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29) 행복한 배움터 더럭과 아산
여행하는 재미는 알려진 관광지에서만 느끼는 건 아니다. 잘 알지 못하던 곳을 문득 만나거나, 생각지 못한 대상에서 경이롭고 아련한 서정을 느낄 때, 행복의 도파민이 터져 여울진다. 연꽃마을, ‘폭낭’이라는 매력적인 말에 끌려 두리번대다가 더럭, 마주한 하가리의 학교가 그랬다. 눈앞이 환해지고, 알 수 없는 행복한 감정이 솟아난다. 몸체건 창틀이건 담벼락이건 온통 무지개가 떠 있다. 알록달록 그 고운 빛깔에서 아이들이 송알송알 걸어 나오고, 통통 튀는 웃음소리는 교정의 잔디 위로 굴렀다. 이름조차 맹랑한 더럭초등학교라니….
나지막한 담장을 끼고 걷는다. 아이들의 시를 적은 천으로 만든 걸개에선 맑은 동심이 펄럭인다. '더할 가(加)'와 '즐거울 락(樂)'의 조합이 어우러진 더럭초등학교. 이름처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 아이들의 행복이 더해지는 배움터가 분명하다. 학교가 입은 옷의 색감이 밝고도 부드러워 지친 심상을 그러안는다. 바람 소리 속에서도 제주 특유의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곳, 나도 깡충깡충 책가방을 흔들며 들어서고 싶은 더럭의 교정이다.
고창에도 꿈과 감성을 키워주는, 아름다운 학교가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인 ‘병바위(반암)’아래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리며 고즈넉이 선 아산초등학교다. 이곳은 안장 바위, 소반 바위, 재갈 바위 등 저마다 이야기를 품은 채, 아홉 개의 기암이 우뚝 솟아 구암리라 불리는 마을에 가깝다. 학교는 병바위 숲과 이어진 전좌 바위 절벽을 병풍 삼았고 백 년은 넘었음 직한 벚나무들이 우람하게 줄지어 교정을 지킨다. 노랗게 물드는 교정의 민들레 위로 벚꽃이 구름처럼 피어나는 봄날의 서정, 초록이 지쳐 물드는 가을날의 화려한 정경은 성장기 아이들의 감성을 배부르게 하는 멋진 땔감이다.
그 바위 허리쯤에는 바위 밑을 파고 끼워 넣다시피 지은 두세 평짜리 작은 한옥, 두암초당이 깎아지른 절벽에 매달려 앞들과 학교를 내려다본다. 두암초당은 부모가 돌아가시자 삼 년 동안 시묘살이했던, 호암 변성온과 인천 변성진 형제의 지극한 효성을 기려 후손이 지은 정자이다. 이들은 각처의 학자들과 학문을 논했을 뿐 아니라 퇴계 이황에게 제자 되기를 청하기도 했다. 고창 태생 실학자 이재 황윤석을 비롯, 뛰어난 서예가 등 예술가들과 교유하며 지역의 문화를 꽃피웠다. 아산초교는 유서 깊은 초당과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늠름한 기상과 효의 근본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배움터이다.
이곳을 지나는 둘레길은 산등성이를 돌아 고창 유일의 하천인 인천강을 따라 서해에 이른다. 그 길에서 병바위를 향해 걸을 때면 아산학교 뒤안길을 지나곤 하는데, 아이들과 선생님이 격의 없이 어울리는 걸 가끔 본다. 재잘거리는 제자들을 데리고 둘레길에 나서는 선생님과 아이들 뒤태에 수다와 장난기가 몽글몽글하다. 청정한 산길을 걸으며 건강한 일상을 공유하는 추억은 아이들이 사는 동안 곤경에 처할 때 꺼내먹는 고농도 비타민이 아닐까 싶다.
요즘 젊은 층의 도시 집중으로 소도시의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 속에 소멸을 걱정하는 곳이 많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두 학교는 역사를 이어가며 나름의 활기를 만들어 낸다. 1946년에 개교한 더럭초교는 76년을 맞이하는 올해 칠십여 명이 재학 중이다. 1933년에 문을 연 아산초교 또한 세 학급에 불과하지만, 특수학급과 병설 유치원을 설치하며 활로를 찾아가는 모양새다.
이 두 곳의 공통점은 선생님과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 아산초교는 ‘마을과 함께 꿈과 감성을 키워가는 작은 학교 큰 울림’이라는 대명제 아래, 마을과 학교가 공동체를 이루며 아이들을 키워간다. 더럭초교 또한, 교사와 마을 사람들이 학교를 살리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기업이나 전문가의 도움도 끌어냈다. 삼성전자 갤럭시SⅡ 시판에 따른 고화질 컬러 프로젝트와 색채 디자이너 장 필립 랑클로와의 협력으로 학교 건물을 무지개색으로 단장했다. 그로 인해 ‘우뚝 솟은 한라산 정기를 받아, 고내봉 푸른 기슭을 감싸이는 곳이요, 저 멀리 푸른 바다 감돌아들고, 연화못 맑은 물이 샘솟는 곳’에 자리한 더럭 초등학교가 지지 않는 무지개로 빛나게 된 것. 손 모아 맞들어가며 삶의 공동체를 가꾼 것으로, 더불어 선을 이룬,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하가리는 연화지(蓮花池)가 있어 연꽃 마을이라면 상가리는 천년 고목 팽나무 거리가 있어 퐁낭 마을이다.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이루어 여름이면 사람들이 밖에 나와 쉬는 곳, 즉 낭뜰에 쉼팡이 되면서 마을 사람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대소사를 논의하는 곳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마을의 광장 노릇을 한 셈으로 폭낭은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주는 나무였고 어쩌면 폭낭과 마을 또한 공동체였던 것. 평화로운 연화지에는 봉긋봉긋 연꽃이 열리는데, 팽나무 즐비한 퐁낭 거리는 찾는 이가 드물어 한적하다. 나무 아래 등 굽은 마을 원로들만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폭낭과 닮은 채 고적하다.
아무려나, 위풍당당한 몸집으로 고즈넉함을 즐기듯 서 있는 폭낭은 해풍에 강하다. 바람에 잔가지가 꺾일망정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울퉁불퉁 모진 세월을 넘어온 멍투성이 몸에서도 어린잎은 자란다. 이십오 미터까지 훌쩍 자라 기꺼이 마을의 랜드마크 노릇을 한다. 게다가 목재가 가볍고 단단해 건축재나 가구를 만들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부부처럼 가까이 있으면 닮는 것인지, 그 강인하고 의연함이 제주 사람과 서로 닮아 보인다.
더럭의 발랄한 무지갯빛에 아산을 감싸안은 새뜻한 숲을 버무린다. 이내 윤슬 되어 빛난다. 잔물결처럼 온유하고 평화로운 정경이 싱그럽다. 아이들의 배움터는 지지배배 즐겁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