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기억 속에 묻어버리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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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기억 속에 묻어버리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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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훈 시인이 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5>강정의 눈물

물이 좋아 일강정
물 울어 일강정
소왕물 울어 봉둥이소 따라 울고
봉둥이소 울어 냇길이소 숨죽여 울고
냇길이소 울어 아끈천 운다
할마님아 하르바님아
싹싹 빌면서 아끈천이 운다
풍광 좋아 구럼비 운다
구럼비 울어 나는물 울고
나는물 울어 개구럼비 앞가슴 쓸어 내린다
물터진개 울고 지서여 따라 운다
요노릇을 어떵허코 요노릇을 어떵허코
썩은 세상아 썩은 세월아
마른 가슴 썩은 섬이 운다.
- 김수열의 시, 「일강정이 운다」 중에서


오늘 저의 모습은 서서히 온몸을 갉아먹는 암세포에 의해 이미 상처투성이입니다.

중덕바당 입구에 있는 저의 앞가슴인 커다란 바위들을 깨어 가지런한 돌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듣기로는 개발업체들의 사주를 받은 어떤 주민들이 굴삭기를 동원하여 깨뜨렸다고 합니다. 저의 뼈들이 이렇게 뽀사지고 있습니다.

강정천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습니까? 겨울철이라 수량이 적어서 물 흐르는 소리도 맥이 없습니다. 해군기지 현장 사무소 옆으로 양수기를 대어 물을 뿜어 올리고 있습니다. 주사기로 저의 동맥의 핏줄을 뚫고 피를 빨아올리고 있습니다.

바닷가 쪽으로 삼발이(테트라 포트) 수십 개가 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물속에 잠긴 그것들은 마치 소沼 귀신처럼 음산하게 버티고 들어앉아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저의 발을 자꾸 끌어당기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팔린 땅들에서는 작물들이 뽑히고 흙이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저의 살이 조금씩 저며지고 있습니다. 대지의 맥박이 점점 잦아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의 자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범섬 안쪽 바다에는 부표가 떠 있습니다. 해안 출입금지 표식입니다. 저의 몸이 이렇게 가두어지고 있습니다. 강한 완력으로 저를 떠밀어 해안선으론 더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점점 몸이 움추러들고 답답한 마음은 안으로 병을 키웁니다.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강정마을 중덕바다 앞에 설치된 테트라포드. <사진=김경훈 객원필진 © 헤드라인제주>

이제 몸에 피가 빠지고 뼈가 부서지고 살점이 도려진 채 반쯤 늪에 빠진 저를 거대한 면적으로 매장하려 합니다. 저는 안간힘으로 그걸 막아보려 하지만 저의 근력은 이미 힘이 쇠잔했습니다. 고스란히 덮일 처지에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저의 생명이 이렇게 조금씩 도륙되고 있습니다. 저의 미래는 앞으로 더욱 훼손되고 더더욱 처참히 파괴될 것입니다. 파괴의 시간은 눈깜짝 할 순간이지만, 복원이나 재생은 눈 감아 헤아려도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어떤 발굴이 있을 때 저의 몸이 노출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온몸의 뼈가 바스러진 채, 여기에 한 마을이 있었다는 걸, 여기에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참으로 아프고 슬프게 증언할 것입니다.

강정마을 중덕 해안가에 있는 바위들이 굴삭기로 인해 깨어져 있다. <사진=김경훈 객원필진 © 헤드라인제주>

이건 재앙의 시작입니다. 죽음의 논리가 파괴의 '쓰나미'가 되어 저를 덮쳐오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저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 해일은 비켜 앉은 당신이라도 쉬이 비켜서지 못할 만큼 거대한 파도를 몰아오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당신들, 제주도민이나 육지분들 모두에게 위해가 될 재앙입니다. 어떠한 군사논리나 경제사탕으로도 이 재앙을 합리화 시키지 못합니다. 이 재앙을 수수방관한 당신들은 방관자를 넘어 이미 공범자입니다.

강정마을 중덕바당에서부터
풍림콘도 뒤까지

써근섬부터 포구까지
내가 분명히 표시했으니

억지 부리지 마라
너희, 파묻으려는 자들아

소유권 주장하려거든
나와 피터지게 싸워야 할 것이다
졸시, 「영역표시」 전문

그러나, 피터지게 싸워야 할 저에게, 이제 얼마 힘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산소호흡기나 링거주사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아, 당신은 지금 저를 보고 있습니까? 저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저의 아픔을 아파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호흡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헌혈이나 수혈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문안이라도 한번 와주십시오. 저는 힘차게 다시 살아숨쉬고 싶습니다. 다시 살아 당신의 싱싱한 발걸음을 저의 온몸으로 받아안고 싶습니다. 저는 상처받은 온몸의 눈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이 제 궤도를 운행하듯이, 대지와 바다의 뭇 생명들이 제자리에서 제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바닷속 연산호와 붉은발말똥게와, 강정천 은어와 원앙과, 바닷가 층층고랭이와 방풍초와, '중덕'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와 그 개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해군기지 낯선 이물질 때문에 아파하지 않고 옛날처럼 오순도순 살게 해주십시오!

저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저를 당신의 기억 속에 묻어버리지 마십시오! <헤드라인제주>

김경훈 시인이 시(詩)로 전하는 세상살이 이야기는...

   
김경훈 시인. <헤드라인제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4.3이야기, 현시대의 시사문제, 책을 읽은 후의 느낌, 삶의 의미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시(詩)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프로필.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시집으로 '운동부족' , '한라산의 겨울', '고운 아이 다 죽고', '삼돌이네집', '눈물 밥 한숨 잉걸'이 있고 마당극대본집으로 '살짜기옵서예'가 있다.

제주4.3관련서인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와 ‘그늘 속의 4.3’,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인들’을 공동집필했다.

현재 제주4.3사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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