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 일상화된 재앙적 여성혐오가 인격이 된 현장에 대해

2025-06-04     한정선

며칠 전 대선 토론을 떠올리면 분하고 몸이 아팠다. 그날 밤 분노한 많은 이들이 잠을 설친 것처럼 나 역시 잠을 설치며 깊은 잠에 들 수 없었다. 대통령 후보라는 이가 여성혐오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들을 둔 타 대통령 후보를 비판하기 위해 꺼낸 여성혐오의 언어는 그 자체가 재앙이었다. 성기로서만 인정되는 사회에서 사람으로 살려 했으니 이토록 평생이 고달팠나 싶을 만큼 슬프기도 했다. 마치 젠더폭력의 역사를 되짚어준다면서 오히려 지나치게 자세하게 성폭력의 장면을 집중해서 보여주던 몇몇 영화의 끈질긴 젠더 폭력적 시선이 구체적으로 인격화 된 것 같았다. 그가 내뱉는 말은 인용에 불과하다며 발뺌하더라도 뱉어내는 순간 폭력이 되는 것을, 자신이 내세우는 그 똑똑한 머리로 이해하지 못 하거나 안 하는 채로 자기변명과 무고 맞대응 따위로, 우리나라 인셀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번 주는 매우 괜찮은 시작이었다. 뒤늦게 에너지 충전돼서, 집 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쓰레기 내다 버리고 한숨 돌렸다. 언제부턴가 매주 일요일 밤만 되면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하고 두려워졌었다. 한 주가 시작됐다는 것이, 다시 살아내어야 한다는 것이, 못내 무섭기도 했다. 강하지 못한데 강해서 그 간극이 나를 더 피폐하게 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나날이었다. 뭘 써야 하나 싶을 만큼 혼란만 보인다, 내겐 세상사가 마치 잭슨 폴록의 작품 같아서 해석 불가능처럼 보이고, 다만 느껴졌다, 고통이 흩뿌려진 것만이, 살아있음으로 느껴졌다. 계엄을 지나, 탄핵을 지나, 대선 후보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자꾸만 할 말을 잃어갔다. 말이 어렵고 무서워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어코 글을 쓰게 만드는 저 대통령 후보의 행각. 그가 인셀들의 집합소 같은 사이트에서 저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와 키보드 배틀 같은 언어로 대국민 토론을 벌린다는 것, 그 언어의 얄팍하고 무지하고 수준 낮음을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될 만큼, 대화들을 찢고 뚫고 나와 기어이 내뱉은 말이 곧 자기 증명 그 자체이던 여성혐오 언어로써 명백하게 확인되었다는 데서 어쩌면 역설적으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덮고 가려도 똥 싼 자리의 냄새는 세월이 흘러 똥이 거름이 되거나 흩어질 때까지 없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비단으로 덮든, 누더기로 덮든, 나뭇잎으로 덮든, 몸으로 덮든 냄새만으로 아, 저기 저 자리에는 똥이 있구나! 알 수 있다. 사람은 워낙 다채로워서 똥 냄새가 구수하다고 혹은 매력적이라고 좋아하기도 할 테다. 취향은 각자의 자유니까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일상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똥을 옆에 두고 생활하지 않는다. 그것은 치워야 할 무엇이고, 때론 거름이 되어야 쓸모를 할 수 있는 무엇이다. 똥 그 자체로는 오히려 해롭다. 똥이 잔뜩 모여 있는 곳에 빠지면 똥독이 들기도 한다. 젊은 대통령 후보라 주장하는, 학력만이 유일한 자랑거리로 보이는 그의 입에서는 똥이 잔뜩 떨어졌다. 마치 착한 소녀가 말하면 보석이 쏟아지고 악한 소녀가 말하면 온갖 해로운 것이 쏟아졌다던 구전 동화 같다. 소녀의 성별에는 신경 쓰지 말자. 우리가 저 젊은 대통령 후보의 성별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오히려 그가 자신의 젠더 권력을 뒤흔들며 똥을 마구 싸지를 때만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물론 몇 퍼센트의 지지자들은 똥내가 향기로울 수 있다.

그런데도 처음 저 후보의 여성혐오 언어 인용을 통한 여성혐오를 자행하고, 함께 듣고 있었을지도 모를 아동·청소년 혐오를 자행하였을 때 내가 느꼈던 분노는, 이를 통해 그가 똥을 싸는 인간임을 확실하게 알게 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엿보았다. 그를 지지하던 이들이 빠져나간다는 뉴스도 보았다. 똥 쏟는 이의 곁에서 똥 세례를 받을 수 없다는 각오가 행동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한다.

개미를 관찰하다 눌러 죽이고도 천진난만할 수 있는 것처럼 죄책감은 권력에 따라 민감도와 크기를 달리한다. 압도적으로 강한 권력은 가진 존재들은 자신의 권력이 당연해서 개미가 물어대는 것이 문제일 뿐, 자신이 한 마을을 손가락으로, 물을 뿌려서, 발로 밟아서, 혹은 싼 똥으로 살상해 버렸음을 인지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여성혐오가 없다던 저 여성혐오 대통령 젊은 후보의 말은 바로, 똥을 싸는 존재들의 젠더권력을 선명하고 찬란하게 드러낸다.

[한정선의 작은사람 프리즘]은...

한정선

'작은 사람'이란 사회적약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구조적 차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인, 아동, 청소년, 빈곤,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더 나아가 동물권까지 우리나라에서 비장애 성인 남성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구조적 차별과 배제의 현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제 하의 남성은 '맨박스'로 괴롭고 여성은 '여성혐오'로 고통을 받습니다. 빈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여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공장식 축산은 살아 있는 생명을 사물화하고 나아가 단일 경작 단일 재배 등을 통해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약자의 소수자성이 교차될수록 더욱 삶이 지난해지고 그 개별화된 고통의 강도는 커집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겪고 바라본 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