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증요법에 익숙한 사회는 창의성이 없는 사회
[특별기고]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후진국형 재난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후진국형 재난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우리 사회가 후진국형으로 재난을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나라가 아직 후진국형 관리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편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후진국형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모두 한 목소리로 우리의 안전 불감증을 지적한다.
이런 안전 불감증이 전형적인 후진국형 증세다. 재난이 일어나고 나서 그 원인들을 다양하게 분석하는데, 초점은 다음 세 가지로 집중된다. 안전 불감증, 준비소홀, 훈련부족이다. 후진국형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딱 세 가지, 안전, 준비 그리고 훈련만 제대로 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이 세 가지를 해내지 못하고 있다.
맞다. 우리가 아직까지 해내지 못했다면, 그것들을 해낼 능력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사실 세 단어들은 매우 쉽게 이해되는 것들이지만, 난이도는 상당히 높다.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는 것들이다. 보자. 안전, 준비 그리고 훈련이라는 이 세 가지는 모두 아직 오지 않은 것들,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미리 대비하는 태도들이다.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것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다. 현상 세계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구체적이지 않은 것에 접촉하려는 도전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 지성의 근원인 덕의 활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덕의 활동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근거로 한다. 궁금증과 호기심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향해 나아가보려는 꿈틀거림 혹은 몸부림이지 않은가.
지성은 어떤 것에 지적인 이해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성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치는 힘이다. 발버둥으로 완성된다. 무언가에 대해 지성으로 접근하는 일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을 궁금해 하는 것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지성적이다. 지성적이면 질문을 하지만, 덜 지성적이면 고작 대답하는 일에 그친다.
안전, 준비 그리고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덜 지성적이기 때문이다. 안전, 준비 그리고 훈련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삶이나 사유가 지성적인 차원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양, 인문, 철학, 문화, 선진, 그리고 선도적인 시선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우리에게 난이도가 높다. 지금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고, 창조나 문화가 강조되는 것도 모두 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이 수준에 이르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다.
후진국형 재난이 마무리되고 나면 모든 언론에서 저마다 분석 기사를 싣는 데, 이번에도 땜질처방, 대증요법 이 두 가지가 대부부분의 분석기사들 결론이다. 이런 땜질처방이나 대증요법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보이는 현상만 대충 처리하는 것이다. 근원적이라기보다는 피상적 접근이다. 대증요법과 땜질처방에만 익숙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해결되면 다 해결된 줄 안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만 문제로 인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영역에 시선이 도달해 있지 않으면 피상적인 방법으로는 그 이상 접근은 불가능하다. 왜 후진국형 재난이 끊이지 않는지, 후진국형 사고 이후에도 우리는 왜 교훈을 얻어 개선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지, 왜 땜질처방이나 대증요법만 반복하는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왜 전술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전략적 단계로 상승할 꿈을 꾸지 않는지, 왜 창의보다는 훈고에만 빠져 있는지, 왜 질문보다는 대답에 더 익숙한지, 왜 본질적 가치보다는 기능에 떠 빠지는지 등등이 모두 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그렇다.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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