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는 4월에 끝났다...이슈도 쟁점도 없었던 제주도지사 선거
[분석] 위성곤 최고 득표율 압승 뒤에 남은 '무쟁점 선거'..왜?
민주당 경선 이후 굳어진 판세…정책 경쟁 실종, 유권자 관심 저하
정당 구도 변화 속 '관리형 선거운동'...역대급 저관심 선거 아쉬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도지사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후보의 압승으로 마무리됐다. 최종 개표 결과 위 당선인은 63.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역대 제주도지사 선거 당선인 가운데 최고 득표율로 당선됐다. 국민의힘 문성유 후보는 33.5%, 무소속 양윤녕 후보는 3.3%를 얻었다.
득표율만 놓고 보면 위 당선인의 완승이었다. 선거 과정에서도 줄곧 우세 흐름을 유지하며 단 한 차례도 흔들림 없는 선두를 지켰고, 결국 예상됐던 결과가 현실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압도적 승리의 이면에 적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선거 초반부터 승부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정책 경쟁과 검증은 실종됐고, 유권자들의 관심도 역시 좀처럼 높아지지 못했다.
선거 기간 내내 도민 사회를 흔들 만한 이슈나 쟁점이 부각되지 못했고, 후보 간 정책 대결이나 치열한 공방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는 역대 제주도지사 선거 가운데서도 가장 밋밋하고 관심도가 낮았던 선거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승부는 일찌감치 예견됐지만, 유권자들에게 감동과 긴장감을 주는 선거는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었다
이번 도지사 선거의 분수령은 민주당 경선이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위성곤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지난 4월 18일 사실상 승부가 결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주자 가운데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국민의힘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 위성곤 후보가 본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도 우세 흐름은 흔들리지 않았고, 선거 막판까지 판세 변화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 역할을 한 셈이다. 본선 체제로 전환된 이후 선거 열기는 급속히 식었고, 유권자들의 관심도 '누가 당선될 것인가'보다 '얼마나 큰 격차로 승리할 것인가'에 맞춰졌다. 국민의힘 문성유 후보가 선거 후반 추격에 나섰지만 선거의 관전 포인트 역시 역전 여부가 아닌 격차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머물렀다.
◇ '기울어진 운동장'…정당 구도 변화가 승부 갈랐다
이번 선거 결과를 설명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제주 정치지형 변화가 꼽힌다.
그동안 제주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경쟁해 왔다.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와 정권 교체 이후 국민의힘의 정치적 기반과 조직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균형추가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민주당은 조직력과 지지층 결집력을 유지한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전부터 내부 갈등과 조직 혼란에 시달렸다. 지방선거 후보 공천 과정에서도 인물난을 겪으며 32개 제주도의원 선거구 가운데 17곳에서만 후보를 공천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선거를 앞둔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사실상 혼돈의 연속이었다. 당내 갈등이 이어진 데다 본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던 4월 말에는 고기철 도당위원장이 서귀포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하면서 비상체제로 전환됐다.
뒤늦게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해 상대 후보 공약 검증과 정책 공세에 나섰지만 이미 판세는 상당 부분 굳어진 상태였다. 문성유 후보 역시 선거 기간 적극적인 현장 행보를 이어갔지만 선거 구도를 뒤흔들 결정적 이슈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민주당 경선 이후 사실상 굳어진 선거 구도를 끝내 흔들지 못했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이슈를 선점하지 못한 데다 조직력 약화와 내부 혼란까지 겹치면서 선거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정치권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여러 불리한 여건이 겹치면서 사실상 승부를 뒤집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 승패보다 득표율에 집중…정책 검증 실종 논란
이런 가운데 이번 도지사 선거가 역대 가장 '감동 없는 선거', '정책 검증이 실종된 선거'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위성곤 당선인 캠프의 선거 전략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성곤 캠프는 접전 선거에서 흔히 나타나는 공세적 전략 대신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캠프 내부에서는 승패 자체보다 득표율과 승리 규모에 관심이 쏠렸고, 상대 후보와의 정면 대결보다는 안정적인 지지층 관리에 무게를 둔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우세한 후보가 불필요한 논란과 변수 발생을 차단하며 승리를 관리하는 '관리형 선거운동'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책 경쟁과 검증 역시 실종됐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실제 위성곤 캠프는 공직선거법상 최대 12면까지 제작할 수 있는 책자형 선거공보를 주요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8면으로 제작했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핵심 공약과 정책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 권리를 제약시켰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거 막판에는 대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폭발사고를 이유로 마지막 총력 유세를 전면 취소했다. 또 '경청캠프'를 통해 접수한 도민 정책 제안 결과를 발표하는 등 선거운동보다는 당선 이후 도정 운영 준비에 무게를 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선거 직전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시·도지사 후보들의 '호남·제주 초광역 메가시티' 공동선언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의 정체성과 미래 발전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충분한 설명이나 공론화 과정 없이 협약이 추진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국민의힘 측이 문제를 제기하며 쟁점화를 시도했지만 위성곤 캠프가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서 정책적 검증과 공개 토론의 기회도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슈도 쟁점도 없었던 '저관심 선거'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이번 선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쟁점'이었다.
민주당 경선 이후 선거 열기는 빠르게 식었고, 선거판을 흔들 만한 대형 이슈도 등장하지 않았다. TV토론 과정에서 일부 공방이 오갔지만 정책 경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후보 캠프 간 논평전이나 성명전도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민의힘이 정책 쟁점화를 시도했지만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본격적인 공방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결국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을 충분히 비교·검증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선거를 두고 역대 제주도지사 선거 가운데서도 관심도가 가장 낮고, 가장 밋밋했던 선거 중 하나라는 평가가 나온다.
위성곤 후보의 압승은 개인 경쟁력과 민주당의 조직력, 변화된 정치지형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다만 이번 선거는 정책 경쟁과 검증, 비전 대결이 실종되면서 지방선거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