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14) 자존의 저항이 깃든 터,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2025-03-20     배공순

제주는 별나게 아름답다. 오름이 빚어내는 부드러운 스카이라인, 에메랄드빛 바다와 검은 돌, 조각보 같은 들녘과 숲이 어우러져 곳곳이 명승이다. 삶의 피로를 덜어내고 청아한 기운을 채우기에 맞춤이지만, 때로 더께처럼 숨어있는 아픔과 상흔이 애달프게 묻어나기도 한다. 대자연이 주는 힐링의 즐거움을 잠시 미루고 이 땅이 겪은 고초를 가늠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지난했던 삼별초의 항몽전을 떠올린다. 고려 말 원나라의 침략에 끝까지 대항했던 삼별초 군의 기개가 서려 있는 곳, 그 저항의 역사가 깃든 항몽유적지로 향한다. 제주가 겪은 고난의 역사가 이뿐이랴마는, 마음이 끄는 대로 발길을 재촉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거의 정복한 원나라는 삼십여 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해 왔다. 이에 고려는 강화도를 임시 왕도로 정하고, 고려 진영의 수십 배가 넘는 침략군을 상대로 끝까지 대항했다. 이때 중심이 되었던 군사가 '삼별초군'이다.

그러던 중, 고려왕조가 몽골에 항복하고 개경 환도를 추진하자 이를 거부한 삼별초는 군사를 몰고 강화를 떠난다. 진도로 내려와 용장 산성을 근거지로 항전하였으나 함락되고 이런저런 곡절 끝에, 김통정 장군이 잔여 부대를 추슬러 탐라에 들어오게 된다. 항파두리에 토성을 쌓고 싸움을 계속했으나 여몽 연합군의 총공세로 이슬처럼 사라지고 말았으니, 강화에서 진도로 진도에서 제주까지, 삼별초의 고난의 행로가 처절하다.

이후 백여 년 동안 제주는 ‘탐라총관부’라는 기구 아래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었고, 일본과 남송공략의 전초기지로 짓밟혔다. 최영 장군이 몽골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순간까지 탐라 사람들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으리라. 이제, 세월은 흘러 당시 최강국 몽골에 마지막까지 맞섰던 고려 무인의 기상만이 빈 들에 꽃으로 남았다.

토성 가는 길을 따라 주변을 조망하며 항파두성에 오른다. 성은 풍납토성처럼 나무판으로 틀을 쌓고 흙을 채우는 판축 기법으로 지어졌다. 복원해 놓은 토성은 생각보다 튼튼하고 높아서 그 위용이 만만찮다. 위에서 바라보니 한라산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살망살망 걸으며 항몽의 자취를 더듬는다. 문득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든다.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는 그 많은 돌을 두고 왜 토성을 쌓았을까. 긴 전쟁에 지지고 힘들었을 군졸과 제주민에 대한 배려였거나 토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어떤 전술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세금을 대신해 재나 빗자루를 내게 하고, 맑은 물이 솟는 샘을 항파두성밖에 두어 지역민이 맘껏 길어다 쓰게 했다니, 이런 일들이 삼별초가 지역에 동화되는 기제가 되었으리라.

삼별초의 기나긴 항몽전은 정치 외교적 시대 상황, 삼별초와 고려 조정의 내무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혼재해 있겠으나, 호국의 일념 또한 꿋꿋하지 않았을까. 제주에서의 이년 여 동안 그들은 제주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방어선을 구축했고,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공세적 전술로 몽골의 강한 전력을 흔들기 위해 분투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민의 신뢰와 연대를 끌어냈고 필요한 자원을 조달받기도 했으니, 이는 탐라 사람과 더불어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저항으로, 민족자존을 위한 역사의 한줄기가 아닌가 한다.

오랜 시간이 고인 빈터에는 쓸쓸함이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터라 하여 적요함으로만 차 있는 건 아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이 살아낸 발자취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가 촘촘하게 얽혀 녹아있다. 바람 한 줄기 꽃잎을 흔들면, 뒹구는 주춧돌 너머로 별안간 그 모든 것이 살아나 퍼덕이는 것을 느낀다.

항몽유적지 너른 터에는 검은 주춧돌이 네모난 선을 그리며 대규모로 남아 있다. 지휘 본부와 숙소와 훈련장을 오갔을 군사들의 분주함이 눈앞에 어린다. 항파두성에 홀로 선 나무 곁에 다가선다. 고려왕조마저 등 돌린 삼별초의 외로움을 닮았지만, 나 홀로 우뚝한 것이 그들의 기개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

칠백 년의 침묵을 깨고 우리와 마주 선 항몽유적지와 이곳으로 이어진 농촌의 한가로움이 아무렇지 않은 듯 어우러져 있다. 푸른 초원과 꽃들과 홀로 선 나무를 배경으로 삼삼오오 사진 찍는 풍경이 평화롭다. 도란거리며 걷거나 홀로 사색에 잠기는 편안한 일상을 누리는 것, 어쩌면 삼별초가 몸을 던져 소망하던 유토피아가 이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미래의 역사가 될 오늘. 무엇에 저항하고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가, 먼 훗날 어디에 무엇으로 피어나 건듯 부는 바람에 나부낄 것인가. 봄꽃 향기 날리는 토성 위를 말없이 서성인다.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수필가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