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지도자들의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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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임창준 / 세계일보 편집부국장

 민주당 모 최고위원이 지난해 말 수원역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헛소리하는 이명박 정권을 확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원색 비난했다.

정치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천 최고위원의 언행은 정치인의 것이 아니다. 여권은 이에대해 ‘패륜아 발언’이라며 들고 일어났다. 필자가 현정권에 대해 썩 호의적이진 않지만, 적의(敵意)가 아무리 커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 대해 금도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산다고들 한다. 연설이나 대화로 상대방을 설득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야당 정치인이 대통령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의무겸 권리에 속한다. 대통령이 잘못할 경우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의 말에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생긴다.

오죽하면 국회를 유해단체로 지정해 청소년들이 뉴스에서 보지 못하도록 하자는 비아냥이 나올까. 부끄러운 우리나라 정치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최고위원의 발언파문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는 정치권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 대표적인 지도층이다.

그는 법과 도덕의 표상이어야 할 판사·변호사, 그리고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정치에 입문해서는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와 4선 의원을 지냈고 지금은 제1 야당의 최고위원이다. 그는 다음 대권 도전에도 기웃거리고 있다. 보다 높은 자리를 향해 가는 길은‘막말’과‘상소리’로 포장된 길이 아닐게다.

한나라당 안상수 전 원내대표도 얼마전 여성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연예인 성형이야기를 하며“성형을 너무 많이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룸살롱에 가면 자연산을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는 여성비하 발언으로 여성계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정치인들의 이같은 저급 발언도 문제지만, 한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정책에 있어서 시대적 상황과 자기가 처한 정치적 위치에 따라 말바꾸기를 밥먹듯 하는 것은 더욱 문제다.

재협상 등 우여곡절을 겪은 한·미 FTA는 이제 우리나라 국회 통과라는 마지막 관문만 남겨 놓고있다. 하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을 중심한 진보세력의 반대가 거센 탓이다. 특히 손학규 민주당 대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수문장을 자처하며 철통경계를 서고 있다. 원외에선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이 반대여론 몰이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이들 야권의 세 ‘잠룡’이 노무현 정권시절 한·미 FTA 추진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동업자였거나 열렬한 FTA 찬성론자였다는 점이다. 과거 발언록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소신이 얼마나 확고했는지 알 수 있다고 FTA를 지켜본 한 중앙언론의 중견간부는 들추고 있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 탈당 직전인 2007년 1월 한 강연회에서 “한·미 FTA를 확고한 의지로 조속히 체결하고 한·일, 한·중, 한·EU의 FTA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TA 지상주의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정 위원은 한술 더 떴다.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이었던 2006년 3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FTA는 상호방위조약과 함께 50년간 양국관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 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유 대표의 발언은 압권이다.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7년 3월 미국을 방문해 “한·미 FTA는 체결됐으면 한다. 정부 각료로서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뿐 아니라 경제학자로서 내 소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미 FTA 전도사였던 이들은 정권이 바뀌자 표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소신 바꾸기는 내년 대선에서 민노당, 진보신당 등 한·미 FTA 반대세력과의 공조를 위한 카드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일종의 정치공학적인 '좌클릭 마케팅'인 셈이아닐까 한다. 목소리와 액션은 크지만 이들의 반대논리가 설득력이 떨어지는 까닭이다.

임창준 / 세계일보 편집부국장.<헤드라인제주>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정동영 최고 의원도 이를 지지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제주에 내려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사과하며 현재 해군기지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려면 정치적 비전 제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에게 신뢰를 줘야한다. 국가미래를 좌우할 정책선택을 하면서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자신의 처한 시대적. 상황적 고려에 따라 그때그때 카멜레온처럼 소신이나 정책을 바꾸는 정치인들이 많다면 썩 유쾌한 일을 아닐 듯 싶다. <헤드라인제주>

<임창준 / 세계일보 편집부국장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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