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의 제주시론] 감귤산업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국가의 수준은 보통 후진국, 중진국, 그리고 선진국으로 나눈다. 이렇게 나누면 보통 후진국에서 중진국까지의 간격과 중진국에서 선진국까지의 간격이 엇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도 착각이다.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가는 난이도가 5 정도 된다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가는 난이도는 5만 정도이다. 그만큼 어렵다. 왜 그런가? 중진국 수준까지는 선진국에서 열어 놓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선진국에서 포착한 관념(개념)을을 따르고, 선진국에서 만든 장르를 채워주고, 선진국에서 발휘하는 선도력을 따라간다.
중진국까지의 수준은 있는 길을 가는 단계다. 이미 있는 이 길은 당연히 선진국에서 열어 놓았다. 이렇듯 이미 있는 길을 가는 단계와 없는 길을 가는 단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선진국과 후진국과의 교체란 패러다임이 정해져 있는 조건 속에서라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발휘하는 시선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철학이 국가발전의 기초다라는 것이다. 그 말인즉 국가 발전은 철학적 시선이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 철학적 시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상상력이나 창의성이 발현된다.
상상력이나 창의성이 발현되는 높이의 시선 그것이 지성적 시선이고, 그 지성적 시선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이 바로 철학이다. 우리는 중진국 상위 수준에 도달한 이후 경제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선진국에 진입하였지만 거의 모든 분야가 선진국 수준으로 진입하느냐 진입하지 못하느냐 하는 경계선 있다. 이 상황에서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지를 각성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매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상승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정체하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다.
감귤산업이 발전한다는 것은 사회 경제적 조건에 맞는 이상(비전, 어젠더)을 설정하고, 그 이상을 향해서 모든 농업인은 물론 유관단체가 비교적 합치된 힘으로 뭉친다는 뜻이다. 이때는 지성적 능력을 발휘해서 그 사회 경제적 조건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수없이 많은 어려움과 소란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정도 규모의 산업화를 이룩하였다. 산업화가 필요했던 사회 경제적 조건과 산업화라는 목표가 일치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감귤산업은 그때그때에 맞는 이상을 잘 설정하고,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것을 잘 완수했다. 이 완수의 결과를 다른 말로 하면 발전이라고 한다. 문제는 지금 부터다. 누가 보더라도 감귤산업은 정체가 시작되었다. 이미 후퇴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계를 느끼거나 정체되고 있다면 문제는 분명하다. 감귤산업을 이끌어나갈 꿈과 이상이 설정되지 못했거나 설령 되어 있다고 해도 현실적인 요구와 일치하지 않은 것이다.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바로 선진화다.
문화적이고 철학적이며 예술적인 차원의 시선이 주도권을 발휘하는 단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선진화라는 목표를 설정하는 과업에서 아직 성공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것 자체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해방이후 오늘날 까지 해온 모든 과제는 눈에 보이고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다. 선진국들이 이미 한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비교적 구체적으로 알려질 수 있었다. 따라 하기 단계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힘을 모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지 않았다.
우리 앞에 이미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진화는 목표자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어렵다. 그것이 문화적이고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시선을 구체화시키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것은 선도력을 형성하는 일이고 세계의 흐름을 관념의 높이에서 포착하는 일이다. 이 선진화라는 목표를 채우는 내용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구체적이지 않아서, 현실로부터 벗어나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하기도, 힘을 모으기도 쉽지 않다.
선진화는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지성적 높이에서라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귤산업은 투명한 벽 앞에 서있다. 그 것은 철학적 시선으로만 넘을 수 있는 벽이다. 지성적이고 문화적인 높이로만 넘을 수 있는 벽이다. 정체를 알기 힘든 추상적이고 투명한 벽 앞에 서서 당황하고 있다. 각자 자기 틀에 갇혀서 낡고 병든 것을 모르기 때문에 서로 핏대를 세우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 틀로만 세계를 볼 줄 알지, 유동적 세계 안에서 미래를 향한 목표를 설정하는 지성적 능력을 보일 줄 모른다.
누구든 신념화된 자기 소리만 해대는 사람은 일단 지적이지 않다. 이런 사람에게 현혹되면 안 된다. 이제는 썩은 틀들을 폐기처분해야 한다. 그래서 선진화라는 새로운 목표를 구축하고 이 시대를 건너가야 한다. 이 정도로만 살다 갈 수는 없다. 공을 이루었으면 그것을 차고 앉아 거기에 머물려 하지 마라(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자기가 이룬 공功을 차고 앉아 거기에만 머무르려 하거나, 그 공을 이룰 때 사용했던 방법만을 고집 부려하지 말라는 노자의 경고다. 그것은 찌질 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영웅은 공을 이룬 다음에 다음 공을 향해 나아가는 동적인 태도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