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28) 섭지코지에는 바람이 산다
바람의 나라, 섭지코지 언덕에 섰다. 바람은 여전히 이곳에 산다. 소리치며 달려와 아프게 부서지는 바다, 바람은 그 바다를 향한 연민으로 떠나지 못하는가. 절벽 아래 거대한 포말에서 소용돌이치며 휘몰아 무성한 풀숲을 드러눕힌다. 세찬 바람을 견디며 바위틈에 피어난 들꽃이 마음 자락을 잡는다. 바람은 부여잡은 옷자락을 날리고 머플러로 감싼 얼굴을 자비 없이 때린다. 얼음물에 세수한 듯, 심신의 티끌이 날아가 영혼은 청결하고 명징하다.
제주어로 ‘섭지’는 인물이 많이 나거나 좁은 땅이라는 의미요, ‘코지’는 바다로 튀어나온 ‘곶’을 이른다. 이색적인 이름을 가진 섭지코지는, 돌출된 반도 모양으로 검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독특하고 아름답다. 야생초가 우거진 산책로의 푸름은 송이와 대비되어 상큼하다. 얼마 가지 않아 '섭지연대'가 눈앞에 나선다.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바다의 긴박한 상황을 전하던 옛 봉수대다. 이제는 풍경을 조망하는 전망대가 되어 평화를 누리며 쉰다.
자박자박 걷다 보면,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에 닿는다. 안도 다다오는 노출콘크리트 건축물을 부흥시킨 건축가로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한다. “건축이 말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된다. 바람과 빛으로 가장한 자연이 말을 해야 한다.”라고 작가 스스로 말했듯이 물, 빛, 미로, 기하학적 구조 같은 소재를 즐겨 사용한다. 국내 여기저기에 그의 건축물이 있지만, 제주에도 본태박물관, 방주교회 등이 있어 여행객의 발길을 모은다.
유민미술관은 중앙일보 선대 회장 유민(維民) 홍진기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유리공예 미술관이다. 1890년대 아르누보 작품을 전시하는 전문 미술관으로 국내에 하나뿐이다. 아르누보란 무엇일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하던 유럽의 예술 사조로 '새로운 미술'을 뜻한다. 미술관은 다음을 위해 아껴둔다는 핑계를 대며, 카페 글라스하우스로 들어선다. 바람은 입장 불가, 웅크린 어깨를 펴고 자대바대 기대앉는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놀멍 쉬멍, ‘바다멍’에 취한 시간은 노곤한 여행자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바다 건너 길게 누운 일출봉을 바라본다. 전 세계 화산학자들이 성지로 꼽는다는 늠름한 위용이 한눈에 담긴다. 이곳에서 보는 성산의 모습은 육중한 몸집을 바다에 담근 채 뭍을 향해 뿔을 치켜든 거대한 코뿔소 같다. 어쩌면, 천년만년 뭍에 오르고픈 꿈을 꾸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자연은 무심한 척 작품을 숨겨두지만, 사람들은 용케 찾아내 이러쿵저러쿵 스토리텔링의 잔재미를 누린다.
섭지코지는 섬이었다. 그러던 것이, 수만 년 쌓인 모래로 본섬에 이어진 육계도가 되었고 아담한 해수욕장까지 품었다. 바다 가까이 서면, 굽이치는 해안 단애의 생동감이 아찔하다. 검붉은 화산암이 톱니처럼 들쭉날쭉 돋아났고, 그 위로는 하얀 포말이 아우성치며 제 몸을 부순다. 태평양의 거친 바람과 절벽에 부딪히는 우레같은 파도 소리는 생생한 대자연의 웅장한 노래다. 격정적인 그 합창에도 선돌 바위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태평하게 서 있다.
이곳은 언제 와도 좋다. 봄에는 움트는 신록과 유채꽃이 낭만을 안기고, 여름에는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무성한 녹음에 행복해진다. 색색의 단풍이 바람조차 물들이는 가을 풍경도 아름답지만, 차분하게 눈발이 날리는 설경이라도 만난다면 그 풍광은 말해 무엇할까. 이렇듯 거친 바람 속에서도 사계절은 오고 가고, 이곳에 깃든 숨탄것은 저마다 주어 진대로 삶의 여정을 이어간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 걸까. 색채도 형체도 냄새도 없으나, 다양한 형상으로 우리 곁을 맴돈다. 숲으로 들면 나뭇잎으로 흔들리고 강변을 스쳐 갈 땐 은물결로 흐른다. 흩날리는 꽃잎과 갈색 낙엽으로 유영하다가 어느 날, 하얀 눈보라로 나목 위에 내린다. 대양의 심연을 뒤집어놓을 셈으로 으르렁으르렁 휘몰아치다가도, 힘겨운 이의 굽은 등을 밀어주며 동행하기도 한다.
오래전 섭지코지에 섰을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검은 구름을 등에 지고 아득한 멧부리를 하릴없이 바라본 건 아니었는지…. 이내 충만한 활력으로 펄떡이는 바닷바람이 보챘다. 일어나라고, 저기 꿈의 정원이 보이지 않느냐고. 생기를 창조하는 바람은 길 위에 멈춘 자를 걷게 하고, 초원 위에 누운 이를 일어서라 떠밀었다.
삶이 눅눅해진 날, 바람 부는 언덕을 걸어보자. 칼칼한 바람에 심신을 내맡기면, 가슬가슬 햇볕에 마른 옷처럼 청신하고 가벼워진다. 파도가 솟구쳐 오르고 연민의 바람이 휘몰아치면, 온갖 들꽃은 환희의 춤을 준비한다. 분명, 섭지코지에는 생명의 바람이 산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
수필집 《우리, 수작할까요》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