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관성을 바꾸는 힘

[지역, 보다!] (3) 문만석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 

2026-08-03     문만석
문만석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뀐다는 말을 실감한다. 아침에 나온 인공지능 서비스가 저녁이면 새로운 기능을 내놓고, 익숙했던 기술은 순식간에 구식이 된다. 예전에는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세상 변화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1년만 지나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면 기묘한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은 것이 바뀌는데도 정작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몇몇 우리의 제도와 문화, 오래된 관행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식자산의 가치다. 연구하고 기획하고, 정책을 설계하고 사람을 연결하는 일은 지역의 미래를 만드는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가치는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공공 분야의 수의계약 기준이나 대가 기준은 수십 년째 큰 변화가 없고, 강의료 또한 요지부동이다. 하물며 수의계약임에도 낙찰률을 적용하여 일률적으로 삭감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물가는 오르고 최저임금도 오르는데, 생각의 값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혁신을 이야기하면서도 혁신을 설계하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회의 사다리도 여전히 끊겨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아스라한 추억 속의 문장이 되었다. 자본과 교육, 정보와 인맥은 다시 기회를 만들고 또 재생산한다. 경쟁은 치열하지만 출발선이 다르고,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노력만으로 넘기 어려운 두터운 벽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청년들이 사회에 나오기 전 먼저 체감하는 것이 경쟁보다 기회의 불균형인지도 모른다.

제주 원도심의 침체 또한 변함이 없다. 활성화를 이야기한 지는 오래됐지만 외양이 조금 변한 정도 외에 기대만큼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건물을 새로 짓고 거리를 정비하는 것만으로 도시가 생동감을 되찾는 것은 아니다. 도시는 사람이 머물고, 일상이 이어지고, 공동체가 회복될 때 비로소 활력이 생긴다. 도시는 시설보다 삶으로 완성되는 법이다.

자본의 논리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은 추억보다 수익을, 공동체보다 효율을 선택한다. 작은 가게가 사라지고 대형 브랜드가 들어서는 일도, 지역경제가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도 같은 흐름이다. 자본은 인간의 선의나 악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공이 우선해야 할 일은 자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돌보지 않는 공동체와 문화 및 돌봄 같은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어야 한다. 

행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혁신을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법보다 내부 지침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담당자가 바뀌면 해석이 달라지고, 새로운 시도보다 기존 선례를 따르는 안전한 선택을 한다. 주민의 안녕보다 감사와 성과가 먼저 떠오르는 조직문화에서는 적극 행정이 자리 잡기 어렵다. 물론 이는 공무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실패의 책임은 크고 도전의 보상은 적은 제도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보다 시스템이 행동을 만든다. 변화는 개인의 의지 위에서 제도와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안정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오래된 기준은 익숙하고, 익숙함은 편안하다. 그래서 변화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자신의 영역을 솔선해서 바꾸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변화는 늘 다른 사람에게 요구되고, 자신에게는 너그럽다. 그러니 안정을 흔드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변화는 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의문에서 시작된다. 왜 지식자산은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지, 왜 우리시대의 청년에게 기회의 사다리가 주어지지 않는지, 왜 원도심은 삶보다 시설을 먼저 고민하는지, 왜 행정은 지침에 더 의존하는지를 묻는 작은 선택이 결국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앞으로 기술은 더 빠르게 발전하고, 산업구조도 예측 불가할 정도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바꾸어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이고, 시스템이며, 오래된 관성이다. 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사회는 도태되기 시작한다. 시대를 바꾸는 힘은 거대한 혁신이 아니다. 너무 오래 당연했던 것을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용기, 변화는 바로 그 용기를 먹고 자란다. <문만석 / 사단법인 한국지역혁신연구원장>

 

제주의 담론을 잇는 연재 '지역, 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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