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지역의 생존과 미래는 결국 ‘사람’에 있다
[지역, 보다!] (13) 문만석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산업의 생산 방식은 물론 지식의 생산과 유통, 인간의 일하는 방식까지 빠르게 재편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글을 쓰고 자료를 분석하는 등 과거에는 상당한 시간과 전문성을 요구했던 일들을 평범하게 해낸다. 이제 세상은 기술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제 AI 시대가 도래했고, 이 전환의 시대에 지역의 미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인공지능 산업을 유치하고, 첨단 시설을 구축하며, 디지털 인프라를 확충하면 지역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일까. 그러나 기술이 발전한다고 지역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격차가 생길 수도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지역이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지까지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문제의 해답은 결국 사람에 있다. 지역의 자원을 발견하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며, 기술을 지역의 현실에 맞게 활용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몫이다.
AI 시대는 지식의 양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시대이다.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얻는 일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쉬워졌다.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무엇이 유용한지 판단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며, 서로 다른 지식과 경험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AI가 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눈앞의 현상을 넘어 문제의 맥락을 읽는 통찰력, 기술이 내놓은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판단력, 다양한 사람과 협력해 실행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더욱 필요하다. 여기에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동체의 문제를 자기 일처럼 받아들이는 공감 능력과 책임감도 빼놓을 수 없다. 기술이 인간이 하는 많은 일을 대체할 수 있지만, 무엇을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할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이 결정해야 한다.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지역이 첨단 산업 유치와 데이터센터 구축,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지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시설을 유치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만으로 지역의 자생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경쟁력은 다른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 생활양식, 주민들의 경험 속에는 외부에서 그대로 가져올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담겨 있는 법이다. 이러한 가치를 발견하여 새로운 산업과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힘은 그 지역을 이해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지역 인재의 역량에 달려 있다.
제주에도 같은 해법이 필요하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는 관광자원이자 지역의 정체성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관광상품으로 소비하는 것과 지역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산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AI를 활용해 관광객의 이동과 소비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관광의 성과가 지역 상권과 농어업 및 마을공동체에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 데까지 데이터가 스스로 답해 주지는 않는다. 지역의 생태적 가치를 지키면서 주민의 소득과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해법은 현장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실천에서 나온다. 기술은 보편적으로 확대될 수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미래의 기회로 바꾸는 능력은 그 지역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에게 있다. 이것이 AI 시대에도 지역이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지역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반복된 담론이다. 문제는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렵게 키운 인재가 지역에 머물 이유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청년에게 지역에 남으라고 말하기 전에 청년의 역량을 발휘할 일자리를 준비해야 하고, 실패를 감수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문화와 여가를 누리며 가족과 함께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러한 준비 없이 인재 유출을 걱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지역 발전의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 인재를 얼마나 많이 양성했는가를 넘어 그들이 지역에서 어떤 기회를 얻고,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며, 다음 세대의 성장으로 그 성과를 어떻게 연결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기업, 지역의 중간지원조직이 각자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육과 일자리, 창업과 실험, 문화와 생활의 기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청년이 지역의 문제를 직접 발견하고, AI를 활용해 해결책을 실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성과가 실제 사업과 일자리로 이어지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지역의 작은 기업과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조직은 AI 활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현장이 될 수 있다. 지역 혁신은 소수의 첨단 전문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현장과 전문성이 연결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AI 시대의 지역 정책은 기술을 도입하는 정책에서 기술을 활용할 사람과 환경을 만드는 정책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첨단 산업과 인프라에 투자하는 일 못지않게 교육과 인재의 성장, 지역의 실험과 도전을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성과를 단기간에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사람에 대한 투자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사람은 시설처럼 한 번의 투자로 완성되지 않고, 배우고 도전하며 실패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그 성장이 지역의 일자리와 산업,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시간과 신뢰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지역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바로 이 긴 과정을 견디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을 키우고, 그 사람이 지역에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만들며, 그 성과가 다시 지역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인재가 떠나지 않는 지역을 넘어, 인재가 찾아오고 도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지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AI 시대의 지역 경쟁력은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기술을 통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며, 사람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곳에 있다. 지역의 발전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활용해 지역의 내일을 만들어갈 사람에 달려 있다. 인재가 모이고, 그 인재가 다시 새로운 사람을 불러 모으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기술의 도약대 위에서 ‘사람’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지역이야말로 AI 시대의 파고 속에서 눈부신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역의 생존과 미래는 ‘사람’에 있다. <문만석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
제주의 담론을 잇는 연재 '지역,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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