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이야기]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가

우하영/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

2026-05-18     우하영
우하영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성을 유지하는 핵심 기제는 ‘소통’이다. 우리는 매일 수천 개의 단어를 내뱉으며 타인과 연결되지만, 역설적이게도 소통의 방식을 오직 목소리와 청각이라는 협소한 틀 안에 가두어 생각하곤 한다. 청각장애를 단순히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결함’으로만 정의하는 시각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나 진정한 소통은 고막의 떨림이 아니라 마음의 울림에서 온다. 언어를 전달하는 경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채롭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의 삶은 이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들에게 소통은 귀가 아닌 눈으로, 입술의 움직임으로, 그리고 손끝의 궤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소통의 부재가 아니라 ‘소통 방식의 확장’이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다양한 소통 방식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한 인물의 삶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1987년,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지명된 이는 21세의 신예 배우 말리 매틀린(Marlee Matlin)이었다. 그녀는 생후 18개월 만에 청력을 잃은 청각장애인이었다. 영화 <작은 신의 아이들(Children of a Lesser God)>에서 그녀가 보여준 연기는 전형적인 ‘장애 극복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스크린 속에서 단 한 마디의 음성 대사도 없이, 오직 수어와 표정, 그리고 온몸의 근육을 활용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고독과 사랑을 표현해냈다.

그녀의 수상은 영화사적 사건을 넘어 소통의 패러다임을 바꾼 상징적 순간이었다. 매틀린은 이후 수많은 인터뷰에서 “나는 귀가 들리지 않을 뿐, 못 하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녀에게 수어는 장애를 보완하는 수단이 아니라, 세상과 가장 완벽하게 연결될 수 있는 ‘제1 언어’였다. 그녀의 활동은 대중에게 수어가 음성 언어만큼이나 정교하고 논리적이며, 감정의 미세한 결까지 담아낼 수 있는 훌륭한 소통의 도구임을 증명해 보였다.

우리는 흔히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책임을 장애인 당사자에게 돌리곤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청각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소통의 단절은 그들의 감각 기관 때문인가, 아니면 사회의 설계 방식 때문인가?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의 열띤 강연이 자막 없이 흘러갈 때, TV 긴급 재난 방송에서 수어 통역사의 화면이 지나치게 작게 처리될 때, 혹은 관공서에서 오직 음성 전화로만 민원을 접수할 때 청각장애인은 소통으로부터 소외된다. 이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음성 소통’이라는 단일한 방식만을 정답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강조되는 ‘사회적 관점(Social Model)’의 장애 인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장애는 개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사회 환경이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영상에 폐쇄 자막(CC)을 입히고, 공공 행사에 전문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며, 문자 기반의 소통 창구를 다양화하는 것은 배려가 아닌 ‘소통의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

소통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비단 청각장애인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시끄러운 공사 현장에서 수어로 대화할 수 있다면, 혹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표정과 몸짓으로 깊이 교감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세계는 훨씬 넓어질 것이다. 실제로 자막 서비스는 청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난청 노인,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소리를 켜기 어려운 공공장소의 비장애인들에게도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말리 매틀린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듣는다. 그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풍요로움이다.”

결국 소통의 완성은 기술적인 보조 장치에만 있지 않다.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 보며 또박또박 말하려는 태도, 상대의 손짓에 담긴 진심을 읽으려는 인내심, 그리고 세상에는 나와 다른 수많은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에서 시작된다.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한 장애 유형에 대한 지식을 쌓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연결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가 서로의 고유한 소통 방식을 존중하고 사회적 장벽을 허물어갈 때, 비로소 침묵은 단절이 아닌 또 다른 울림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소리 너머에 있는 수많은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