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듣는 클래식](31) 보로딘의 현악4중주 2번 3악장 '녹턴(Nocturne)'

2025-03-13     정은실

여름의 폭우가 한번씩 쓸고 내려가면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분다. 소위 산들바람이라는 한국식 표현대로 한 여름의 뜨거운 바람과는 다르게 가볍게 스치는 시원한 바람으로 ‘breeze’라는 영어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 여름과 가을의 중간에서 오던 길 되돌아보고 운동화 끈 한번 고쳐메고 다시 발걸음 재촉하면서 듣던 곡들이다. 그래서 이런 곡들은 필자에게 기분좋은 시원함으로 먼저 다가온다. 그 중에 가장 으뜸으로 칠 수 있는 곡을 들라면 단연 보로딘의 현악4중주 2번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3악장, 녹턴의 수려함은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곡이다.

고전음악작곡가들 중에는 작곡 이외의 본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음악이나 미술 또는 문학 등 예술 계통의 분야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의학, 과학 등의 자연과학 쪽의 본업을 가진 작곡가들도 있었다. 러시아의 국민악파 5인조의 한명인 알렉산더 보로딘 역시 자연과학 쪽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의사면서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한때 군의관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을 스스로 ‘일요일의 음악가(Sunday’s Musician)’라고 말할 정도로 주말에 주로 작곡을 했던 음악가다. 따라서 주말을 이용해 작곡에 몰두하다보니 그리 많은 분량의 곡들을 작곡하지는 못했던 게 사실이고 어떤 곡들은 아직도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보로딘의 몇 안되는 곡 들 중에는 음악 역사상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수려한 곡이 있는데 바로 오늘 소개하는 현악4중주 2번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3악장 녹턴의 음률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슬라빅한 애수가 깃든 사랑 악장이다. 더우기 이 곡은 결혼 후 오래 병상에 누워 있는 그의 아내를 위해 지은 곡이니 만큼 사랑의 흔적과 밀어가 농도있게 깔린 곡이다. 두 달 만에 작곡한 곡으로 뭇사람들에게 ‘사랑의 기적’이란 소리를 듣는 이유가 될 수 있는 곡이다.

보로딘이 하이델베르크 유학시절 만난 부인 에카테리나와의 20주년을 기념하면서 작곡한 현악4중주 2번은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 시작부터 따스하게 시작되는 악장으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소곤거림이 감미로운 악장이다. 마치 부인과의 첫만남을 상기시키는 1악장이 지나면 왈츠풍의 스케르쵸로 다소 화려한 춤곡의 2악장이 전개된다. 녹턴(야상곡)의 안단테로 구성된 3악장에 오면서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싱코페이션이 시작되면서 수려하고 애절한 음률이 흐른다. 언제 어느 곳에서 들어도 가슴 벅차오르는 환희가 느껴지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드는 악장으로 전 악장 중 가장 유명한 악장이다. 마지막 4악장에 와서는 잠깐 짧은 안단테가 끝나고 빠른 속도의 비바체로 역동적인 결말이 흐르는 장이다.

보로딘은 그루즈아 호족의 후예인 게데아노프 공작의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생부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지 못하고 농노인 보리피리 보로딘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의 곡.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나 현악4중주 2번에서도 느낄 수 있는 동양적 느낌의 애수는 그의 생부의 동양 혈통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위의 어려운 이웃이나 친척 또는 친구, 동료 등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난히 베풀기 좋아했던 그의 인성 탓에 그의 집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피아니스트였던 부인은 폐결핵으로 병상에 누워있고 동물애호가였던 그는 심지어 여섯 마리의 고양이와 어려운 이웃이나 동료 들과 함께 있는 환경에서 화학연구를 하고 주말이면 작곡을 했던 걸 생각하면 보로딘은 진정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말을 빌면 ‘나의 일은 과학이고 음악은 취미다’라고 했는데 취미로 한 음악에서 이토록 훌륭한 걸작이 나올 수 있다는 건 그가 음악의 천재적 자질을 갖춘 작곡가였지를 말해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뒷마당이나 앞마당, 이마저도 없으면 근처의 작은 공원이나 동산에 올라 보로딘의 현악4중주 2번 3악장을 들어보시라, 유려한 음률이 가슴 저미도록 깊이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줄 것이다.

보로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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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