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듣는 클래식](60)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2악장 아다지오

2026-05-27     정은실

고전음악 중에서도 현대에 가까운 인상주의와 국민악파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지나친 고전스러움에 물렸다고 할까, 한참 상징주의 시와 관련된 라벨, 드뷔시, 스트라빈스키에 심취하고 러시아 국민악파 5안방을 비롯해 북유럽의 민족악파 음악을 들으며 노메딕한 라이프 스타일로 소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가 문득 음악에 허기(Hunger in Music)가 오기 시작했다. 매사에 짜증이 나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하는 의구심과 함께 본래부터 갈구하던 영성의 본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할 수 없는 내면의 갈등에 괴로워할 때 만난 곡이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다. 그때 다시 돌아온 베토벤의 품은 마치 탕자를 기쁘게 맞이한 아버지같다고 할까, 그런 마음으로 다시 만난 베토벤이다.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고전음악을 이리저리 원하는 대로 들어보다가 결국 돌아오는 원점은 베토벤이었다는 고백은 심심잖게 회자되는 얘기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은 모두 5곡이다. 혹자는 적은 숫자에 놀랄지 모르나 들어보면 하나같이 대작임을 알 수 있다. 처음 두 곡, 1번과 2번은 선배이며 스승인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느낌이 물신 풍기지만 3번은 전혀 다른 느깜의 협주곡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때쯤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갖추기 시작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3번은 전환기적인 곡이라 할 수 있다. 마침내 4번과 5번에 와서는 베토벤다움이 최고조에 이른다. 피아노협주곡 4번과 5번의 서로 상반되는 성격과 이로 인한 유명세는 고전음악 애호가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흔히 4번을 여성적, 혹은 ‘이브’에 비유하고 5번을 남성적, ‘아담’에 견준다.

그러면 왜 황제라는 부제가 붙었을까, 황제라는 부제는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게 아니고 후대에 출판업자들이 붙인 것인데 혹시 나폴레옹을 생각하고 붙이지 않았나 추측한다면 잘못된 추측이다. 이 곡이 작곡된 시기를 생각하면 이미 베토벤은 민중의 해방자를 자처했다가 마침내 자신이 황제가 된 나폴레옹을 위선자라고 비난하며 몹시 싫어했던 시기다. 따라서 나폴레옹을 황제라고 지칭했다는 건 틀린 얘기다. 다만 이 곡에 전체에 흐르는 웅장한 기운과 영웅적 기상 그리고 아래 위를 마음대로 오르내리는 방대한 스케일 등에서 누군가가, 또는 출판업자가 처음 황제라는 별칭을 붙였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있는 설이다. 이 곡은 베토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의 후원자면서 제자였던 루돌프공에게 헌정되었고 이 곡이 작곡되었을 당시는 전시였고 베토벤의 청력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작곡 후 2년이 지난 1811년에 처음 루돌프 공의 독주로 세간에 알려지고 베토벤의 제자인 카를 체르니(체르니 피아노 교본으로 유명한)에 의해 이듬해인 1812년 빈의 퀼른 토나토아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악장 시작부터 흐르는 카덴차의 상승하는 힘찬 기운에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힘이 솓구치는 악장이다. 피아노협주곡 4번의 여성적인 시작은 서주의 도입부처럼 톡톡 튀기는 인트로덕션인데 반해, 5번은 시작부터 카덴차다.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전체 40분 중에서 거의 반을 차지하는 1악장은 계속 각 악기마다 제 몫을 다하게 오케스트라 전체의 협주가 돋보인다. 주로 협주곡 1악장의 마지막 부분은 독주악기의 카덴차가 흐르는 게 대부분인데 오히려 카덴차가 생략되면서 역동성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자연스럽게 2악장으로 넘어간다. 오늘 소개하는 2악장은 가장 짧은 악장이지만 피아노협주곡 5번의 꽃이다. 아다지오의 명상적인 음률이 기도하는 자세로 흐른다. 너무 아름다워서 성스럽기까지 한 이 짧은 악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웃고 울고, 희비의 쌍곡선을 오르내였을까싶다. 카덴차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바이올린의 여린 음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 위로 잔잔하게 명상의 테마가 흐른다.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이런 음률을 작곡할 수 있을까, 그것도 청력상실의 상태에서, 마치 신의 힘이 닿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숭고하고 성스러운 아름다움이 깃든 악장이다. 필자 역시 2악장을 연거푸 듣고 눈물을 쏟아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절제된 성스러움의 미에서 오는 감동으로, 때로는 호소하는 듯한 울림으로. 3악장은 쉼없이 아타카(Attacca-악장 끝에서 쉬지 않고 다음 악장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지시하는 말)로 연결된다. 론도형식의 경쾌한 3악장은 힘이 솟고 경쾌해지며 하루의 노고를 달래주는 악장이다.

베토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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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칼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