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섬을 넘어, 다시 안전의 섬으로

[지역, 보다!] (8) 문만석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 

2026-09-07     문만석
문만석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평화로운 돌담길과 오름. 그리고 평화와 힐링의 섬. 오랫동안 제주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던 이미지다. 그런데 요즘 이 익숙한 이미지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최근 잇따른 실종 사건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바라보며 도민과 관광객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온라인에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와 자극적인 콘텐츠까지 빠르게 퍼지면서 ‘제주가 위험하다’는 인식마저 확산되는 모습이다. 제주는 정말 위험해진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제주를 위험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일까. 신뢰를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는 말이 있다. 제주가 오랫동안 쌓아온 ‘안전하고 평화로운 섬’이라는 이미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사건 그 자체만이 아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행정과 수사기관이 얼마나 신속하고 투명하게 대응하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이 얼마나 안심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특히 실종 사건처럼 시간이 곧 생명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가족에게는 1분, 1시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신고 초기부터 관련 기관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필요한 정보가 신속하게 공유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보가 부족하면 그 빈자리를 소문이 채운다. 요즘 유튜브와 SNS에는 제주에서 겪었다는 각종 경험담이 넘쳐난다. 과거의 강력범죄를 자극적으로 재구성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는 콘텐츠도 있다. ‘제주에서 택시를 탔다가 이상한 곳에 내려졌다’는 식의 개인적인 경험담이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을 만나면서 순식간에 공포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소비되면서 어느 순간 ‘제주의 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데 있다. 공포는 사실보다 빠르게 퍼진다. 
  
치안은 통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실제 범죄 발생률이 낮더라도 사람들이 불안하다고 느끼면 그 공간은 위험지대가 된다. 반대로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같은 공간도 훨씬 편안하게 느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제 안전’과 ‘체감 안전’을 함께 높이는 일이다. 두 가지 안전을 함께 높여 대중의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보를 숨기기보다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행정’이 필요하다. 실종 사건이나 중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어떤 기관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수사가 진행됐는지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수사상 공개할 수 없는 정보는 있다. 그러나 공개할 수 없는 것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정보가 부족할수록 불안은 커진다. 반대로 정확한 정보가 꾸준히 제공되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들어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두 번째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적극적인 사실 확인 체계’가 필요하다. 행정기관이 잘못된 정보가 퍼진 뒤에야 해명하는 방식으로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SNS와 유튜브에서 어떤 이야기가 확산되고 있는지 살피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면 정확한 자료와 함께 신속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제목 하나만 보고 ‘제주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기보다 출처가 어디인지, 실제 확인된 사실인지 한 번쯤 살펴보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눈에 보이는 안전망을 만드는 일’이다. 안전하다는 말을 백 번 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 하나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물리적 환경의 변화는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된다. 주요 관광지와 외곽 산책로, 야간 취약지역 등에 CCTV와 비상벨, 조명 등 안전 인프라를 촘촘하게 구축하여야 한다. 또한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이상 상황 감지 시스템’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혼자 여행하는 관광객이 자신의 위치를 가족이나 지인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술은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전제가 있다. 제주가 안전해야 하는 이유는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안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제주는 관광객에게는 여행지이지만, 도민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여행객이 밤길을 걷더라도 안심할 수 있고 도민이 아이와 함께 동네를 걸어도 불안하지 않은 섬, 제주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제주에 사는 모두가 안전하게 삶을 영위하는 일이어야 한다.
  
안전은 단순한 범죄 발생률의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피부로 느끼는 마음의 평온에 관한 문제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극적이고 과장된 공포로 자칫 제주 본연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행정의 투명성과 단단한 물리적 안전망을 바탕으로 도민과 관광객의 마음속에 '제주는 안전의 섬'이라는 확신과 신뢰를 다시 새겨야 한다. 공포를 넘어선 선제적이고 즉각적인 안전 환경이 뿌리내릴 때, 제주는 누구나 두려움 없이 찾으며 오롯이 제주의 정체성을 향유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따뜻한 안식처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이 신뢰를 쌓고, 신뢰의 복원이 제주를 제주답게 한다. <문만석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

 

제주의 담론을 잇는 연재 '지역,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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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보다!'는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의 필진이 참여하는 칼럼 코너로서 지역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내고, 지역의 가능성과 미래를 탐색하는 공간입니다. 현장 경험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공동체, 사회보장, 경제, 일자리, 환경, 에너지, 문화, 정치참여 등 다양한 주제를 지역의 관점으로 다루면서 지역을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사회 변화를 모색하는 담론을 독자들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