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 여전히 닿지 않는 복지
[장애인 인권 이야기] 강설아/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 복지 확대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제도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존재한다. 현장에서는 중증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애쓰고 있지만 현행 제도의 한계에 가로막히곤 한다.
현재의 각종 장애인 복지 제도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한정된 예산안에서 운영되는 만큼 기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준이 장애인의 실제 삶과 구체적인 어려움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서류상으로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현실에서는 누군가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결국 이들은 행정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필자가 현장에서 활동지원 연계를 담당하며 마주한 현실 또한 한계와 모순투성이다.
최근 몇 년간 언론과 현장에서도 꾸준히 지적되어 왔듯, 사각지대에 놓인 소수장애인들은 여전히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다. 주변에 심장질환과 부정맥으로 일상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심장장애인 당사자 지인이 있다. 사회생활에 한창인 그는 현행 제도상 이동지원서비스 대상에 제외됐다.
심장이 지나치게 빠르게 뛰어 혈압이 급격히 오르는 순간에는 판단이 어려울 정도의 증상을 겪고, 반대로 심장 박동이 지나치게 느려질 때는 극심한 무기력감에 빠진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직접 운전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택시에 의존해야 하지만,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의 차량 이용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아 매번 일반 택시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이동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임에도 활동지원을 포함하여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현행 이동지원 체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사각지대는 이동권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동에서 성인기로 전환되는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문제도 심각하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성인기로 진입하는 시기는 당사자에게 가장 큰 전환점임과 동시에 가장 취약한 위기의 순간이 된다.
한 발달장애인 이용자의 경우 학창 시절에는 학교생활을 이유로 일정 수준의 활동지원 시간을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졸업 이후 상황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자립을 위한 일상생활 지원의 필요성은 훨씬 커졌음에도 활동지원 시간은 줄어든 것이다. 설령 어렵게 제도에 진입했다 하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으로 인해 필요한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현행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조사표’의 배점 구조에 있다. 조사표에 따르면 학교생활은 12점, 직장생활은 24점으로 산정된다. 따라서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12점이 즉시 깎인다. 졸업 후 사회로 첫발을 내딛도록 뒷받침해야 할 제도가 도리어 지원 시간을 깎아내며 당사자를 집 안에 고립시키는 셈이다.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사라지거나 장애 정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자립 지원의 필요성도 역시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상생활의 체계가 끊기면서 삶은 더욱 위축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취업해서 24점을 받으면 될 거 아니냐’고 쉽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고용 한파로 '쉬었음' 청년과 니트(NEET) 청년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장애 당사자를 위한 직업이 다양화되고 있지만 취업하기 힘든 각박한 사회에서, 사회로 진입하는 장애 청년들이 졸업 후 곧바로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법과 제도가 현실과 철저히 괴리되어 있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는 단순히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지금의 복지제도는 여전히 ‘기준에 맞는 사람’ ‘다수에 해당하는 사람’을 선별하고 지원하는데 집중되어 있을 뿐, 위 사례에서도 언급했듯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왜 정책은 제자리걸음인가. 요새 트렌드인 ‘맞춤형 서비스’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따름이다.
이제는 획일적인 점수와 형식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장애인의 실제 생활환경과 건강 상태, 그리고 현실적인 자립의 욕구를 세밀하게 반영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장애인 복지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할 사람이 실제로 그 지원을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와 기준만을 앞세운 행정이 아니라, 당사자의 삶과 현실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정책의 기준보다 사람의 삶과 자립을 먼저 바라볼 때 비로소 복지의 사각지대는 줄어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 지원이 제대로 닿고 있는가다.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