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마술과 낮은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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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마술과 낮은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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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경아 / 서귀포시청 기초생활보장팀장 
김경아 / 서귀포시청 기초생활보장팀장  
김경아 / 서귀포시청 기초생활보장팀장  

대학 3학년, IMF외환위기를 맞고 칼바람같은 구조조정의 바람속에 신규채용이 끊기고 몇 년간 임시직을 전전하며 취업준비생으로 돌고 돌다 2003년 고대하던 공직에 들어왔다.   
 
공직에 들어오면서 수시로 듣는 말이 “공직자는 항상 고객에게 친절해야 한다”였다. 하지만 초창기 취직했다는 안도감과 입문공직자로서의 초심은 매일 찾아오는 알콜중독의 민원인과 전화로 들려오는 욕설, 임신 막달에 찾아온 교도소 출소자의 묻지마 행패등을 겪으며 민원인에 대한 방어적 태도만을 갖게 되었고 과중한 업무에 빠른 처리에만 급급했다. 내마음은 돌처럼 점점 굳어져만 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민원인의 피드백도 좋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악순환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복지 관련 상담을 통해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은 답변을 듣고 돌아가는 어르신의 축쳐진 뒷모습을 보며 얼마 전 내가 방문했던 어느 기관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친구와 동행했는데 과실로 일어난 일임에도 민원을 처리하는 친구는 위축되어 있었고, 안쓰러움에“행정물”을 먹었다는 내가 대신 직원분에게 추가질문을 했다. 그러나 무미건조한 단답형 답변에 말문만 막혔었다. 그 직원분은 내게 나쁜감정이 없었고 그저 본연의 업무를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내 친구와 나는 위축되고 속상했다. 

‘어르신도 마찬가지였으리라....사정이 있어 생계가 어렵게 되고 어쩔수 없이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방문해야 하는 주민센터의 문턱은 오죽 높았을 것인가? 더구나 방어적 태도로 업무의 답변을 하는 젊은 공무원 앞에 어르신의 어깨는 축져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이 공간에서 기댈 곳은 복지창구였을텐데 말이다. ’

순간 너무 죄송했다. 그리고 어르신의 상담 내용을 다시 되새기며 부가적인  다른 서비스라도 차후 연결해 드렸다. 원래 기대한 만큼의 지원은 아니었지만 얼굴은 환해지셨고 고맙다 하셨다. 서비스외에 ‘공감’이란 영양제가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나는 다짜고짜 큰소리를 치시거나 연신 미안하다 하시며 어색하게 
다가오시는 다양한 내 고객들에게 먼저 차 한잔을 드리고 말씀을 들어드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불만 민원이 줄고 신기하게도 민원응대 시간이 짧아졌으며  여유도 생겼다.  ”차 한잔의 마술“이다. 

여전히 제도권 안에서 힘들게 하는 소위 악질민원도 있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단호할 때도 있다. 때론 어렵게 고민고민하다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흡족한 해답을 드리지 못 할때도 있다. 

그러나 난 어렵게 찾아오시는 고객분들에게 높아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 그나마 낮은 문턱이 되고 싶다. 나의 주된 업무가 복지파트다 보니 나를 통해 지원되는 서비스는 그분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경아 / 서귀포시청 기초생활보장팀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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