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의 경계를 바꾸는 정치] 장애인이 만든 변화, 모두의 기본권으로

김경미 / 사단법인 제주장애여성시민연대 상임대표

2026-09-14     김경미
김경미/

턱이 없는 길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만을 위한 길이 아니다. 유아차를 이용하는 부모에게도, 무거운 짐을 든 택배기사에게도, 다리를 다친 학생에게도 편리한 길이다.

이해하기 쉬운 안내문, 음성 전환 정보 역시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고령자와 어린이, 낯선 정보를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환경이다. 접근 가능한 관광환경도 장애인만의 편의가 아니라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의 조건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겪는 불편을 발견할 때마다 제도를 만들고 시설을 보완해 왔다. <유니버설디자인 조례>, <관광약자의 접근 가능한 관광환경 조성 조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 조례>, <장애인 등을 위한 경사로 설치 지원 조례>도 그러한 변화의 결과다.

장애인이 요구해 온 변화는 장애인만을 위한 변화가 아니었다.
그 변화는 결국 우리 모두의 삶을 바꾸는 사회의 기준이 되어왔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상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난 시민이 아니다. 그들의 경험은 우리가 얼마나 좁은 기준으로 사회를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었고, 더 넓고 더 공정한 기준을 만들어 내는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제 정책의 언어를 바꿔야 할 때다.

장애인의 이동편의는 ‘모두의 이동권’으로, 관광약자의 접근성은 ‘모두의 관광권’으로,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아갈 생활환경’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것은 장애인의 권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인의 권리를 바탕으로 사회 전체의 기본권을 더욱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불편이 드러난 뒤에서야 개선 방향을 고민해 왔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는 사후 보완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양한 삶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출발선이라야 한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임산부, 일시적으로 이동이 어려운 사람까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설계가 유니버설디자인이며, 이러한 설계는 기본권의 근본이다.

이제 장애인이 열어 온 권리의 길을 장애인만의 길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이 만든 변화는 배려의 역사가 아니라 권리의 역사다. 
그리고 그 권리는 이제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보완에서 모두를 위한 설계로.

장애인을 위한 정책에서 모두의 기본권으로. <김경미/ 사단법인 제주장애여성시민연대 상임대표(전 제주도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