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찰흙에 물이 닿듯, 다시 삶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기고] 김주리 사단법인 제주아이특별한아이 대표
햇볕에 말라 굳은 찰흙 같았습니다.
깊이 금이 가고, 부서지고, 더는 빚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나를 지키는 것도 모두가 벅찬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밖에 나가면 들려오는 말들,"저런 아이는 왜 데리고 나왔대?", "좀 조용히 시킬 수는 없어요?". 그 말들에 나는 더 작아졌고, 그럴수록 세상과 나 사이에는 벽이 하나씩 쌓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누군가 말 걸어주었습니다.
"저희 아이도 말을 못 해요. "그 짧은 한마디가, 나와 누군가의 삶을 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한 가정의 돌봄’은 ‘마을의 돌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토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수는 없을까?
프로그램도, 예산도 없었지만 부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친구의 친구를 섭외해 체육 수업을 열었습니다.
그때 자원봉사로 시작한 체육 선생님은, 지금은 정식 특수체육 교사가 되어 8년이 넘도록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돌봄이 ‘업무’가 아닌, 삶으로 이어진 순간이었습니다.
프리마켓에서 “오뎅 사세요!”
처음으로 아이의 목소리가 세상에 닿았습니다. 아이를 향해 웃으며 손을 잡아주는 이웃들, 그때 저는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이젠 마을의 ‘작가’가 되었고, 사람들과 인사할 수 있는 이웃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이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마을은, 우리 모두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한 전시회, 노인과 아이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운동회, 낯설지만 함께 웃고 울었던 영화관 단체관람까지.
학교는 문을 열어주었고, 지역사회는 후원으로 응답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작가입니다.”
지원금은 끝나도, 관계는 남았습니다.
사업이 종료되어도,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인사, 주말에 이어지는 공동육아, 소풍과 전시회로 이어지는 연대는 계속됐습니다.
누군가 다가와서 말해준 그 한마디. “같이 가요.” 그 말은 돈보다, 제도보다 우리가 받은 가장 따뜻한 ‘지원금’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이라는 물이 닿자, 굳고 금 가 있던 찰흙 같은 삶은 다시 빚어지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만든 돌봄의 길이 지금 어디선가 굳어버린 마음을 품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의 물이 되어 닿을 수 있기를.” <김주리 사단법인 제주아이특별한아이 대표>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