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문제 없다"던 제2공항 갈등조정협의회 통합안, '철회'...슬그머니?
[해설] 민선 9기 도정 출범 100일 기자회견, 제2공항 입장은
'환경평가법 협의회→도 조례 협의회' 통합운영안, 은근슬쩍 변경
"2개 기구 따로따로 만든다"...도조례 협의회, 기능.역할 축소
한 달여 만에 방침 철회에도…변경 이유·법적 근거 논란엔 침묵
법적 근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제주 제2공항 갈등 해소 전담기구의 통합 운영 방침이 한 달여 만에 철회됐다. 그것도 별도의 설명이나 해명도 없이 사실상 은근슬쩍 사라졌다.
그동안 환경영향평가법에 근거한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의 기능과 역할을 제주도 조례에 따라 구성되는 가칭 ‘제2공항 갈등조정협의회’가 겸하도록 하는 통합 운영안을 제시했던 제주도정이 사실상 기존 방침을 내려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제2공항 갈등 조정과 관련해서는 두 개의 협의회가 각각 별도로 구성돼 이원화된 체계로 운영될 전망이다.
위성곤 제주도지사는 7일 오전 제주도청 4층 탐라홀에서 민선 9기 출범 100일에 즈음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2공항 갈등해소 현안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위 지사는 기자회견에서 "갈등 현안은 오직 도민의 뜻이라는 경청의 열쇠로 풀겠다"면서 "도민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스스로 판단하실 수 있도록 하겠고,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도민 의견 수렴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9월 8일 발표했던 '제2공항 갈등해소 3대 방침'의 목표점을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3대 방침’은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제출 즉시 중점평가사업 지정 및 갈등조정협의회 구성 △주요 쟁점에 대한 전문기관 교차검증 △도민 결정권 행사를 위한 의견 수렴으로 요약된다.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 제출되면 즉시 제2공항을 중점평가사업으로 지정하고, 전문기관을 확대해 주요 쟁점에 대한 교차검증을 실시하는 한편, 도의회 동의 절차에 앞서 도민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갈등 해소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이번 위 지사의 입장에서는 3대 방침의 절차 진행을 전담할 기구 운영 방식은 확연한 변화가 있었다. 통합적 기구 운영 방식에서 두 개 기구를 동시에 운영하는 이원화 방식으로 변경된 것이다.
당초 제주도는 ‘제주도 공공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조례’에 근거한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하고, 환경부 예규에 따라 중점평가사업 지정과 함께 구성되는 환경영향조정협의회의 기능과 역할까지 맡기는 통합 운영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사무를 위임받아 일원화되는 갈등조정협의회(도 조례)는 단순한 도민의견 수렴 방법 결정 등의 역할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발표 전에는 항공 수요와 주민 보상, 상생 대책 등 종합적인 쟁점을 다루고, 초안 발표 후에는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의 지위를 겸해 환경 검증까지 맡는다는 '포괄적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3대 방침이 발표됨과 동시에 법적 근거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조례에 따라 구성된 갈등조정협의회가 환경영향 갈등조정 기능까지 겸하도록 하는 것이 적법한 것인지, 제주도 조례에 근거해 만든 협의회에서 국책사업인 제2공항 관련 전반에 대해 다룰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 쟁점인 기능 통합 논란에 대해서는 9월 중 ‘제주도 환경영향평가 등에 관한 협의업무 처리지침’을 마련하고, 도 조례에 따라 구성된 갈등조정협의회가 환경영향 갈등조정 기능까지 겸하도록 하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쟁점인 도 조례에 따른 협의회의 역할이 제2공항 사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의 적법성에 대해서도 “‘인·허가 문제’ 등을 다룰 수 있도록 돼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위 지사는 9월 기자간담회에서도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강조했다.
◇ 추석 기점 달라진 분위기..."협의회 두 개 체제로"..."'룰' 만드는 기구로"
하지만 제주도정의 이 같은 완고한 입장은 지난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감지됐다.
우선 도 조례 협의회의 기능과 역할을 축소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정은 해당 협의회를 “단순한 자문기구”라고 규정했고, 위 지사는 추석 연휴 방송대담에서 “찬반을 결정하는 기구가 아니라 ‘룰’을 만드는 기구”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제2공항 사업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역할론을 강조해온 것과 크게 대비되는 것으로, 사실상 입장이 선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갈등조정협의회 통합운영계획의 철회로까지 이어졌다.
위 지사는 “중점평가사업으로 지정되면 환경영향평가법에 근거한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해 환경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겠다”며 “또한 도민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를 폭넓게 논의할 수 있도록 가칭 ‘제2공항 갈등조정협의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을 종합하면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협의회와 도 조례에 근거한 협의회를 각각 구성하겠다는 의미다. 사실상 그동안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완강하게 고수해온 제주도정의 기존 통합운영 방침이 철회된 셈이다.
결국 갈등조정협의회의 구성 방식과 역할을 둘러싼 적법성 논란은 기존 통합안이 철회되고 ‘이원화 체계’가 제시되면서 일단락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 방침 변경했으면도 아닌척?...왜 두루뭉술한 메시지만?
하지만 이번 일련의 논란 과정에서 제주도 당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입장을 변경하면서도 여전히 두루뭉술한 메시지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발표와 비교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바뀌었는지, 또 왜 변경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률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아직까지 제주도 관계 부서의 공식적인 입장도 내놓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도의원은 “오늘 도지사 발표 내용 전문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한참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한 달 전 발표 내용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라며 “그동안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던 갈등조정협의회 통합운영계획을 철회했다면 왜 철회했는지, 혹시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뒤늦게 판단했다면 그렇다고 그 이유를 솔직하고도 소상하게 설명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룰을 만드는 기구’라는 발언도 마찬가지”라며 “당초 제시한 역할보다 기능을 축소했다면 왜 ‘룰을 만드는 기구’ 정도로 운영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설명도 빠져 있으니 도민들께서는 마치 도정이 잘못 판단한 부분을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며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