 베어 넘어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당신들은 알게 될 것이다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 아메리카 인디언 크리족의 예언

지난 1월 22일에 낙동강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밀양의 삼랑진 준설현장이나 함안보 건설 모습 정도만 봐도 그 처참한 파괴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천부지를 일궈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이 쫓겨난 자리에는 철거당한 집들의 잔해만 널부러져 있고, 소박한 삶의 꿈은 포크레인 작업 속에 매몰되고 있었습니다.

함안보 건설 현장. <헤드라인제주>
함안보 공사현장에는 ‘낙동강 살리기가 대한민국 번영1번지’, ‘준설하고 보 세워 생명력 있는 새물결 만들자’ 라는 현수막들이 곳곳에 나붙어 있었습니다. 홍보관에는 '활짝 웃어라! 대한민국 江들아!'라는 문구를 새겨놓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상상한 그 이상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라는 말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미래도 그 이상일 겁니다. 그러나 정부측에서는 장밋빛 환상을 그리고 싶겠지마는 저의 눈에는 온통 왁왁하고 암담한 미래일 뿐입니다.

그렇지요?
우린 서로 다른 상상을 하고 있지요?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을 상상해도 되겠지요?
당신이 파낸 그 자리가 당신들의 무덤이라는 것을!
- 졸시, 「4대강 개발, 우리가 상상한 그 이상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부분

강에서 파낸 토사들을 처분하는데 한계에 이른 정부는 농어촌공사를 시켜서 그야말로 ‘생논’에다 그 토사들을 산더미처럼 데미고 있습니다.

토사를 약 4m 높이로 쌓아놓고는 그걸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라고 버젓이 간판을 달고 있습니다. 기가 막혀서 말문이 닫힙니다.

아, ‘저 논이 강의 무덤이구나!’라는 탄식이 처절하게 다가옵니다. 뭇 생명들을 키울 생산의 땅이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상상해보십시요! 지평선이 보이는 1백만평의 황금들판이 폐허로 변해가는 모습을.

강바닥에서 뿜어올리는 엄청난 양의 토사. <헤드라인제주>
그런 꼴을 저는 평택에서도 보았습니다. 평택 대추리 황새울 그 너른 황금 들판을 2m 높이로 메꾸고 공군 활주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제주도 강정마을의 그 아름다운 해안을 매립해서 해군기지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개발이나 건설이라라는 이름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2007년 태풍 나리가 올 때 제주에서는 큰 물난리가 났습니다. 저는 그때 제주시 서사라 병문천 복개지 근처에 2층집을 빌어 살고 있었는데요. 2층에서 내려다본 밖의 모습은 그야말로 살풍경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물이 불어 눈앞에서 차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관자의 시선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아차! 1층에 서재로 빌어쓰던 단칸방 생각이 퍼뜩 생각이 난 것입니다. 물길을 헤치고 허위허위 내려가서 본 서재는 책꽂이 3단까지 이미 물이 차올라 있었습니다. 수백권의 책이 이미 잠겼고 겨우 몇십 권의 책만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현실의 시각입니다. 저도 수재민이 되면 2층에서 멀리 바라다보는 시선과는 엄청난 차이가 됩니다.

파헤쳐진 강이 범람하고 재앙이 오는 것은 절대로 방관자의 시각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도 현실로 닥치는 문제입니다. 태풍 나리가 병문천 복개라는 인재人災로 피해가 확대되었듯이, 4대강의 파괴라는 인재人災로 결국 강이 아프게 되고, 강이 아프면 결국 우리도 아프게 됩니다. 만물동근萬物同根입니다.

창녕에서는 우포늪을 보았습니다. 철새들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람사르 총회를 치렀던 곳이랍니다. 우포늪과 둑 하나 건너편에는 친환경 농업지구가 너른 평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251농가가 160ha의 논에 유기농업을 한답니다. 저는 여기에서 ‘생태보존과 친환경 농업의 공존’이라는 하나의 대안을 보았습니다. 직선적인 난개발의 파괴가 아니라 곡선적인 ‘반개발’의 보존이라는 대안을 말입니다.

직선은 과속을 부르고 과속은 사고를 낳습니다. 곡선은 일견 촌스럽고 못나 보이지만 느림과 나눔의 미학을 안고 있습니다. 길이 구부러진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걸 억지로 곧게 펴면 ‘도로道路’는 될지언정 결코 사람의 ‘길’이 될 수 없습니다. 굽이굽이 도도히 흐르는 저 강물을 전면적으로 대수술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 또한 우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반영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의 신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어 넘긴다면,
세상 또한 우리를 삶 밖으로 내동댕이칠 것이다.
-큰 구름(빅 클라우드)/ 카이오와 족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시인.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4.3관련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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