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종료' 제주들불축제, 정체성 잃고 방향성 더 꼬였다

[데스크논단] 논란의 여지 크게 남겨진 들불축제, 향후 과제는?
'디지털 축제' 첫 검증 불발...'이도저도 아닌' 정체성.방향성 혼돈 심화
원탁회의 권고 '시민기반 생태축제' 맞나?...무늬만 '들불축제' 전락

2025-03-19     윤철수 기자

한때 제주의 대표적 문화관광축제로 꼽혔던 제주들불축제의 방향성을 둘러싼 혼돈 상황이 다시 심화되고 있다. 

'디지털 축제'로 전환해 2년 만에 다시 펼쳐질 예정이었던 '2025 제주들불축제'가 예상치 못한 변수에 허무하게 종료됐기 때문이다. 사흘 일정 중 첫 날 일정은 소화했으나,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2일차 행사를 비롯해 3일차 일정까지 모두 취소됐다. 

취소 배경에는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태풍급 강풍'이라는 불가피한 사유가 자리하고 있지만, 후유증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축제 일정이 취소된 데 따른 아쉬움 내지 허탈함의 차원을 넘어, 시민사회 회의감까지 급속히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축제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원적 물음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유는 축제의 정체성이 사라지면서 '근본'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막바지 이뤄진 기본계획의 변경 등으로 축제의 목적과 취지가 크게 변질된데다, '시민'이 아니라 '관(官)' 중심으로 축제가 운영된 점이 결정적이었다.

'읍.면.동 대항 민속경기' 프로그램을 매개로 지역 자생단체 등의 동원을 통해 참가자는 많았다고 하지만, '관 행사'의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평이 많았다. 민속경기대회는 1990년대 시.군 대항으로 치러진 체전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을 연상시켰다. 축제 전반에 '디지털'이란 요소를 결합시켜 대전환을 이뤘다고 하나, 첫 날 행사만 놓고 보면 화려한 드론라이트쇼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인 2024년 도민체전 개막식을 경험했던 참가자에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올해 축제 콘텐츠에 '민속'과 '전통'의 부분이 사라지면서, 제주도민의 자긍심도 동시에 시들해졌다는 점이다. '디지털 대전환'에 매몰된 나머지, 기존 들불축제만의 차별성이자 강점으로 꼽혔던 요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들불축제를 들불축제라 부르기도 어줍은 상황이 돼 버렸다. 축제의 성격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는 들불축제의 심각한 위기로 다가온다. 

◇ '허무한 종료' 축제, 정체성 잃고...방향성 더욱 꼬이고...

정리해 보면, 올해 축제의 '허무한 종료'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걱정을 크게 한다. 하나는 방향성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정체성 문제이다. 

만약 사흘간의 축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더라면 걱정이 덜할 수도 있었다. 발전적 측면에서 미래에 대한 논의가 진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마주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맥상이다. 정체성은 잃었고, 방향성은 더욱 꼬였다.

첫 째, 축제 방향성에 대해서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받게 됐다. 많은 논란 속에 새롭게 설계된 축제의 방향이 맞는지, 검증 자체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사실 2년 만에 다시 열리는 올해 축제는 '불' 없는 축제의 첫 선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기존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오름 불놓기'를 비롯해 달집태우기와 횃불대행진이 전면 폐지되고, 대신 미디어아트 방식의 빛과 조명의 디지털 쇼 중심으로 새롭게 재설계됐다. 

이들 프로그램은 2일차에 집중돼 있었다. 기존 횃불대행진을 대체한 디지털 횃불 이용 희망대행진을 비롯해, 기존 달집 태우기를 대체한 프로그램 '디지털 달집', 그리고 오름불놓기를 대체한 '디지털 불놓기' 등 빛과 조명의 '복합 미디어 아트쇼'가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었다.

미디어 아트쇼에서는 디지털 불꽃 영상과 레이저 드로잉 등을 통해 빛으로 새별오름을 새롭게 채색하는 동시에 주무대에서는 악가무(樂歌舞)의 화려한 공연이 함께 펼쳐지는 것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2일차 행사가 전면 취소되면서 '디지털 쇼'는 제대로 시연해 보지도 못한채 끝났다. 새롭게 설계된 축제의 방향이 맞는지, 검증하고 평가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축제의 기본적 방향성에 대한 논의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두 번째, 축제의 정체성 부분이다. 이는 제주시당국이 자초한 일이다.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미명 아래 이랬다 저랬다 식으로 축제를 손질하면서,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축제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제주 목축문화와 방애를 상징하는 마지막 남은 콘텐츠였던 소원지 달집 태우기와 횃불대행진도 축제 한 달전 일방적으로 폐지를 결정했다. 주먹구구식으로 콘텐츠 바꾸기를 거듭하면서, 들불축제의 정체성의 근간이 됐던 민속적 요소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민속과 전통을 유지할 명맥이 끊기면서, 무늬만 들불축제로 전락했다. 껍데기만 남은 셈이다. 그럼에도 제주시 당국은 들불축제라 명하며 그럴듯한 의미를 붙이고 있다. 

이번에 재설계한 축제의 방향성을 그대로 유지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솔직하게 들불축제의 폐지를 선언하고, '디지털 쇼'에 걸맞게 축제의 명칭을 바꾸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고 '무늬만 들불축제'를 고집하는 것은 시민들을 기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세번째, 이번 새로운 축제의 설계가 막판에 행정당국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이뤄진 점은 매우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들불축제의 방향성 및 재설계 논의는 지난 2년 여간 시민 공론절차를 거치면서 진행돼 왔다. 2023년에는 숙의형 원탁토론을 거쳐 방향성이 결정됐다. 지난해에는 시민기획단 논의를 통해 축제 콘텐츠가 발굴됐고, 이를 바탕으로 기본계획이 확정됐다

그러나 올해 축제 막바지에는 기본계획의 내용이 일방적으로 변경됐다. '시민'이 배척된 것이다. 시민공감대 형성 노력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는 그동안 일궈 온 시민사회 논의 및 소통의 성과를 부정한 것이자, 절차적 흠결이 아닐 수 없다. 축제 재설계의 당위성을 스스로 훼손한 격이다.  

빛과

◇ 향후 과제는?

이러한 평가 속에서 향후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정체성을 잃은 들불축제의 혼돈 상황에 대한 정리가 시급하다. 축제의 개최 방향성과 관련해서는 원점 재논의가 불가피해졌다. '디지털 쇼'로 변질된 축제의 정체성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2023년 9월 숙의형 원탁회의 운영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은 '시민참여 기반 생태가치 지향 축제'였다. 그러나 이번에 보여준 축제의 구성 콘텐츠는 생태 축제도, 시민참여 기반 축제도 아니다. 시민의 생각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따라서 축제의 방향성부터 다시 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제주들불축제의 명맥을 이을 것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디지털 축제'로 가져 나갈 것인지, 그 방향성부터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의 주체는 당연히 '시민'이어야 한다.  

방향성 논의 결과 '디지털 축제'로 결론이 난다면, 기존 들불축제의 명칭 또한 변경이 전제돼야 한다. 들불축제라는 명칭으로 디지털 쇼를 펼치는 것은 맞지 않다.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개최 시기도 탄력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존 정월대보름에 개최하던 것을 3월로 옮긴 것은, 날씨 상황을 고려한 결과였다. 

축제 콘텐츠도 그렇다. '디지털 쇼'와 '읍.면.동 대항 민속경기대회'를 양대축으로 삼아 설정한 현재의 콘텐츠 구성은 주먹구구식으로 짜깁은 느낌이 강하다. 방향성이 결정되면, 콘텐츠 부분도 재설계가 필요하다.
 
올해 축제를 마무리하면서 제대로운 정산, 그리고 정산 결과에 대한 투명한 공개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번 축제에 쏟아부은 18억3500만원은 결코 적지 않은 예산이다. 대기업에 4억원을 몰아주며 추진했던 불꽃쇼와 미디어파사드에 대한 정산 협의도 제대로 해야 한다.

사흘 일정의 축제 기간 중 강풍으로 인해 이틀 일정이 전면 취소됐음에도, 18억원이란 예산이 모두 소진됐다면 시민들이 수긍하겠는가. 

논란의 여지를 크게 남긴 2025 들불축제. 지금의 혼돈 상황에 있어 제주시 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새로운 설계도, 계획의 변경도, 재정 지출도 모두 제주시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제 제주시 당국이 나서 제대로 문제 해결을 해야 할 차례다. 질서있는 수습을 기대해본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