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듣는 클래식](63)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Adagio Assai)

2026-07-15     정은실

라벨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가 중에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곡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곡 볼레로는 티브이의 커머셜을 통해서 익히 들어 본 곡이다. 볼레로뿐 아니라 라벨의 곡은 피겨 스케이팅의 배경음악으로도 흔히 사용되는 곡인 까닭에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곡이 많다.

파리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음악의 3인을 대라하면 단연 카미유 생상, 클로드 드뷔시와 함께 모리스 라벨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거의 동시대의 작곡가이지만 생상과 라벨은 거의 사십년 차이가 나는 만큼 스승과 제자로서의 기간도 길었고 이로 인해 서로에게 끼친 영향도 많았을 것이다. 생상과 드뷔시는 파리 출생인데 반해 라벨은 스페인계 어머니 고향과 가까운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작곡한 곡에서 스페인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이유도 어머니의 고행인 스페인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라벨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곡가는 가브리엘 포레로 이들은 파리음악원에서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고 이 영향은 라벨의 곡에 그대로 나타나다. 그의 곡은 드뷔시와는 달리 단지 프랑스의 인상주의에서 볼 수 있는 환상적인 느낌을 넘어서서 다분히 낭만적인 서정까지 겻들여진다. 가브리엘 포레의 영향력이다.

고전음악 제목에 번호없이(작품번호를 말하는 것이 아님) ‘피아노협주곡’ 또는 ‘바이올린협주곡’이라고만 붙이는 이유는 그 작곡가의 곡 중에 피아노협주곡이나 바이올린협주곡이 단 한 곡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번호를 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면 라벨의 그 많고 많은 곡 중에 피아노협주곡이 한 곡밖에 없을까, 정확히 말하면 두 곡이지만 나머지 한 곡은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으로 제1차 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를 위해 작곡한 곡이고 순수하게 ‘피아노협주곡’으로 작곡한 곡은 사장조(G major)한 곡이다. 피아니스트인 라벨이 단 한곡으로만 남긴 피아노협주곡인 만큼 더욱 음악가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곡이다.

아다지오 아사이(Adagio Assai)’는 ‘충분히 느리게’ 또는 ‘매우 느리게’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그렇잖아도 느린 아다지오에서 얼마나 더 느리다는 말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단지 속도에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속도가 주는 그 안의 여유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평범한 아다지오와는 확연히 다른 충분한 여유가 느껴지는 2악장은 라벨 자신의 말을 빌면 그가 평소에 존경하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5중주 2악장을 모델로 삼아 작곡했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이 미술가나 음악가, 또는 문학에 있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 받으며 서로 닮아가는 것이 예술의 한 면모임을 표현해 주는 말이다.

시작부터 피아노의 카덴차가 유려하게 느린 속도로 차분히 흐른다. 이곡을 처음 작곡했을때 일화가 재밌다. 1932년 1월 파리에서 라벨의 지휘와 피아니스트 마르게리트 롱(Marguerite Long)의 피아노연주로 초연되고 뒤이어 동일 해 4월에 스튜디오 리코딩을 했는데 수십 번을 연주하고 심지어는 새벽 세시가 되어서까지 라벨의 참관 하에 연주를 종용했던 탓인지 아직까지도 마르게리트 롱의 연주는 최고의 가치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뒤로 가면서는 마치 점점 꺼져가는 촛불을 대하듯 작아지는 피아니시모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조각같은 외모의 남자, 라벨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더욱 쇠잔해졌고 2악장의 마지막은 점점 사라져 간 어머니를 연상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의 2악장을 모델로 삼았다 하니 이 곡 또한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을 비교해 들으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곡가, 뒷 무렵엔 미국으로 건너 가 재즈의 음율에 심취되어 그의 많은 곡에 재즈를 도입하기도 했던 작곡가다. 아다지오 아사이 답게 사라져간 한 불멸의 작곡가를 추모하면서 듣는 그의 곡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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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칼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