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더 가까웠던 이집트
[김대훈 칼럼리스트의 신간 리뷰] 한명희 '이집트, 혼자 여행 다니세요? 그럴 리가요'
오래전,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들이 나와 저마다 자기 나라의 문화와 한국의 문화를 이야기하던 방송이 있었다. 음식이든 역사든 서로 “우리가 최초”라며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이집트 청년이 “아, 그거요. 기원전 이천 년 전에…” 하고 한마디 던지면 판이 조용해졌다. 나에게 이집트는 오래도록 그런 나라였다. 모든 논쟁을 잠재우는 거대한 시간, 그러나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 이 책은 그 먼 곳을 어떻게 가깝게 만드는가. 읽는 내내 나는 그 방법이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집트, 혼자 여행 다니세요? 그럴 리가요.』(보석글, 2026)는 정보를 앞세운 안내서가 아니라 시선을 앞세운 여행 에세이다. 저자 한명희는 시인이면서 문화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 두 이력은 책 곳곳에서 함께 작동한다. 낡은 마차를 ‘페라리’라 부르고 사람들의 지친 얼굴을 놓치지 않는 데서는 시인의 감각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나 카이로 선언 같은 대목을 짚어 가는 데서는 인문학적 배경이 드러난다. 여행법도 분명하다. 그는 혼자, 되도록 낮은 눈높이로, 대중교통과 박물관을 먼저 택하며 걷는다. 제목이 그 태도를 요약한다. “혼자 다니세요?”라는 물음에 짐짓 “그럴 리가요” 하고 받아넘기는 문장은,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호기심이 겁보다 커서 혼자 다닌다는 사람의 자기소개다.
이 여행법은 뚜렷한 성취로 이어진다. 저자가 데려가는 이집트에는 웅대한 유적과 살아 있는 사람이 나란히 놓인다. 한쪽에는 기원전의 시간이 있다.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바위산을 통째로 깎아 만든 스핑크스, 통째로 뜯어 옮겨 세운 아부심벨, 피라미드보다 더 불가사의하게 다가왔다는 기원전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른 한쪽에는 사람이 있다. 서안 투어를 마친 뒤 “행복했느냐”고 묻고는, 행복하지 않았다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던 룩소르의 기사.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기에
값을 치르고 팁까지 얹었다고 저자는 적는다. 거스름돈이 틀렸다며 기차 안까지 쫓아 올라와 기어이 돈을 돌려주고 간 매점 노인의 이야기도 있다. 웅대함을 나열하는 대신 이런 장면들을 함께 세우는 균형이, 이 책을 여느 여행서와 다르게 만든다.
더 눈여겨볼 것은, 저자가 감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려한 아랍에미리트에서 그는 셔틀버스 기사의 지나친 저자세와 지쳐 보이는 아시아계 노동자들의 얼굴을 함께 본다. 인구의 85퍼센트가 현지인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명품으로 휘감은 부와 남루한 피로가 왜 한자리에 있는지가 선명해진다. 반대로 이집트는 인프라가 부족해 불편하지만 그 틈으로 사람의 결이 살아 있다. 무엇이 진짜 풍요인가. 여행기는 슬쩍 질문 하나를 남기고 지나간다. 관광이 아니라 관찰이 있고, 감상만이 아니라 판단이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이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기일 수는 없다. 저자는 애초에 책으로 낼 생각 없이, 그럴듯한 카메라도 챙기지 않고 떠났다. 그래서 책에 실린 많은 사진은 남에게 보여주려 공들여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순간 혼자 간직하려고 눌러둔 장면들이다. 잘 꾸민 여행 화보를 기대하면 어긋나겠지만, 꾸밈없는 그 사진들은 오히려 혼자 걷는 사람의 시선을 그대로 닮았다. 구성도 촘촘한 서사라기보다 인상적인 장면들을 이어 붙인 쪽에 가깝다. 그 느슨함이 혼자 하는 여행의 리듬을 닮아 매력이 되기도 하지만,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달리 느낄 수도 있겠다. 요컨대 이 책은 정보가 아니라 동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떠나기 전과 다녀온 뒤에 곁에 두기 좋은 책이다.
그런데 책을 덮고 오래 남은 것은 한 편의 여행기를 넘어서는 물음이었다.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두 해 남짓, 나는 영어를 배운다는 명목으로 이따금 미국인 선교사 할머니를 찾아갔다. 그러나 정작 오래 남은 것은 영어가 아니라 그분에게서 배운 서양의 이야기였다. 영어가 서툰 나를 위해 그분은 아주 쉬운 단어만으로 재미있고 때로는 심오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그 비상한 재치에 번번이 감탄하며 시간을 보냈다.
동양에 와서야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던 그분은, 동양에서 태어났으니 서양에서도 꼭 살아 보라고 내게 권했다. 그때 서양은 동경이었고 한국은 작았다. 중년이 된 지금, 그 환상은 옅어졌고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지구본의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까. 7천 년의 시간이 겹겹이 포개지고 아프리카와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자리를, 저자는 혼자 걸으며 넌지시 가리킨다. 이 책이 값진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집트가 볼 만한 곳이라고 말하는 데 있지 않고, 성숙해진 우리가 이제 어디로 눈을 돌릴지를 다시 묻게 하는 데 있다. 그 물음 끝에서 한 이름이 또렷해진다. 이집트. <김대훈 / 칼럼니스트 · 행정학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