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듣는 클래식](34) 막스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 (Kol Nidrei, Op47)

2025-04-23     정은실

십대 말이나 이십대 초에 심취해서 읽었던 소설이나 시 등은 반세기가 지난 오육십대에 다시 꺼내 읽는다면 어떤 감동이 있을까, 아마도 어떤 작품들은 시대착오적인 내용도 있어서 많은 부분 예전과 같은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시절에 즐겨듣거나 부르곤 했던 가곡 또는 기악곡 심지어는 흔한 발라드 음악 조차도 훗날 들으면 왠지 템포도 느리고 감정도 그때 같지 못한 게 사실이다.

물론 고전음악의 경우는 예외일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클래식(유행을 타지 않는, 최고 수준의)’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어느 시절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음악인 것 맞다. 그러나 고전음악 마저도 때로는 예전의 감흥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이를테면 십대, 이십대에는 베토벤의 열정이나 템페스트에 깊이 빠졌지만 오십대에 와서는 비창의 수려함에 한번씩 눈물 흘리는 경우가 좋은 예다. 지금껏 들어 온 많은 고전음악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똑같은 무게와 높이와 넓이의 감흥을 주는 곡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곡이 바로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다. ‘콜 니드라이’ 어원은 구약성서 시대에 사용한 아람어의 콜 니드레(Kol Nidre)에서 나왔고 이 뜻은 ‘모든 서약들(All Vows)’이란 의미다.

이십대 초의 어느 날, 필자는 영국의 장미로 불리는 첼리스트 잭클린 뒤프레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긴머리의 청순한 모습이 그려진 이엠아이(EMI) LP판을 생일선물로 받았는데 바로 그 곡이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였다.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에 대해 어떤 표현이 적절할까 쉽게 떠오르는 형용사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이 곡이 세상에 존재함에 대한 감사에 앞서 이런 음률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심에 대해 신에게 감사했었다. 그만큼 콜 니드라이는 필자의 인생에 잊히지 않는 최고의 곡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심지어 한때는 이메일이나 개인서류의 모든 패스워드를 콜 니드라이로 했던 적도 있다. 또한 좋은 일이 생기면 지체없이 나누길 원하는 필자의 성격대로 주위의 지인들이나 친구들, 또는 만나는 사람마다 콜 니드라이를 듣기 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언젠가 한국 가서 동문들을 만났을 때 그리 친하지 않던 동문도 필자에게 ‘아, 콜 니드라이?’라고 아예 필자에 대한 기억을 콜 니드라이로 알고 있는 동문도 있었다. 그만큼 사랑했던 곡이고, 이민생활 중에도 마음이 착잡하거나 우울할 때, 또는 스스로에게 다짐하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자성하기 원할 때면 으례껏 이 곡을 틀어 놓고 한바탕 울기도 했던 곡이다. 거의 반세기를 거쳐오면서 변함없는 곡, 한번도 필자에게 실망을 주지 않는 곡, 어느 한 순간도, 어느 한 사람도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고, 모두가 다 귀하다고 속삭여 주는 곡이다.

막스 부르흐의 콜 니드라이는 모두 2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악장에 맞춰 크게 다른 두 선율이 흐른다. 첫 악장의 메인 선율은 유대인들의 속죄의 날인 욤 키푸르(Yom Kippur)에 신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기도문을 노래하듯 연주하는 첼로 선율이다. 따라서 무척 종교적이고 엄숙하며 경건한 선율로 누구든지 들으면서 한번 쯤은 자신을 신께 내어놓고 속죄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곡이다. 두번 째 악장의 선율은 로드 바이런(Lord Byron)의 시를 호주 음악가 아이작 네이션(Isaac Nation)이 작곡한 ‘바빌론 강가에서 흘린 눈물(O Weep for those that wept on Babel’s Stream)’의 선율에서 따 온 것이다.. 1악장 선율의 느낌이 속죄를 의미하는 경건함이라면 2악장에 와서는 마음의 평정과 평화의 기운이 느껴지는 악장이 될 수 있다.

독일 작곡가 막스 부르흐는 개신교 목사였던 조부 때 부터 전통적인 개신교 신자고 그 자신이 음악 뿐 아니라 신학과 철학을 수학했을 정도로 철저한 개신교 신자였다. 그러나 이 곡, 콜 니드라이로 인해 한 때는 유대인으로 오해를 받았고 심지어 히틀러의 나치시절, 억울하게도 10년 간 공식적 음악활동이 중지되었던 유일한 작곡가였다. 200여곡, 사실 그리 많치 않은 곡들을 작곡한 그였지만 스코티쉬 판타지나 그의 3개의 바이올린협주곡은 전체 클래식 음악 중에서 십대 바이올린 협주곡에 속할 정도로 유명하다.

부르흐가 이 곡을 연주할 때 옆모습을 보면 마치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을 거친 성자처럼 보였던 곡, 인간에게 이런 음률을 들을 수 있는 귀를 허락하신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은 곡, 콜 니드라이를 정결한 마음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다.

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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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정은실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