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30) 젊음이 불타는 여름, 해변으로 가요

2026-08-20     배공순
삼양해수욕장.

종아리가 서늘했다. 어둠을 긋는 별똥별을 보며 수다에 빠졌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축축한 낌새에 일어나 보니, 이게 웬일인가. 검은 바다가 텐트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라며 친구들을 흔들어 깨웠다. 누구는 배낭을 몰아 양어깨에 메고, 누구는 텐트 정수리를 붙잡고는 끌고, 누구는 널브러진 옷가지랑 식기 나부랭이를 건성건성 품에 안고 백 미터에 십구 초의 속도로 내달렸다. 발뒤꿈치에선 검은 모래가 휘날렸다.

삼양해수욕장이었다. 스무 살 무렵, 한라산 백록담에서 하룻밤 지새고 내려와 바닷가에 짐을 부렸다. 늦은 밤, 나름 적당한 곳이라 판단하고 텐트를 쳤다. 내륙에 살아도 그렇지, 그렇게 밀물이 밀려들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답답한 청춘들이었다. 허둥지둥 야단법석을 떨고는 가쁜 숨을 내쉬며 나뒹굴었다. 모래밭에 큰 대자로 누워있자니, 이렇게 둥둥 떠서 태평양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싶어 와락, 무섬증이 일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이거나 말거나, 밤하늘은 여전히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렸을 적 모래찜 하는 엄마를 따라 바닷가에 간 적이 있었다. 여수에 있는 검은 모래로 유명한 만성리해수욕장이었다. 한낮의 태양이 내리꽂히는 해변을 걸어 들어가자니 눈이 부셨다. 검은 모래 알갱이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나도 모르게 실눈을 뜨게 했다. 발은 어찌나 뜨거운지 고무신을 신고도 겅중겅중 뛰었다. 그 뜨거운 모래밭을 길게 파고는 “오매, 시원한 거!”하시며 엄마는 온몸을 묻었다. 엄마만이 아니었다. 같이 갔던 이웃들이나 낯선 사람들까지 줄지어 누웠고, 얼굴만 삐죽 나와 있는 모습이 우스워 나는 킬킬거렸다. “아이고, 인자 어깨가 좀 풀리요 잉.” 하며, 옆집 아짐과 두런거리던 엄마였다. 등줄기나 어깨가 얼마나 깨질 듯 아프셨기에, 몇 시간씩 걸리는 완행열차를 타고 거기까지 가야만 했을까. 엄마의 고된 심신을 나는 알지 못했고, 밀려오는 바닷물을 밟으며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만성리해수욕장.

성장한 뒤 보니 그곳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풍광이 아름다웠다. 동백섬 오동도와 돌산도가 그리 멀지 않았고, 아름드리 해송과 해안 절벽이 장관이었다. 기다란 검은 모래사장과 짙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여수의 대표 해수욕장이기도 했다. 검은 모래가 신경통이나 관절염 치료에 효험이 크다고 알려져 찜질하러 온 사람들로 붐비던 명소였고, 엄마도 그중 한 분이었다.

삼양해수욕장에서도 '모살뜸(모래뜸)'을 한다니 반갑다. 모래가 태양열에 달궈지는 여름이면 검은 모래를 덮고 찜질하는 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단다. 붐비는 곳에서는 엄두를 못 낼 일이지만, 소박하고 한적해서 가능한 일일 테다. 요즘은 전문병원이 많고 첨단 장비와 도수 기술이 수준급이라 해도, 이러한 자연의 치유력 또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 같다.

최근 기발하고 바람직한 소식이 바람결에 날아왔다. 제주 해양환경공단이 바다 환경 정화를 위해 진행하는 '반려 해변 입양 프로그램'이 그것인데, 삼양해수욕장을 공식 반려 해변으로 입양했다는 것. 기업이나 단체가 특정 해변을 맡아 반려동물처럼 가꾸고 돌보는 것으로, 플라스틱 없는 제주 바다 조성을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펼친단다.

삼양해수욕장

문득, 현직이던 2011년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 중인 모 구청의 ‘1사 1동 결연사업’이 기억 저편에서 되살아난다. 관내 법인체들과 각 동을 1:1로 연결해, 기업에서는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구에서는 풍부한 문화관광 자원을 활용해 문화 체험을 지원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이 그래왔듯, 해변 입양 프로그램이 중단없이 지속되어 삶의 터전이자, 관광의 보고인 제주 바다를 지키는 창대한 성과로 이어지기를, 바다 건너 아낙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덥다는 올해 여름이다. 쉼 없이 용천수가 올라오는 곳, 밀물에 쫓겨 달아나던 밤에는 몰랐던 ‘샛도리물’에도 가보고 싶다. 삼양해수욕장에서 가까우니 어슬렁어슬렁 산책하기에도 맞춤이 아닌가. 시원하고 청정한 용천수가 솟아 흘러 바닷물과 합류하는 작은 두물머리. 그곳에 앉아 물방울이 그리는 맑은 물무늬를 한가롭게 즐기고 싶다. 요즘도 주민들이 나와 빨래한다는 그곳, 자연 빨래터의 활기찬 방망이 소리를 듣고 싶기도 하다.

화산활동의 흔적으로 검은 모래가 펼쳐진 삼양해수욕장. 하얀 모래와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로 연상되는 제주에서 남다른 매력을 발산해 그런지, 7월이면 ‘검은 모래 축제’가 열린단다. 옛 추억을 되살릴 겸 달려가, 모래밭에서 뒹구는 나만의 축제도 함께 열어보고 싶다. 모살뜸을 하고, 샛도리물에 더위를 식히다 보면, 꿈결 같은 노을이 바다와 나를 붉게 적셔주려나…. 불타는 여름날의 청춘이라면, 낮과 밤이 아름다운 삼양 해변으로 달려갈 일이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수필가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