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숯을 얻었고 나는 바람을 얻었다
[양용호의 문화칼럼] 같은 숲을 서로 다른 무게로 걸었다
곶자왈의 바람은 옷 위로만 불지 않았다. 나뭇잎 사이를 빠져나오고 돌 틈에서 올라온 바람이 옷깃의 작은 빈틈을 찾아 들어왔다. 어느 순간에는 피부를 스치는 것이 아니라 몸속을 그대로 통과하는 듯했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려고 자꾸 숲으로 들어갔다.
선흘과 교래, 저지와 청수의 곶자왈을 걸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숲이었지만 밝기와 냄새, 발밑의 감촉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숲은 한낮에도 어두웠고, 어떤 숲에서는 키 낮은 덤불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낙엽 아래가 평평한 땅인지 돌인지 알 수 없어 걸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발밑을 보았다. 돌 사이에는 구멍이 숨어 있었고, 나무뿌리는 흙이 아니라 돌을 끌어안고 옆으로 뻗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의 소리는 하나씩 사라졌다. 자동차 소리가 멀어지고 사람의 말소리도 나무 사이에서 끊겼다. 끝내 남는 것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돌을 밟는 내 발소리, 그리고 몸을 통과해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바람뿐이었다.
그 숲을 여러 번 걸었는데도 곶자왈이 어떤 땅인지 설명하려 하면 말문이 막혔다. 나무가 많은 숲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고, 돌이 많은 땅이라고만 하기에는 그 안에 쌓인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를 생각했다.
내가 빈손으로 들어가 바람을 맞으며 걷는 이 숲에서, 아버지는 숯과 노루를 등에 지고 내려왔다.
# 지도보다 몸이 먼저 알던 숲
흔히 '곶'은 나무가 우거진 숲을, '자왈'은 돌과 덤불이 뒤엉킨 거친 땅을 가리키는 제주어로 풀이한다. 하나는 나무를 보았고, 다른 하나는 그 아래의 땅을 보았다. 두 말이 만나 돌밭과 숲이 한 몸을 이룬 땅을 가리키게 되었다.
용암이 굳고 깨진 자리에 울퉁불퉁한 돌밭이 남았고, 그 틈에 흙과 낙엽이 쌓이자 나무와 덩굴이 뿌리를 내렸다.
사람들은 그 숲의 경계를 지도보다 몸으로 먼저 알았다. 어디까지 나무를 하러 갈 수 있는지, 어느 돌담 너머에 소를 풀어놓았는지, 어느 길을 따라가면 물이 고인 곳이 나오는지를 기억했다. 곶자왈은 바라보는 숲이 아니라 드나들며 익혀둔 생활의 공간이었다.
#밭은 되지 못했으나 사람을 먹였다
곶자왈은 밭으로 일구기 어려웠다. 흙은 얕았고 땅속에는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없는 틈이 이어졌다. 밭을 만들려면 돌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땅의 모양 자체를 바꾸어야 했다. 숲을 걷다가 발이 돌 틈에 빠질 뻔한 적이 있다. 낙엽 아래가 비어 있었다. 여기에 밭을 만들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그때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숲은 아니었다. 숲길에서 숯가마터를 본 적이 있다. 돌을 둥글게 쌓은 자리가 낙엽에 반쯤 묻혀 있었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냥 돌무더기로 지나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고 단단한 나무를 골라 숯을 구웠다. 불이 지나치면 재가 됐고 모자라면 숯이 되지 못했다. 버섯과 약초를 구했고 겨울에는 소와 말을 숲으로 들였다. 밭이 되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얻었다.
#아버지가 숯을 지고 내려온 길
곶자왈에는 노루를 잡던 흔적도 남아 있다. 돌담 사이로 노루를 몰아 끝에 파놓은 구덩이에 빠뜨리던 노루텅이다.
아버지가 그 노루텅을 이용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젊은 시절 노루를 잡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언젠가 밥상에서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었다. 잡은 노루를 짊어지고 제주 시내 장까지 걸어가 팔았다고 했다. 곶자왈에서 구운 숯도 장에 내다 팔았다. 먹을 것과 현금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노루는 보호의 대상이기에 앞서 한 집안의 먹을거리였고 장에 내다 팔 수 있는 물목이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이었다. 와산에서 제주 시내 장까지 가려면 숯과 노루의 무게를 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곶자왈에서 얻은 것이 저절로 돈이 되지는 않았다. 그것을 등에 지고 긴 길을 걸어 장에 내다 파는 일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몇 시에 길을 나섰을까. 숯자루를 어떻게 등에 묶었고, 어느 길에서 쉬었으며, 장에서 얼마를 받았을까. 돌아오는 길에는 그 돈으로 무엇을 사 왔을까. 나는 그런 것을 묻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오래전에 끝난 생계였고, 내게는 늦게 찾아온 궁금증이었다.
숲에는 여전히 숯가마터와 노루텅이 있다. 돌을 둥글게 쌓은 자리와 움푹 팬 땅은 눈에 보였지만, 그곳에서 한 집안의 끼니와 살림을 마련했던 사람들의 하루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숲길을 가볍게 걸었다. 아버지는 그 길에서 들고 내려가야 할 것의 무게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글쓴이 양용호/ 관광학 박사 ('길 끝에 사람이 있었다' 저자))
#값이 매겨지자 경계가 보였다
할아버지가 남긴 땅 가운데 곶자왈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땅을 물려받지 않았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았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어, 누가 그 땅을 받는지는 집안의 큰 문제가 아니었던 듯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도로가 생기고 주변 땅값이 올랐다. 곶자왈의 생태적 가치도 알려졌다. 돌 틈은 비가 땅속으로 내려가는 길이었고, 가까운 자리에서도 따뜻하고 서늘한 곳, 습하고 마른 곳이 나뉘어 그 차이를 따라 서로 다른 식물이 자랐다. 농사를 지을 수 없던 땅이 지하수와 생태를 지키는 숲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 가치가 알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도로와 관광시설, 골프장과 채석장이 들어선 곳도 있었다. 한번 땅의 구조가 훼손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나무는 다시 심을 수 있어도 용암이 흘러가며 만든 돌 틈과 굴곡까지 되살릴 수는 없다.
그래서 지도에 선을 그었다. 선 안의 숲은 보호받았고, 대신 그 땅을 물려받은 사람은 나무를 베거나 무엇을 짓는 데 큰 제한을 받게 되었다. 공공기관과 민간단체가 보호지역 안의 사유지를 사들여 공동의 숲으로 지키려 하고 있지만, 값과 조건이 맞지 않아 매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땅도 있다.
그 땅을 파는 이야기가 나오자 가족 사이에 말이 생겼다. 오래전에 끝난 줄 알았던 상속의 일이 다시 불거졌다. 할아버지가 어떤 뜻으로 땅을 나누었는지를 두고 기억이 달랐다. 그 무렵 집안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가 잦아졌다. 나는 그 자리에 끼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전 같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그 일을 길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경계가 값을 매기는 순간 선명해졌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곶자왈은 아무도 갖지 않은 땅이 아니었다. 등기부에는 주인이 있었고, 가족마다 그 땅에 대한 기억이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모두가 지켜야 할 숲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물려받은 재산이었다. 숲에는 뚜렷한 돌담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저마다 경계가 있었다. 나무와 덩굴이 그 경계를 덮고 있었을 뿐이었다.
#가진 것을 모두 내주지 않은 숲
곶자왈은 아무도 손대지 않아 남은 숲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숯을 구웠고, 가축을 들였으며 버섯과 약초를 구했다. 그러나 손을 댔다고 모든 것이 사람의 뜻대로 바뀌지는 않았다. 돌을 모두 걷어내지 못했고 땅의 깊은 틈과 굴곡까지 메우지도 못했다. 그 틈과 굴곡 사이에서 숲은 계속 자랐다.
곶자왈을 나오는 길에 다시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 사이를 지나온 바람이 옷깃 안으로 들어왔다가 등 뒤로 빠져나갔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가 숯을 지고 내려왔을 길은 나무와 덩굴 아래 보이지 않았다.
한때 그곳은 값이 낮은 땅이었다. 쓸모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밭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먹여 살리던 땅이었다.
아버지는 그 숲에서 숯과 노루를 얻었다. 나는 그 숲에서 바람을 얻었다. 숲은 시대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조금씩 내주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모두 내주지는 않았다. 돌 틈과 굴곡, 그 안을 오가는 물과 바람을 끝내 품고 있다.
그렇게 곶자왈은 숲으로 남았다. (글쓴이 양용호/ 관광학 박사 ('길 끝에 사람이 있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