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듣는 클래식](64) 파니 멘델스존의 현악4중주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

2026-07-29     정은실

수년 전 딸들과 파리여행을 하면서 새삼 재조명하게 된 일이 있다. 마리 앙투와네트에 대한 얘기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거치면서 우리의 기억 속에 마리 앙트와네트는 ‘성정과 행실이 그리 좋지 않은 왕비’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순전히 세뇌(brain wash)작용으로 우리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가서 보면서 그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루이14,15세때부터 흥청망청 지출된 국가재정은 루이16세에 와서 거의 고갈 상태였고, 프랑스인이 아닌 타국, 오스트리아의 왕녀로서 프랑스로 시집 온 마리 앙트와네트를 프랑스인들은 결코 고운 눈으로 봐주지 않았다.

마녀사냥식으로 누군가를 지목해서 단두대에 올려야했을 때 5개국어에 능통하고 매사에 총명한 패션감각이 뛰어난 마리 앙트와네트가 지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끝났을 뿐, 역사는 더 이상 마리 앙트와네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이후 줄곧 패션과 유행에 수위를 점하는 파리패션을 접하면서 마리 앙트와네트가 제일 먼저 생각났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필자가 서두부터 장황하게 설명을 한 이유는 그동안 억압된 똑똑하고 소질있는 여성이 우리 주위에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세상은 남자에게 더 관대하지만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건 사실이다. 그럼 클래식음악계는 어떠했을까, 이곳도 마찬가지였고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바로크나 고전주의는 차제하고라도 한참 낭만주의 중심에 있던 슈만이나 멘델스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여성으로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사람이 분명 많았을 것인데 우리에게 알려진 바는 슈만의 부인, 클라라 슈만과 멘델스존의 누이, 파니 멘델스존이 있다.

특히 파니 멘델스존은 젊은 나이에 요절해서 더욱 가슴 한켠에 남는 작곡가다. 알려진대로 멘델스존 가계는 철학자였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 부유한 은행가였던 아브라함 멘델스존에 이어 유복한 집안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팰릭스 멘델스존의 어머니 레아는 피아니스트로 자식의 음악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이었다. 원래는 유대계였으니 아버지대에 와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멘델스존 집안에는 멘델스존보다 네살 위인 누이가 있었다. 파니 멘델스존(Fanny Mendelssohn)이 그 여인으로 열세살에 바흐의 24개 평균율조곡을 모두 외워서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41세라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그것도 대놓고 남자들처럼 떳떳하게 자신의 기량을 펼치지 못한 환경 속에서 거의 500여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은 가히 놀랄만한 일이다. 다행히 음악을 이해하는 화가 남편을 만났고 아버지는 철저히 딸의 음악소질을 꺽으려했지만 어머니는 암암리에 지지했을 것이다. 그 시대만 해도 음악이 부유한 귀족자제들의 전유물이긴 했으나 여성에게는 이를 직업으로 자져간다는 일이 오히려 집안에 해가 되는 일이라 여겼던 때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불과 이백년도 못되는 때의 일이다.

따라서 파니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곡은 거의 없다. 동생 멘델스존이나 남편의 이름을 넣어서 파니 헨젤 멘델스존이라고 되어 있고 이마저도 1990년 이후에 음악역사학자에 의해 알려지게 된다. 심지어는 우리에게 축혼행진곡으로 알려진 한 여름밤의 꿈도 누이와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보고 함께 머리를 맛대고 작곡한 곡인데 우리에게는 멘델스존의 이름으로만 알려져있다. 파니 멘델스존의 곡 중에는 가곡이 많고 그외에 야상곡이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들도 심심잖게 볼 수 있다.

그럼 파니의 현악4중주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는 어떤 곡일까, 느리되, 너무 지나치지 않게 하라는 말대로 잔잔하면서도 팰릭스 멘델스존과는 또 다른 우수가 깃든 곡이다. 뭐랄까 약간은 체념이 섞인 관조적인 곡일 수도 있고 못다한 많은 말들을 음악을 통해서 내쁨고 있는 열정의 곡이다. 그녀의 곡중에 한해(Das Jahr-The Year)라는 부제가 붙은 곡이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감동을 자아낸 곡으로 마치 차이코프스키의 사계가 연상되는 곡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차이코프스키는 각 달마다 그에 맞게 시를 붙였지만 파니는 남편의 그림을 함께 삽입했다는 점이 다르다. 그중에 4월은 신비스러울 만큼 그윽한 아름다움이 이는 곡이다.

1800년대 초를 살았던 비운의 여인 파니는 갔지만 그녀는 우리의 뇌리에 비운이 아닌 정열의 여인, 깊은 사유의 작곡가로 길이 남아있다. 아마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이 파니에 대해, 그녀의 음악세계에 대해 알려지리라고 생각된다. 아름답고, 총명하고, 그러나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한 천재 여성 작곡가 파니를 추모하면서 듣는 그녀의 현악4중주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가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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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정은실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칼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