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랑했던 청년'...故 양용찬 열사 추모 기림비, 모교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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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사랑했던 청년'...故 양용찬 열사 추모 기림비, 모교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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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 총학생회, 캠퍼스 내 양용찬 열사 기림비 제막식
현경준 전 총학생회장 "제주 지키기 위해 양 열사 용기 잊지 않을 것"
ⓒ헤드라인제주
17일 오전 11시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 앞 잔디광장에서 개최된 '제주사랑 민주사랑 양용찬 열사 기림비' 제막식 ⓒ헤드라인제주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 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 2차종합개발계획 폐기를 외치며, 또한 이를 추진하는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

30년 전,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를 외치며 온 몸에 불을 사르고 산화해 간 고(故) 양용찬 열사의 유서다.

제주를 사랑했던 양 열사를 기리고 그 뜻을 되새겨 후대까지 이어가기 위해 그를 추모하는 기림비가 제주대학교 캠퍼스 내에 세워졌다.
 
제주대학교 총학생회는 17일 오전 11시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 앞 잔디광장에서 '제주사랑 민중사랑 양용찬 열사 기림비' 제막식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양 열사의 친형 양용호씨, 현경준 제주대 53대 총학생회 회장, 양우석 54대 총학생회 회장, 고광성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대표, 김택진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전 대표, 김용택 제주대학교민주동문회장, 위성곤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산발적인 눈이 내리고 영하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였지만 참가자들은 제막식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자리에 도착해 양 열사를 기리고 있었다.

기림비는 지난해 제주대학교 제53대 물결 총학생회가 제주사랑과 민중사랑에 대한 양용찬 열사를 추모하고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제작했다. 당초 지난해 제작됐으나 설치 장소 등의 문제로 이번에 제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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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제막식에 앞서 양 열사를 추모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지난해 양 열사 30주기에 명예졸업 증서 수여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현경준 제주대 53대 총학생회 회장은 이날 제막식 추모사를 통해 "열사여 이제야 우리가 이렇게 모였다. 3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열사께 졸업증서와 열사를 기억할 기림비를 바친다. 진앙터 이 땅에서 찬란한 미래를 꿈꿨을 당신께 우리의 미약한 노력을 바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인문대학에 입학해 이곳을 진앙터라, 인문대학 학생을 진앙인이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한참을 해맸는데, 7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조금이나마 왜 진앙이라 하는지 알겠다"며 "당신의 울림 그리고 우리 선배들의 울림이 만든 사회를 향한 지진이었고 그 중임이 바로 진앙이었다"고 했다.

현 전 회장은 "당신은 우리에게 용기를 남겼다"며 "숨지 않겠다. 당신을 기리는 이 마음을 기억해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 우리의 제주가 제주다운 모습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의 용기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양 열사 산화 당시 제주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위성곤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그간 30년 동안 열사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우리 제주는 개발과 보전 그 두가지를 두고 지역내에서 많은 갈등을 이어갔고 지금도 그렇다"며 "양 열사는 지속가능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제주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줬다"고 말했다.

이어 "열사가 원했던 모습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또다른 모습이 되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 안에서 공론을 통해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제주의 지속가능함을 늘 고민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기림비에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림비가 세워져서 후배들에게 이야기가 전해지고 다시 논의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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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준 제주대 제53회 총학생회 회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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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전 회장이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는 모습. ⓒ헤드라인제주

고광성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대표는 "나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다 오다가 잠깐 양 열사의 묘에 들릴까도 했는데...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고 말 끝을 흐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 대표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 모두에게 노력과 관심을 가져주셔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양 열사의 후배 총학생회에게 너무 감사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며 "오늘 이 자리가 총학생회와 양 열사를 잇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 열사의 친형 양용호씨는 "30년 동안 우리 가족은 양용찬이 내 동생이었다는 것에 대해 조금 움츠렸었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양 씨는 "그런데 오늘을 계기로 내 동생이 양용찬이다라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서 "기림비 제막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와 수고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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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열사이 친형 양용호씨가 제막식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한편, 양용찬 열사는 1985년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입학한 '85학번'이다. 휴학 후 군복무를 마친 후인 1989년 복학하지 않고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에 가입해 지역사회 운동에 본격 참여했다. 1990년에는 서귀포문제 대책위원회 활동을 통해 서귀포 지역 개발과 수입농산물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분신 항거를 한 시점은 1991년이다. 제주 최대현안은 '제주도개발특별법'이었다. 제주사회에는 이의 반대투쟁 분위기가 크게 확산돼 있었다.

제주도와 정부는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공청회를 연이어 강행했고, 그해 정기국회에 이 법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특별법이 통과되기 바로 한달 전인 그해 11월 7일 오후 7시40분쯤, 25살 청년 양용찬은 서귀포나라사랑청년회 사무실 3층 옥상계단에서 온 몸을 사르는 분신항거를 했다.

그의 희생은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투쟁을 범도민적 운동으로 승화시키며, 더욱 고조시키는 전환점이 됐다. 끝내 특별법은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됐지만,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 제주도를 원한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그의 정신은 오늘에까지 이어내려오고 있다. 

제주대학교는 지난해 12월 양 열사에게 제주대학교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명예졸업장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와 제주대 민주동문회.총학생회.인문대학생회의 요청에 따라 대학 학무회의에서 이를 심의해 결정했다. 

명예졸업증서는 학사과정 입학 후 부득이한 사유로 졸업에 필요한 과정을 이수하지 못했으나 국가 또는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 수여한다. 

양 열사 명예졸업장에는 "사학과에 입학한 후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지 못하였으나 지역운동의 헌신적인 실천을 통해 사회발전에 기여하였기에 명예졸업증서를 수여"라고 돼 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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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랑 민주사랑 양용찬 열사 기림비' 제막식.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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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랑 민주사랑 양용찬 열사 기림비' 제막식.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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