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호의 문화칼럼] '괸당'은 언제 가까워지는가
# 출석부는 없었지만 출석 확인은 정확했다
추석이 다가오면 벌초하러 사람들이 모였다. 평소에는 좀처럼 만나지 못하던 얼굴도 그날이면 보였다. 낫을 들고 풀을 베고, 한 묘가 끝나면 다음 묘로 옮겨갔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누가 왔고 누가 빠졌는지는 세지 않아도 다 알았다. 누구네는 아들이 몇이나 왔더라, 누구네는 몇 년째 얼굴도 안 보인다는 말이 낫질 사이로 오갔다. 출석부는 없었지만 출석 확인은 정확했다.
술이 몇 잔 돌면 묵은 이야기도 풀밭 위로 올라왔다. 목소리가 커졌다가도 다음 묘로 옮겨갈 때면 다시 낫을 들었다. 다툼도 관계가 있어야 생기는 법이다.
그 풀밭에서 나는 해마다 이름은 모르는데 나를 아는 어른들을 만났다. 얼굴은 낯설지 않은데 이름이 헷갈렸고, 우리 집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고개부터 숙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들은 나를 알았다. 근효네 막내아들 아니가, 하는 말이 먼저 나왔다.
아버지 이름 하나면 충분했다. 나는 그분의 이름도 몰랐는데, 그분은 내가 누구의 손자인지까지 알고 있었다. 그때는 그게 조금 불편했다. 나는 저 삼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저 삼춘은 왜 나를 아는가. 내가 “저 삼춘 누구우꽈?” 하고 물으면 아버지가 설명했다. 누구네 형이고 누구의 사촌이고, 할아버지와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야기가 줄줄 따라왔다. 책으로 배운 족보가 아니라 얼굴로 배운 족보였다.
나이가 들고서야 알았다. 그분이 나를 안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고, 그 너머에는 집안과 마을이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돌보며 지내던 관계를 괸당이라고 불렀다. 꼭 촌수로 이어져야만 괸당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래 얼굴을 보고 대소사를 함께하다 보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도 어느새 가까운 괸당이 되었다. 벌초만이 아니었다. 식게날에도, 잔칫집에서도, 초상집에서도 만났다.
# 사람은 잊어도 장부는 잊지 않았다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또 하나의 족보가 나왔다. 부조 장부였다.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이름 옆에는 금액이 적혔고, 행사가 끝나도 버리지 않았다가 다른 집에 일이 생기면 다시 펼쳤다. 느네 집에는 얼마 했더라, 하고 장부를 펼치면 답이 나왔다. 사람은 십 년 전 일을 잊어도 장부는 좀처럼 잊지 않았다. 괸당의 정은 따뜻했지만 회계는 제법 정확했다.
그렇다고 야박하기만 한 셈법은 아니었다. 목돈이 필요한 날이면 여러 집의 작은 돈이 한 집으로 모였다. 장부에 적힌 숫자는 돈이면서 약속이었다.
그 장부도 이제 휴대전화 안으로 들어갔다. 부고가 단체대화방에 올라오면 계좌번호도 함께 도착한다. 나 역시 그렇게 할 때가 있다.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돈은 먼저 도착하는 세상이 됐다.
# 없던 촌수도 생겨난다
그런데 묘한 일이 있다. 생활에서는 괸당이 조금씩 멀어지는데, 필요할 때면 다시 가까워진다. 선거철이 특히 그렇다. 평소에는 몇 촌인지 궁금해하지 않던 사람들이 어느 할아버지의 어느 형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괸당 아니우꽈.”
없던 촌수도 그렇게 생겨난다. 선거철만큼 제주 사람들의 족보 공부가 활발해지는 계절도 드물지 싶다. 관공서에 볼일이 생겨도 비슷하다. 무슨 서류가 필요한지 알아보기 전에 거기 아는 사람부터 찾는다.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우리 괸당”과 선거판에서 부르는 “우리 괸당”은 같은 말인데 어딘가 다르게 들린다. 하나는 곁으로 가기 위한 말이고, 다른 하나는 끌어당기기 위한 말이다.
#풀은 깨끗해지고 사람은 줄었다
벌초 풍경도 달라졌다. 고향을 떠나 사는 자손이 많아졌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나이가 들었다. 전문 업체에 맡기는 집이 늘었다. 나무랄 일은 아니다. 기계로 베니 빠르고 깨끗하다. 작업이 끝나면 사진까지 휴대전화로 보내준다. 풀 한 포기 없이 말끔하다.
그런데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허전하다. 사람이 없다.
전문 업체는 풀을 대신 베어줄 수 있다. 그러나 “저 삼춘 누구우꽈?”라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이 누구이고 우리 집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누가 누구와 이어졌는지를 배우는 일은 그렇게 조금씩 어려워졌다. 함께 낫을 들던 괸당은 줄어드는데, 필요할 때 찾는 괸당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래도 부고가 오면 사람들은 간다. 멀어도 가고, 오래 만나지 않았어도 간다. 기쁜 일에는 못 가도 궂은일에는 가야 한다고 말하던 어른들이 있었다.
상주의 손을 한번 잡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숙이기도 한다. 그러고는 밥상 앞에 앉아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눈다. 누구는 많이 늙었고 누구네 아들은 어느새 장가를 갔다는 말이 오간다. 생각해보면 괸당은 가까워서 찾아간 관계만은 아니었다. 가야 할 때 갔기 때문에 가까워진 관계였다.
벌초를 맡길 사람은 생겼다. 산소의 풀은 예전보다 더 깨끗하게 베어진다. 다만 그 풀밭에서 나를 바라보다가,
“근효네 막내아들 아니가?”
하고 먼저 알아봐 주던 사람들이 하나둘 줄어들고 있다. (글쓴이 양용호/ 관광학 박사 ('길 끝에 사람이 있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