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통계를 깨워라: 데이터가 그리는 제주의 새로운 지도

[지역, 보다!] (14) 오동균 박사/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

2026-10-20     오동균

지난 몇 년간 제주도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폭발적인 인구 유입과 유출, 관광객의 증가와 감소, 그리고 그에 따른 난개발, 교통 체증, 쓰레기 문제 등 성장통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제주 지역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길을 찾아야 할까? 오랫동안 행정과 정책의 판단을 지배해 온 경험과 직관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복잡해진 지역사회의 문제를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 목소리가 크다고 주장이 옳은 것은 아니며, 오래된 경험이라고 언제나 유효한 것도 아니다. 이제는 감과 주장에 앞서 데이터를 살펴야 한다. 통계는 선택의 근거를 제공하고, 익숙한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오동균

현재 중앙정부(통계청, 한국은행 등)와 제주특별자치도는 매월 방대한 양의 통계 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인구 동향부터 시작해 소비자물가지수, 지역내총생산(GRDP), 관광객 통계, 농어업 통계, 카드 매출액, 심지어 생활폐기물 발생량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민낯을 보여주는 지표들은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귀중한 데이터들은 종종 관공서의 캐비닛 속이나 홈페이지의 복잡한 카테고리 속에 ‘죽은 숫자’로 방치되곤 한다. 통계는 만들어지는 것보다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지역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통계의 가치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에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행정은 통계를 정책의 사후 보고서가 아니라 사전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교통 문제를 보자. 도로가 막힌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어느 시간대에 어떤 방향으로 차량이 집중되는지, 출퇴근 차량과 관광객 차량의 비중은 어떠한지, 대중교통 노선과 배차 간격은 실제 이동 수요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해법은 달라진다. 이런 자료를 함께 분석한다면 거대한 교통시설을 새로 건설하는 방안뿐 아니라 신호체계 조정, 좌회전 차로 개선, 배차 간격 조정과 같은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환경 정책도 마찬가지다. 생활폐기물의 발생량과 배출 유형, 지역별·계절별 변화를 분석하면 처리시설 확충에 앞서 감량과 재활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통계를 활용해 문제를 예측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먼저 투입할 것인지, 정책 시행 후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해야 한다. 증거에 기반한 행정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재정의 효율성과 행정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둘째, 통계를 지역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관광과 1차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제주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다.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겠다는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에 어떤 수요가 있고, 어떤 자원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읍면동별 인구구조와 가구 형태, 소비 패턴, 상권 변화는 지역경제의 방향을 읽는 중요한 단서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는 지역에서는 생활 서비스와 돌봄 수요가 커질 수 있고, 청년과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지역에서는 새로운 소비와 주거 수요가 나타날 수 있다. 농어업과 관광업의 생산·소비 데이터를 연결하면 지역 생산물이 지역 안에서 얼마나 소비되고 있는지, 부가가치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디로 빠져나가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소상공인과 창업자에게 복잡한 통계표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를 해석하고 실제 사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행정과 연구기관·상공회의소 등이 지역별 상권 변화와 산업 동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면, 데이터는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지역경제의 실질적인 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
  
셋째, 통계는 도민의 참여와 행정에 대한 감시를 뒷받침하는 공공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환경 정책을 둘러싼 갈등에서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는 쉽게 충돌한다. 하지만 논쟁이 감정과 주장에만 머물면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끝나기 쉽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객관적인 자료다. 개발사업의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 지역 주민의 생활 여건 변화, 공공재정의 부담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지하수 이용량과 수위 변화, 폐기물 발생 추이, 주거비와 교통 여건, 주민의 삶의 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면 사업의 필요성과 한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쪽도, 문제를 제기하는 쪽도 같은 자료를 놓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통계가 언제나 중립적인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조사하고 어떤 지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현실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평균값은 지역과 계층 사이의 격차를 가릴 수 있고, 경제성장 지표는 성장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누락된 현실은 없는지, 자료의 한계는 무엇인지 따져 묻는 능력이 필요하다. 도민의 데이터 활용 능력과 행정의 정보 공개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제주형 데이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공기관과 연구기관에 분산된 자료를 연계해 제주의 특수한 여건을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관광객에 따른 계절적 수요, 물류비 부담, 지역별 인구구조의 차이 등은 전국 단위 통계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데이터 플랫폼의 고도화와 함께 자료의 표준화, 정기적인 갱신,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 개인정보와 민감한 정보는 철저히 보호하되, 공개 가능한 자료는 민간과 연구기관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 청년 창업가와 지역기업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와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통계는 행정의 업무 자료를 넘어 지역의 혁신을 촉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다만 플랫폼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모았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활용해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성과의 기준이어야 한다.

통계는 과거를 기록하는 숫자이면서 현재를 진단하는 도구다. 그러나 숫자가 미래를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통계가 가리키는 방향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하며, 때로는 숫자에 드러나지 않는 주민의 경험까지 함께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데이터는 판단을 돕지만, 무엇을 지키고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도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통계는 잠든 숫자에 불과하고,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통계는 지역의 자산이 된다.
  
이제 잠자는 통계를 깨워야 한다. 단순히 숫자를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숫자와 현장을 연결하고, 분석을 정책으로 이어가야 한다. 제주의 새로운 지도는 통계표 속에 숫자로 박제된 모습이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제대로 그려질 수 있다. 잠자던 통계가 깨어나 제주의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가 함께 그려나갈 제주의 지도는 비로소 흔들림 없는 미래를 가리키게 된다. <오동균 박사/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

 

제주의 담론을 잇는 연재 '지역,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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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보다!'는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의 필진이 참여하는 칼럼 코너로서 지역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내고, 지역의 가능성과 미래를 탐색하는 공간입니다. 현장 경험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체, 사회보장, 경제, 일자리, 환경, 에너지, 문화, 정치참여 등 다양한 주제를 지역의 관점으로 다루면서 지역을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사회 변화를 모색하는 담론을 독자들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