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재정립 : 주변에서 '삶이 완결되는 공간'으로

[지역, 보다!] (4) 이권능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 

2026-08-11     이권능

'지역'의 대두: 메가 정책의 화두 속에 던져진 질문

이권능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지역'은 단 한 번도 정책적 화두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과제에서 시작하여 2019년 「지방이양일괄법」이 제정되었고, 이듬해에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되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5극 3특’ 구상과 3대 메가 프로젝트(AI·반도체·피지컬 AI 등)의 지방 분산은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고 지역균형발전을 달성하겠다는 국가적 승부수다. 이처럼 '지역'은 언제나 대한민국 재도약의 핵심 키워드로 호출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거대한 담론과 대규모 정책 투입에도 불구하고, 지역이 현실에서 체감하는 위기의 깊이는 여전하다. 많은 정책과 대형 프로젝트가 '지역'을 외쳐 왔지만, 정작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삶터로서의 지역은 왜 여전히 불안하고 취약한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역 투자라는 3대 메가 프로젝트마저도 거점 중심의 불평등 체제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걱정을 유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불안과 취약함은 '지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지역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특정 공간을 지칭하지 않는다. 지역은 인간의 삶과 실질적인 연관을 맺고, 개인의 생존과 존엄을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는 존재론적 근거에 기반한다. 이 개념적 기준이 명확해야 비로소 타당한 정책 목표가 세워지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선정되며, 그 수단이 원래의 목적을 얼마나 실현했는지를 올바르게 가늠할 수 있다.

전국(national)-지역(local)의 유기적 구성과 완결적 공동체로서의 지역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에서 볼 때, 가장 상위의 개념은 통치가 이뤄지는 공통체인 ‘나라(Nation)’이다. '나라'는 전국 차원과 지역 차원이라는 공간적 축, 그리고 정부(국가)와 시민사회라는 주체의 축이 결합하여 완성된다. 전국 차원에서는 중앙정부(행정부·국회·중앙 공공기관)와 전국단위 시민사회가 구성되며, 지역 차원에서는 지방정부(지방행정조직·지방의회·지방 공공기관)와 지역 시민사회가 구성된다. 이 4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나라'가 형성된다.

특히 지역은 삶이 완결적으로 펼쳐지는 공동체로 형성되고 형성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인간이든 제한된 지리적 범위 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인간 본성상의 제약'이자 주어진 조건이다. 또한 일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소비하고, 휴식하는 일상의 요소들이 수십 킬로미터를 오가는 것보다 일정한 지리적 범위 내에서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바로 이러한 삶의 물리적 제약과 합리성이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터가 '생활권'이며, '완결적 공동체'로서의 지역이다.

그렇다면 완결된 삶터는 어떤 모습일까? 먼저 사회경제적으로 자족성을 갖춰야 한다. 자족성이란 인간적 삶의 유지에 필요한 것을 지역 내에서 생산·유통·소비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그 생태계를 내가 알고 서로 연대하는 이웃과의 '관계성'에 기반하여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사회경제 생태계 운영에 관련된 사안들을 정치적이고 공적인 것으로 만들고, 이와 관련된 결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추가된다. 

중앙정부의 전략적 원칙으로 인한 지역의 해체

우리나라가 그동안 빠져 있던 결정적 오류는 지난 수십 년간 전국 차원의 중앙정부가 나라의 운영을 독점하면서 유발한 구조적 한계에 있다. 중앙정부에서 활동하는 핵심 행위자(중앙 행정공무원, 국회의원 등)의 관심은 ‘거대 사회로서 나라’라는 단일 대상이 잘 굴러가는가에만 맞춰져 있다. 이들은 전체의 GDP 상승과 전체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기능 확보만을 중시할 뿐, "어느 지역의 GRDP가 낮고"나 "어느 지역이 필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어느 지역이 그 기능으로부터 소외되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이러한 문제는 중앙 행위자의 인식과 판단을 지배하는 몇 가지 핵심 기준에 의해 유발되었다. 먼저, 중앙-주변이라는 공간적 구도이다. 중앙 행위자들은 국책 사업을 추진할 때 세상을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어 바라보면서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지정하고, 나머지 공간을 ‘배제된 주변'으로 규정한다(공간의 선별). 다음은 집중 우선 논리가 결합 된다. 지정된 중심지에 효율성을 이유로 자원, 인프라, 제도적 권한을 다량 몰아주어 공간을 활동이 가미된 영역(territory)으로 탈바꿈시킨다(자원 배분의 선별). 여기에 마지막으로 선택과 집중 논리가 덧붙여진다. 삶을 이루는 필수적 기능 전체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목적에 시급한 '특정 기능들'만을 선별하여 배분한다(기능의 선별).

그 결과, 중앙정부에 의해 선택받은 '중심’은 전국에 산재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주변’으로 전락하였다. 선택받은 중심조차 온전한 삶의 완결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들을 갖추지 못하고 특정 산업·기능에만 기형적으로 특화된 파편화된 공간이 되었다. 더군다나, 지방분권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된 정책들의 다수는 주민에게 실질적 권력을 넘겨주는 참된 분권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관료적 통제권을 유지한 채 조직과 기구를 현지에 배치하는 '행정적 분산'에 가까웠다. 결국 중앙 행위자의 공간-기능-자원 배분의 다차원적인 선별 원칙과 통제 기조로 인해, 지역은 스스로 완결된 삶을 지탱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거시적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면서 점진적으로 해체되었다.

지역 회귀의 조건: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족성

이제 더 이상의 지역 해체는 멈춰야 한다. 더군다나 저출생과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경향에서 기존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나라(nation)의 존망을 위협한다. 하지만 지역을 다시 돌려놓는 노력은 지역의 자족적 완결성이 과거와 같은 100% 폐쇄적 자급자족(autarky)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 기초해야 한다. 복잡하게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 완전한 폐쇄는 불가능하며 타당하지도 않다.

오늘날 영역(Territory)은 경계와 내부 통제를 바탕으로 형성되지만, 그것이 외부와의 무조건적인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역은 다층적이고 유연하게 구축된다. 개인의 집은 하위 영역으로서 독립된 공간이지만, 'OO동 주민센터(상위 영역)'의 관할에 속하며, 더 나아가 제주특별자치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한민국(최상위 영역)'이라는 영역에 포함된다. 이러한 위계적 공간 구성의 과정에서 다층적인 정체성의 확립도 이뤄진다. 예를 들어 파리 시민은 위로는 '프랑스인'이라는 나라(nation) 영역의 정체성과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아래로는 ‘파리지앙’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다. 

따라서 지역이 지향해야 할 자족적 완결성은 환경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조율되는 '동적·탄력적 자족성'이다. 외부 자원과의 교류, 네트워크 연결, 정보 교환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외부 요소가 없다면, 지역에서의 일상은 부족과 결핍으로 고통의 장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지역은 기후 위기, 외부의 공급망 혼란, 감염병 등 대외적 충격이 밀려올 때는 주민의 생존을 지키는 '강력한 방어선'을 제공해야 한다. 이 유연한 탄력성이야말로 지역을 안정된 삶터로 유지하는 힘이다. 결론적으로, 지역은 닫힌 감옥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고 정의하면서 외부와 관계를 맺는 유연한 생활의 틀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권능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 연구위원(지역개발 실장, 서울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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