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 실험,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되다

[김평선 시론-제주국제자유도시와 제주의 미래] (4) 과도기 실험, 제주도개발특별법

2025-06-12     김평선

1990년대 제주개발특별법 시대가 2001년 제주도가 제주국제자유도시로 지정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90년 이래 제주개발 문제와 제주의 미래를 위한 논쟁과 토론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미래, 공동체의 미래, 제주 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제주도민도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 논의는 개발 vs 보전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개발과 환경 파괴 문제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도 중요하다. 도민의 삶도 중요하다. 그래서 현 제도를 만들어 낸 과거를 바로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겪는 다양한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즉, 현재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작동시키는 논리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현실과 제도를 평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현실로서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이런 바탕에서 제주국제자유도시에 대한 논의를 다른 차원으로 이어갈 수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와 제주의 미래]를 주제로 제주국제자유도시가 탄생하게 된 맥락을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되짚어 보고, 제도가 어떤 논리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는지, 그 속에 오류는 없는지 검토하려 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역사 속에서 경제와 사회가 혼란하고 미래가 불안할 때마다 미래의 모습을 모색해 왔다. 지금이 바로 ‘그때’일 수 있다. 그래서 도민 각자가 원하는 세상을 상상하는 힘을 회복하는 일도 중요하다. 미래를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감각과 이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과도기 실험,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되다.

근대 이래 근대국가는 국가를 운영하는 수단(statecraft)을 발견했다. 전통적인 수단인 외교와 전쟁, 군사력 이외에 금융 제도, 정부 재정 정책, 무역과 관세, 사회 정책, 복지정책, 지방자치와 민주주의, 분권화, 권한 이양(devolution), 토지 이용 등이 근대국가 성립 이후 현대에 사용하는 주요 국가 운영 기술이 되었다. 근대 초 절대군주제 국가에서 국왕의 독선적인 국가 운영(전쟁과 과도한 세금 징수)에 따른 국가 위기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서, 민주주의는 국가 운영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근대 초 삼권분립, 지방자치 역시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국가를 민주적으로 운영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국가 운영에 누구를 어느 범위까지 포함할 것인지 논쟁하고 투쟁한 역사가 민주주의 역사였고 현재 진행형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고안한 제도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군주 혹은 소수집단의 자의적인 지배가 아니라 다수의 대중이 참여하여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자가 비상계엄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독재체제로 후퇴하여 자유가 침해되기도 했다. 권력자가 지방자치를 폐지하고 국가 운영 참여자를 자의적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절차적 형식적인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 다수가 동의하지 않은 법률과 제도, 그리고 어떤 결정으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 자의적인 지배와 결정 오류를 제거하기 위해 법치주의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가진 주권자의 참여와 논의 그리고 결정이 민주적인 국가 운영의 기본이 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사회가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1948년 이후 이어진 헌법 제1조 정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정신이 1987년 10월에도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권력은 선출직 관료(도지사, 시장, 군수, 의회)와 행정 관료가 행사해 왔다. 1972년 유신헌법 제1조(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신헌법 제1조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에게 주권이 위임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 구성원은 국가 운영을 위한 대표자일 뿐 주권을 위임한 것이 아니다. 대의제는 민주주의 정체에서 국가 운영을 위한 효율적인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87년 이후에도 실질적인 주권 행사 방법에 대한 논의와 제도 도입이 지체되면서 유신 헌법적 행태가 지속되었다. 

민주주의를 국민이 대리인을 선출하는 선거 절차로 생각하는 한 87년 이후에도 민주주의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구체제를 개혁하자는 요구가 아래로부터 분출되었다. 냉전의 해체로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 교육개혁, 노동개혁 요구 등이 분출되었다. 90년 1월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출범했다. 91년 소위 ‘분신 정국’에 노태우 민자당 정권은 억압 정책 등 구태를 답습했다. 80년대 초 KDI가 예상한 현실, 아니 2차 대전 막바지에 강대국이 결정한 자유무역 질서, 즉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개시되면서 농산물 수입 자유화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런 현실도 모른 채 열대 과일 작물 재배를 권장한 농업 부문의 정책이 진행되면서 농가 파산이 예상되었다. 민자당 정권은 국가를 운영할 역량이 없었다. 

84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신군부에 군사력 증대와 대외경제 개방에 준비하기 위해 제2의 도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KDI의 국가 운영 논리는 서비스산업 육성을 통해 세금을 확보하여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대외 개방에 대응하자는 것이었다. 제주도개발특별법과 이후의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은 투자자의 행복(경제적 편익)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제도가 구축 운영되었다. 특별법은 투자자의 행복이 커져야 도민의 행복도 증대된다는 공리주의와 낙수효과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KDI의 제주도개발 구상은 철저하게 벤담의 공리주의 논리를 따랐다. 벤담은 국가 운영과 정책은 철저하게 행복의 양을 기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담은 영국의 왕, 무역업자, 산업자본가 순으로 행복의 양이 크다고 보았다. 가령, 공공정책을 결정할 때 지역 주민 51%의 행복 총량이 51%(기업가의 행복 30%, 정부 행복 10%, 주민 행복 11%) 이상만 충족하면 된다. 따라서 공리주의 슬로건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면 근본적으로 갈등, 불평등, 지역 소외, 인간 소외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1980년 ‘특정지역종합개발촉진에관한특별조치법’에 따라 토지 이용과 규제를 관리하는 권한이 건설부에 부여되었다. 건설부 장관은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개발촉진지역, 개발예정지역(장래 개발을 위한 토지 비축 지역), 개발규제지역(개발 방지 지역) 등 용도지역별 토지 이용·규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공통으로 적용되는 국토이용관리법에 따라 농업지역, 산림지역, 공업지역, 자연 및 문화재보전지역 용도별로 세부 지구 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 산림지역에 목재의 생산·채종 및 재해나 공해 방지 등을 위한 보전 임야지구, 개간촉진지구를 지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 및 문화재보전지역에 자연환경보전지구, 문화재보전지구, 관광휴양지구(해수욕장, 스키장, 온천장, 유선장 등의 관광 혹은 휴양에 맞는 지구), 해안보전지구, 수산자원보전지구로 지정할 수 있었다.

1989년 KDI는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의 재검토」에서 냉전 해체와 아시아태평양 레저 수요 증대라는 대외 변화가 있지만, 민간 투자가 저조하다 점을 지적했다. KDI는 국제관광지로 조성하는 「특정지역 제주도종합개발계획」(3개 관광단지와 13개 관광지구 개발)의 연장선상에서 토지 이용 방식과 개발계획의 일원화를 주장했다. 이를 위해 단일한 개발 체계를 규율하는 한시적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기 체류형 휴양지 기능’을 하는 관광개발을 위해 「제주도종합개발계획」과 「특정지역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의 일원화를 주장했다.

노태우 민자당 정권은 국제 수준의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제주도지사를 내세워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의 반대 여론이 증대되었다. 반대 여론으로 제주도개발특별법(원안)이 개발 일변도의 원안에서 후퇴한 국회의원 입법 수정안으로 변경되었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 이후에도 국민투표 이외 지역 주민의 주권을 행사할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 제주도개발특별법(안)이 논쟁이 되는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제주도민에게 결정권을 부여하자는 논의는 없었다. 제주도민 주도의 개발 vs 중앙주도·도외 자본 중심의 개발 논쟁이 있었지만, 계획 수립과 결정 권한이 누구에게 주어져야 하는지 논의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91년 말 제대로 된 토론 없이 10년 한시법인 제주도개발특별법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시간이 흘러 나타나는 문제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 결과가 회복 불가능한 상황인 경우, 고통은 제주도민 모두에게 차별적으로 전가될 뿐이다.

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이후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은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계획으로 성격이 강화되었다. 개발지원을 위한 지원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은 지원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 이렇게 중앙정부가 통제하며 제주 사회와 개인의 행동을 조직하는 권력 행사 창구인 「제주도종합개발계획」 시대로 접어들었다. 94년 5월 국토교통부(과거 교통부)는 체류형 관광지 전환을 위한 개발계획 수정을 주문했다. 이러한 구조에서 제주도민이 참여하여 개발계획을 수립한다고 해도 중앙이 계획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자료=1994년

91년 12월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으로 투자자의 편의를 위해 인허가 절차가 간소화(인허가 의제)되었다.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 투쟁으로 인허가 의제 형태의 절차 간소화 조항 수는 91년 4개로 한정되었지만 이후 늘어났다. 간소화는 의사결정 과정에 사고하지 않는 문제를 일으키며 행정기관이 기계처럼 행동할 위험이 있다. 인허가 간소화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 공급자가 늘어나 시장실패, 환경 파괴, 심지어 기업 실패 등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관광 과잉으로 인한 관광지 매력 감소 위험 문제와 관련하여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반대로 환경 용량에 관한 관심이 UN의 지속가능 의제에서 시작되었다. 97년 제주도에 의해 「제주도 친환경개발을 위한 환경지표 설정」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이후 제주도 환경 용량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실질적인 제도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환경 용량은 2012년 환경정책기본법이 전면 개정으로 제도화되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지역의 환경 용량을 고려하도록 규정되었다.

1차 종합계획에 중산간은 지하수 보호와 지역 주민의 환경친화적 이용이 주요한 목표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종합개발계획에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하도록 계획된 골프장 개발이 중산간에 이루어 지기 시작했다. 1997년 제주도 종합개발계획 변경계획에 10개 관광지구가 추가되어 3개 관광단지와 20개 관광지구 체제로 확대되었다. 이에 맞추어 1999년에 ‘제주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 대규모 리조트단지 개발과 숙박시설, 골프장 확충, 3개 단지와 20개 지구 정비계획이 포함되었다. 금융, 토지, 인적 자원이 관광 서비스산업에 집중 할당되는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KDI와 중앙정부는 개발이 편리한 전국과 다른 토지 이용 관리 체계를 원했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은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제주도 전역을 절대보전지역(한라산, 오름, 하천, 용암동굴, 도서 해안 및 연안 등 자연경관이 뛰어난 지역, 수자원 보호에 필요한 지역, 야생동물 서식처 및 철새 도래지, 생태적으로 중요한 자연임), 상대보전지역, 특별관리지구로 구분하여 토지를 관리한다는 구상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제주대학교 연구진이 제시한 1차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의 중간 보전과 이용의 경우, 지하수 보전 측면에서 지하수 오염원 관리 방안만 제시되었다. 전반적인 보전 계획이 부재했기 때문에, 곶자왈은 절대보전지역에 포함되지 못했다. 한편, 200m 이하 해안 지역 토지 이용이 포화상태로 지적되면서 중산간 지역이 잠재적 개발 가능 지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현재까지 문제가 되는 중산간 상대보전지역 토지의 이용과 관리를 위해 생태·경관·지하수 등급제 체계가 마련되면서, 중산간 난개발이 발생하게 되었다.  <헤드라인제주>

글쓴이 김평선은...

제주4.3유족으로 정치학을 전공하고 제주4.3에서 서북청년단의 폭력행위 동기를, 미군정의 제주도제 실시 사례에서 영토와 권력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리고 시야를 넓혀 근대국가가 형성되고 운영되어 온 과정을 정치철학, 권한 이양과 분권화 등 국가 운영을 위한 기술(statecraft)를 중심으로 공부해 오면서, 국가를 ‘권력과 지배’, 그리고 ‘자유’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