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정치의 민낯…비례대표, 누구를 위한 증원이었나
[데스크논단] 도의원 비례대표 정당 공천에 비판 쏟아지는 이유
교육의원 폐지 대안 내세웠지만…결국 거대 양당 의석 늘리기
"그들만의 잔치" 양당 독식 심화…'도민 대표성 확대' 약속은 실종
6·3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비례대표 후보 공천을 두고 도민사회 비판이 거세다. 비례대표 의석을 기존 8석에서 13석으로 확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거대 양당의 의석만 늘리는 구조로 귀결되면서 “누구를 위한 증원이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비례대표 공천 결과를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정치 다양성과 도민 대표성을 확대하겠다던 당초 취지와 달리, 이번 공천은 제주 정치의 폭을 넓히기보다 양당 중심 기득권 구조만 더욱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비례대표 증원이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했다는 냉소까지 나온다.
이번 제주도의원 비례대표 의석 증원은 교육의원 제도 폐지에 따른 대안 마련 차원에서 추진됐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 시행돼 온 교육의원 선거제도가 일몰제로 이번 임기를 끝으로 폐지되면서,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도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방식이 선택됐다.
개정된 제주특별법은 전체 의원 정수를 ‘45명 이내’로 하고, 비례대표 비율도 기존 20%에서 ‘25% 이상’으로 상향했다. 이에 따라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역구 의석 32석은 유지한 채 비례대표 의석을 기존 8석에서 13석으로 5석 늘리는 안을 확정했다.
당초 제출된 법률 개정안은 비례대표 증원의 필요성으로 교육의원 폐지에 따른 교육·학예사무의 연속성 확보와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의 의회 반영을 제시했다. 이는 본래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비례대표제는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의회에 반영하고, 청년·여성·장애인·사회적 약자 등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다. 이번 증원 과정에서 군소정당과 시민사회가 비례대표 확대를 요구했던 것도 정치 다양성과 대표성 강화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 거대 양당 비례대표 공천, 과연 제대로 됐나
하지만 실제 정당 공천 과정은 이러한 취지를 스스로 허물어버렸다. 최소한의 원칙과 방향성마저 실종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후보 13명을 확정했고, 국민의힘은 6명을 공천했다. 그러나 후보 선정 방식과 공천 결과를 보면 전문성과 대표성 확대보다 정당 내부 안배와 정치적 배분 논리가 앞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첫째, 이번 증원의 핵심 명분이었던 ‘교육의원 폐지에 따른 대안 역할’과 관련해 교육 전문성을 갖춘 인사는 양당 공천 명단에서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둘째, 장애인 등 사회적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이나 직능별 전문성·사회적 대표성을 고려한 흔적도 미미하다.
공천 과정 전반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국민의힘에서는 심사 과정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당초 정한 원칙과 기준이 뒤바뀌는가 하면, 범죄 전력으로 당규상 부적격 논란이 제기된 인사에게 당선권 순번이 부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천 기준과 원칙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공천 문제를 비판했지만, 자신들 또한 도민 기대와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후보 선출에서 권리당원 투표 방식을 택한 것은 형식적으로는 민주성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과 기준 없이 진행되면서, 결과적으로 조직력과 인지도에 좌우되는 ‘인기투표’로 흐르고 말았다.
그 결과 당선 가능권으로 분류되는 순번 후보군에서는 교육 분야 전문가는 물론, 그동안 최소 1명 이상 포함돼 왔던 장애인 분야 인사조차 단 한 명도 배정되지 못했다. 정치 다양성과 사회적 대표성을 확대하겠다던 비례대표 증원 취지는 무색해졌다.
이번 공천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의회 진출 통로를 넓히기보다, 오랜 기간 당원 조직을 관리하고 당내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온 인물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구조로 귀결됐다. 비례대표가 ‘도민 대표성 확대’가 아닌 정당 내부 경쟁의 보상 체계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소수정당 막는 ‘5% 장벽’ 왜 손 못 댔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종 의석배분도 거대 양당이 독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비례대표 의석은 늘었지만, 정작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 문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기 위해서는 정당득표율 5% 이상을 얻어야 한다. 이 기준을 넘지 못하면 아예 의석 배분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의 3% 기준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폐지됐지만, 지방의원 비례대표에는 여전히 5% 장벽이 유지되고 있다.
의아한 대목은 이러한 위헌성 논란에도 제도 개선 논의가 사실상 외면됐다는 점이다. 정치 다양성과 대표성 확대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소수정당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은 그대로 둔 셈이다. 거대 양당이 확대된 비례대표 의석을 사실상 독식할 수 있는 구조를 방치했다는 점에서, 이를 두고 양당의 ‘의도적 방기’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소수정당의 진입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늘어난 비례대표 의석 역시 거대 양당이 대부분 가져가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 군소정당 가운데 5% 득표율을 넘는 정당이 없다면, 13석 전체를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나눠 갖게 된다. 비례대표 증원이 정치 다양성 확대보다 양당 독식 구조 강화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민낯 드러낸 제주 정치...유권자 선택은
이번 논란은 ‘숫자 늘리기’에만 매몰된 비례대표 증원 논리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사실 이미 예상됐던 일이기도 하다. 비례대표 확대를 추진하면서도 5% 봉쇄조항 개선 문제나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과 전문성을 반영할 제도적 장치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던 결과다.
소수정당 진입은 여전히 높은 벽에 가로막혀 있고, 교육의원 폐지에 따른 전문성 보완도 보이지 않는다. 비례대표 확대가 정치 다양성 강화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거대 양당 중심 구조만 더욱 공고히 한 셈이다. 비례대표 증원의 역설이자 제주 정치의 민낯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녹색당·노동당과 진보단체들이 추진하는 지방선거 연대는 제주 정치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자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정의당이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녹색당 후보로 단일화한 것은 소수정당이 각개약진으로 넘기 어려운 5% 장벽을 연대를 통해 돌파해보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현실 정치판은 거대 양당 중심으로 작동되고 있고, 독자적 후보를 낸 진보당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번 연대는 최소한 비례대표 본래 취지인 정치 다양성과 사회적 대표성을 회복하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비례대표 증원의 핵심은 단순히 의석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누구를 의회에 진출시키고, 어떤 목소리를 제도 정치 안으로 담아낼 것인가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되는 이유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