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경제'의 본질, '기업 생태계' 구축에 있다
[지역, 보다!] (11) 문만석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상 기후 현상을 기후변화라는 말로 표현했다면 이제 기후 위기라는 말이 일상이 되고, 심지어 기후재난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은 용어가 되고 있다. 유럽의 고온과 폭염, 네팔의 대홍수, 잦은 태풍과 집중호우 등 올해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기후 현상은 인간의 삶을 극한으로 내몰고 있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환경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산업의 구조와 자본의 흐름을 바꾸고, 국가의 성장 전략과 지역의 발전 방향까지 재편하는 경제적 문제가 되었다. 과거에는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여겼다면, 이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지 않고서는 경제의 지속 가능성 자체를 담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녹색경제, 녹색성장, 저탄소경제, 기후경제라는 담론의 등장과 확장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녹색경제가 자연을 보전하며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는 경제라면, 녹색성장은 환경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 친환경 기술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저탄소경제가 기존의 화석연료 체계를 전환해 탄소집약도를 낮추는 데 집중한다면, 기후경제는 녹색경제나 녹색성장보다 기후위기의 구조적 영향과 경제체제의 전환에 더 주목하는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특정 산업의 육성이나 환경비용의 관리 차원에 한정하지 않고, 경제의 생산·소비·투자·금융·지역발전 체계 전체를 재구성하는 문제로 바라본다. 기후경제는 단순히 녹색산업의 성장을 추구하는 구조가 아니라 온실가스를 줄이는 경제와 기후재난에 견디는 경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의 부담과 결실을 지역사회와 공정하게 나누는 경제를 동시에 지향한다.
기후경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존 산업의 경쟁력이 재편되고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탄소를 줄이는 기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 기후재난을 예측하고 피해를 줄이는 기술은 이제 환경 분야에 국한된 기술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는 ‘기후경제 수도’를 비전으로 내걸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경제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새로운 경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탄소중립과 RE100, 에너지 전환, 인공지능 전환(AX) 등 다양한 정책과 기술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이 어떻게 지역의 산업과 일자리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부족하다. 재생에너지 생산시설을 늘리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만으로 지역경제의 체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생산된 에너지가 지역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그 과정에서 어떤 기업이 성장하며, 새로운 부가가치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제주가 고민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제주는 풍부한 자연환경과 재생에너지 자원, 농축산업과 관광산업이라는 고유한 경제 기반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전력 수급과 계통 운영, 물류와 자원순환 등에서 독특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조건은 제약인 동시에 기후기술을 실험하고 검증할 수 있는 현장이 되기도 한다. 제주가 기후경제의 중심을 지향한다면 다른 지역의 산업을 그대로 유치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제주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과 기업을 키워내야 한다.
그 출발점은 기후테크 기업 생태계의 구축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저장·관리 기술과 수요관리 서비스가 필요하다. 농축산업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재배 기술과 스마트 농업, 물과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기술이 중요하다. 관광 분야에서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폐기물과 물 사용을 줄이는 서비스가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 기후재난을 관측하고 예측하는 기술, 폐자원을 다시 자원으로 전환하는 순환경제 기술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분야를 별개의 정책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기술혁신과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생태계는 좋은 아이디어나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고,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며, 그 수익이 다시 연구개발과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첫째, 기술의 시장 진입을 막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기후테크 신기술을 실제 환경에서 빠르게 실험하고 상용화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와 실증 인프라를 대폭 제공해야 한다.
둘째, 초기 시장과 자금을 지원해 기업의 생존율을 높여야 한다. 공공 부문이 기후테크 제품과 서비스의 첫 번째 구매자(First Customer)가 되어 초기 수요를 창출하고, 기후 특화 펀드와 투자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한다.
셋째, 지역 맞춤형 고부가가치 모델과 인재 양성 체계를 결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주의 경우,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농축산·관광 인프라를 기후테크와 결합해 차별화된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나아가 지역 대학 및 연구기관과 연계해 기후테크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현장에 공급하는 ‘인재 선순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생태계가 지속된다.
넷째, ‘공정한 전환(Just Transition)’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기존 전통 산업의 노동자와 지역 주민을 기후테크 생태계의 새로운 기회로 포용하고, 그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여기에 인공지능 전환(AX)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자체를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에너지 수요를 예측하고 전력 사용을 최적화하며, 농작물의 생육과 기후재난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등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전환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기존의 산업 체계를 흔드는 위기이자,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유례없는 기회의 장이다. 이 흐름에서 단순히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는 수동적 대응만으로는 지역 경제의 체질을 바꿀 수 없다. 모호했던 ‘기후경제’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추는 기후테크 기업들이 마음껏 혁신을 펼칠 수 있는 자생적 생태계 구축에 있다. 기술과 자본, 인재, 그리고 실증 시장이 선순환하는 판을 짜는 구체적 실행력이 담보될 때, ‘기후경제’는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지역경제의 대전환을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문만석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
제주의 담론을 잇는 연재 '지역,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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