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훈의 말말복지] 선 넘는 돌봄 정책: 제주 가치돌봄사업의 역설과 과제

2026-03-10     김진훈

■ 선의를 앞세운 정책이 넘어서서는 안 될 선

복지 정책은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선의만으로 정책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공공 재원이 투입되는 순간 정책은 공정해야 하고, 제도 간 관계 속에서 일관성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사회적 자원이 가장 필요한 곳에 배분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제주도가 추진하는 ‘제주가치돌봄’ 역시 이러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2023년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되었고, 일상생활지원·방문목욕·식사지원·동행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 돌봄 정책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용자도 1만 2천 명을 넘어섰고 올해부터는 무상지원 기준을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정책은 규모나 이용자 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제도의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제주가치돌봄은 복지정책의 기본 원칙과 충돌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조적 질문을 드러낸다.

■ 정책 분석의 기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떤 재원으로

복지정책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 기준으로 평가된다.

누가 대상인지(대상자), 무엇을 제공하는지(급여), 어떻게 전달되는지(전달체계), 어떤 재원으로 운영되는지(재정)이다.

이 네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정책은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가치돌봄을 이 기준으로 살펴보면 몇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 대상자: 사각지대를 향한 시도

제주가치돌봄의 대상자 설정 자체는 의미 있는 시도다. 장기요양보험이나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등 국가 돌봄제도는 일정 기준 이상의 장애 정도나 기능 저하를 요구한다. 그 결과 제도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제도 밖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주가치돌봄은 바로 이러한 국가 돌봄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의를 가진다.

문제는 제도 간 관계에서 발생한다. 장애 정도가 높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일정 수준의 본인부담금을 낸다. 반면 활동지원 등급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제주가치돌봄을 통해 무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결국 돌봄 필요도가 높은 사람은 비용을 부담하고 필요도가 낮은 사람은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복지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인 대상자 선정의 형평성이 흔들릴 수 있는 지점이다.

■ 급여: ‘무료니까 받으라’는 집행, 세금 누수의 또 다른 경로

현장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인데도 행정에서 받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서비스 이용에 본인부담금이 없는 정책 설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정 수준의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에서는 이용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하게 되지만, 비용 부담이 없는 구조에서는 서비스 이용의 기준이 ‘필요성’보다 ‘무료 여부’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사자 역시 실제 필요 여부보다 “공짜인데 안 받으면 손해”라는 인식 속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필요와 무관한 이용이 정책 실적으로 축적될 경우 1만 명 이용이라는 숫자가 실제 돌봄 수요를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 전달체계: 국가 돌봄제도보다 더 적극적인 지방 정책 홍보의 역설

전달체계에서도 역설이 나타난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분명하다. 장기요양보험과 장애인활동지원제도조차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대상자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국가 제도 홍보보다 제주가치돌봄 대상자 발굴에 더 적극적이다. 제주시는 장기요양등급자 가운데 기존 돌봄서비스 대상이 아닌 8,169명을 대상으로 상담을 권유하고 있다. 서귀포시 역시 1,014가구에 돌봄 서비스를 안내하고 방문 상담까지 진행하고 있다(노컷뉴스, 2025).

돌봄 대상자를 발굴하려는 노력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국가 돌봄제도 홍보를 위해서도 이 정도의 행정력이 투입된 적이 있었을까.

국가 제도는 몰라서 못 받고, 지방 정책은 찾아가서 권한다.

이것이 과연 정책 우선순위에 맞는 전달체계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 재정: 지방재정 100% 정책이 만드는 또 다른 역설

재정 문제도 남는다. 제주가치돌봄은 지방 재정이 전액 투입되는 정책이다. 무상지원 기준을 기준중위소득 120%까지 확대하면서 정책 대상은 더 넓어졌다.

문제는 비용 구조다.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에게는 무료지만 그 기준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서비스 비용을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일정 수준의 비용을 분담하는 국가 돌봄제도와 달리, 이처럼 급격한 비용 구조는 형평성 논리보다 행정 집행의 단순성에 가까운 설계다. 국가 제도조차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방 재정으로 운영되는 정책이 계속 확대된다면 재정 부담 역시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다.

재원 논의 없는 확대는 결국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흔든다.

■ 복지는 숫자가 아니라 원칙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제주가치돌봄 정책의 취지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국가 돌봄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시도는 분명 의미가 있다. 지방정부가 중앙 제도의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제주가치돌봄의 문제는 정책 취지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정합성에 있다. 국가 돌봄제도와의 관계 속에서 체계적으로 설계되기보다 별도의 지방 정책으로 빠르게 확대되면서 제도 간 역할과 기준이 충돌하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확대가 아니라 정책 구조의 재정비다.

첫째, 제주가치돌봄의 정책 위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제주가치돌봄은 국가 돌봄제도를 대체하는 정책이 아니라 그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보완적 정책으로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서비스 구조 역시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조정될 필요가 있다. 일정 수준의 본인부담 체계를 포함하고 정책 대상자 발굴 역시 지방 정책 중심이 아니라 국가 돌봄제도와 연계된 통합적 전달체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앞으로 시작되는 통합돌봄 정책 역시 이러한 정책적 교훈 속에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지역 돌봄정책은 개별 사업을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도 간 관계와 역할을 함께 설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와 비판적 시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정책 정보 역시 단순한 행정 안내를 넘어 도민과 현장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양방향 돌봄 정보 플랫폼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돌봄 정책의 목적은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 자원이 제대로 전달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복지는 숫자가 아니라 원칙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김진훈

<김진훈의 '말말복지' 코너는...>

말말복지는 말이하는 복지, 말로하는 복지를 의미하며, 말을 통해 제주의 복지를 알리고, 정책을 만들어가는 복지사의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가치실현을 위해 15년간 도내외 대학에서 사회복지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복지in연구소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c/복지in연구소)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진훈 복지in연구소 소장
사회복지전공 석사 / 직업재활전공 박사 / 사단법인 복지인광장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