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듣는 클래식](32) 비제의 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 중 '미뉴에트'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 삽입된 단편 중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마지막 수업’과 ‘별’이 있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소녀시절,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느꼈던 맑고 순수한 사랑처럼 주인집 아가씨를 흠모하는 양치기 목동의 연정이 돋보였던 단편이 별이었다. 특히 마지막 문구,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노라고.”는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명대사다. 보불전쟁시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 당하기 바로 전 프랑스어 마지막 수업을 중심으로 쓴 단편, ‘마지막 수업;은 한때는 일제치하의 대한민국을 빗대기도 하면서 민족성을 고취시켰던 작품이다. 알퐁스 도데는 단편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분위기 묘사에 있어서 툭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짧은 단편에서도 읽은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마력을 가진 작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병원생활을 시작할 무렵 문득 배우고 싶은 악기가 있었다. 끈질기지 못한 게으른 성품 탓에 피아노, 바이올린 등을 조금씩 배우고 손을 놓고 있을 때였다. 그때 들려 온 아를의 여인 미뉴에트는 필자에게 ‘퓰륫(Flute)’이라는 악기를 배우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배우게 된 퓰륫이다. 누군가에게는 우스운 일일런지 모르나 아를의 여인을 제대로 연주해 보고 싶은 사소한 욕망이 결국 월급을 통털어 악기를 사고 퓰륫연주자를 물색해 사사 받기에 이른다. 물론 결국은 이마저도 아를의 여인 연주를 마지막으로 손을 떼고 은(silver)으로 된 퓰륫은 고스란히 장롱 속에 갇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에게 오페라 카르멘의 작곡자로 알려진 비제(George Bizet), 그의 곡으로만 알고 있던 아를의 여인의 원제가 알퐁스 도데의 희곡이라는 사실은 적쟎은 충격이다. 별이나 마지막 수업과는 또 다른 감흥을 주는 아를의 여인에서 ,아를(Arles)’은 프랑스 남부의 도시 이름이다. 아를이라는 도시와 관련이 있는 예술가가 또 한 명 있다. 반 고흐가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주로 등장하는 강가, 그리고 그 강가에 비친 별을 주제로 그린 반 고흐가 주로 찾던 곳이 바로 아를이다. 아를의 여인은 이 마을 아를에 사는 바람기 있는 한 여인을 지칭하는 말로 희곡의 주인공, 쟝 프레데는 이 여인을 한번 보고는 그만 반해버리고 집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를 원한다. 결국 여인을 단념하고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낸 비베트와 약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식 전날 밤 파티에 초청된 아를의 여인의 춤추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괴로워 한 나머지 투신자살 한다는 내용이다.
처음 비제가 희곡 아를의 여인의 부수음악으로 작곡한 원곡은 27곡의 관현악 곡이었다. 그러나 이렇다할 좋은 평가가 없자 비제는 다시 이 중에서 4곡을 추려서 제1모음곡으로 만들기에 이른다. 그후 비제가 사망하고, 그의 친구면서 파리 국립음악원 교수인 기로(Ernest Guiraud)에 의해 다시 4곡이 편곡되고 이를 제2모음고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바로 이 제2모음곡 안에 수록된 4곡 중 세번째에 해당하는 미뉴에트는 하프의 반주로 퓰륫의 낭랑함이 애잔하기 그지없는 곡이다. 클래식음악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곡이라도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데 큰 무리가 없고 그런대로 색다른 감흥이 일곤 한다. 그런데 비제의 아를의 여인, 미뉴에트 만큼은 다른 악기보다는 꼭 퓰륫 연주로 들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드는 곡이다. 왜 그런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들을수록 더 강하게 와 닿는 이유다.
알퐁스 도데를 그리며, 반 고흐가 즐겨 찾았던 강가와 별들을 마음 곳에 새겨보고, 오랜 도시, 아를과 그곳의 여인에게 빠졌던 한 남성을 음악으로 표현했던 비제를 생각해본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승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에 괴로워하며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을까 마음 한켠이 시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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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