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훈의 리뷰&칼럼] 만장굴 앞에서 만난 '유산, 그 너머로'

2026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기념식 & 실경공연

2026-10-06     김대훈

세계유산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법은 관객의 발걸음을 유산의 문턱까지 이끄는 일이다. 지난 10월 3일 저녁, 2026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기념식과 실경공연이 김녕리 만장굴 입구 특설무대에서 열렸다. 동굴이 품어 온 시간과 그 동굴을 세상에 알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은 자리에서 펼쳐졌다. 축전의 주제 '유산, 그 너머로'는 이 장소 선택에서 이미 절반쯤 구현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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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공연 편성에서는 기획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세대와 장르, 전통과 현대를 한 무대에 담으려는 뜻이 보였고, 그 뜻은 상당 부분 결실을 거뒀다. 대만 하트 댄스 시즌 예술단은 동양무용의 안무선 위에 발레의 스텝과 회전을 얹었다. 토슈즈와 같은 빛깔의 치파오, 부채처럼 동작의 끝을 맺어주는 단풍잎 소품이 숲을 등진 무대와 잘 어울렸다. 김녕꼬마탐험대 아이들이 우쿨렐레 연주와 합창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그 자체로 메시지였다. 80년 전 만장굴 탐사에 나섰던 김녕 아이들의 이름을 오늘의 아이들이 이어받아 같은 동굴 앞에서 노래했다.

김녕리 멜후리기 팀은 큰 깃발을 앞세우고 들어와 멸치 그물을 흔들며 소리를 이어갔다. 그물이 출렁이자 객석의 외국인 관람객 몇몇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았다. 노랫말은 몰라도 바다와 함께 살아온 마을의 리듬만큼은 고스란히 건너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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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으로 번진 무대

본공연은 탄생, 발견, 계승, 세대의 네 장으로 짜였다. 화산섬의 탄생을 불과 빛으로 풀어낸 첫 장부터 객석이 달아올랐다. 화령단의 불 퍼포먼스는 화려한 불쇼를 이야기의 흐름 안에 녹여냈고, 독무가 끝나자 박수가 배경음악을 덮었다. 뒤이은 빛과 음악의 무대에도 객석의 호응이 이어졌다.

실경공연의 큰 줄기를 이룬 것은 창작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였다. 이 작품은 김녕초등학교 교사 부종휴 선생이 아이들과 함께 만장굴을 탐사한 이야기를 담았다. 여러 해 무대를 이어 온 만큼 주·조연의 연기와 가창이 수준급이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완성도가 느껴졌다. 배우들의 동선은 무대 안에 머물지 않고 뒤편의 작은 숲과 지형까지 뻗어나갔다. 숲을 향해 쏜 레이저 빛은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서는 듯한 풍경을 빚었다. 무대가 숲으로 넓어지자 눈앞의 공간 전체가 하나의 탐험 현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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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이라는 자연유산, 그 동굴을 찾아 나선 이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꾸준히 무대에 올려 온 작품은 저마다 귀한 구슬이다. 기획자는 이 구슬들을 찾아내 세계유산축전이라는 실로 꿰어냈고, 하나씩 놓여 있을 때보다 한결 큰 가치를 만들어냈다. 자연유산과 스토리텔링, 기획력이 맞물린 좋은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유산은 보존만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없다. 그 가치를 다음 세대의 경험으로 옮겨낼 때 더욱 생동감 있는 유산이 된다. 이날 무대는 만장굴을 처음 세상에 알린 아이들의 이야기를 오늘의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 바다 건너온 예술가들이 함께 이어받는 자리였다. 우리의 자연유산이 주는 의미가 해마다 깊어지듯, 축전도 회를 거듭하며 지역의 이야기와 사람을 더 넓게 품어가기를 기대한다. <김대훈 / 칼럼니스트 · 행정학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