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나는 <제주장애인자립센터>에 입사하게 되었고 처음 맡은 업무가 보장구 수리였다. 업무 내용은 간단한 타이어 정비부터 배터리, 컨트롤러 등 운행에 필수적인 부분까지 전반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 사실 나 역시 중증장애인이지만 보장구를 이용하지 않아서 그 동안 보장구라는 것이 그저 장애로 인한 몸의 불편함을 줄여주는 것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장구 수리를 하며 업무를 위해 여러 장애인을 만나보니, 내가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장애인에게 있어 보장구는 신체의 일부분이자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인 것이었다.
이처럼 중증장애인의 다리가 되어주는 전동휠체어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서는 적절하고 꾸준하며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전동휠체어 이용자들이 중증의 장애인이다 보니 고장이라도 나게 되면 집안에 갇히게 되는 등 생활 범위가 축소·제한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약 이동 중일 경우에는 여러 가지 사고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보장구 수리를 하다 보니 너무나 낡은 보장구를 교체하지 못하고 무리해서 계속 수리해서 쓰는 장애인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이런 위험천만한 낡은 보장구를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4월부터 전동휠체어 지급 규정에 도수근력검사가 추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도수근력검사(Manual Muscle Testing)란 쉽게 이야기하면 손을 이용하여 근력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직접 장애인들을 만나보니 이 검사를 통해 근력을 인정받아도 실제 상황에서는 전동휠체어밖에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데 있다. 이 검사로 인해 전동보장구 처방을 못 받을 경우에는 2백만 원이 넘는 전동휠체어를 자비로 부담하여야 한다.
하지만 중증의 장애로 인하여 별다른 경제활동을 못하고 살아 온 이들에게 그 구입비용은 큰 경제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전동보장구에 의지하여 어렵게나마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이 낡은 보장구를 교체하지 못하고 수리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장애인의 현실을 외면한 채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제도와 기준으로 인한 폐해인 것이다. 중증장애인들의 힘겨운 삶만큼이나 낡아버린 전동휠체어를 어루만질 때마다, 장애인의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중증장애인의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 낡고 오래된 보장구를 꼼꼼히 수리하며 스스로 전동휠체어 전문의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낡은 보장구를 타고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서는 중증장애인의 생명을 지키는 일, 이것이 내가 이 직업에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보장구수리를 허투루 할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이다.<김한종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임>
장애인인권 이야기는...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앞으로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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