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권 이야기] 화려한 시상식의 한 순간, 그 속에 담긴 메시지
현진희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때면 어김없이 tv에서는 연기대상과 연예대상이 방영된다. 시상식에 초대된 연예인들은 수상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저마다 화려한 드레스와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들이 화면에 비친다.
시상식의 진행 방식은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무대 아래 테이블에 앉아 대기하다가 본인 이름이 호명되면 계단을 걸어 올라가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수여받는 것이다.
올해 1월 방영된 방송연예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 후보에 오른 송지은, 박위 부부를 보았다. 진행자는 이들에게 수상 후보에 오른 소감을 묻자, 아내인 송지은은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남편인 박위의 소감은 조금 달랐다. 그는 ‘시상식을 둘러보니 (휠체어용) 경사로가 없어서 아마 난 수상자가 아닐 것’이라는 뼈 있는 소감으로 답했다.
박위의 답변을 들은 진행자는 당황하며 ‘미리 경사로를 설치해 놓으면 티가 나지 않냐, 만약 박위 씨가 수상을 하게 된다면 바로 설치할 것’이라고 급히 해명했다.
박위의 소감은 단순히 겸손하게 본인이 수상자가 될 가능성이 낮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닌, 장애를 가진 이들이 당면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경사로와 같은 기본적인 접근 시설이 없다면, 그들이 사회에 온전히 참여하는 데 있어 큰 장애물이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실제로 제주장애인인권포럼에서 2021년에 진행된 편의점 접근성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도내 1,150개소의 편의점 중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편의점은 단 147개소(13%)에 불과했다. 즉, 도내 편의점 10곳 중 9곳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출입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편의점의 90% 이상이 문 앞까지 접근할 수 있었지만, 출입구의 높은 계단이나 턱으로 인해 편의점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2024년에 진행된 공중화장실 접근성 모니터링의 조사 결과 도내 공중화장실 690곳 중 약 50%에 해당하는 343곳에만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중 적합하게 설치된 곳은 불과 38%에 그쳤다. 장애인화장실을 청소도구함으로 사용하거나, 대변기 손잡이를 거꾸로 설치하거나, 손잡이가 파손됐음에도 불구하고 수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방치되어 있는 경우 등 주기적인 확인과 개선이 필요한 화장실이 전체의 12%에 달했다. 한마디로 10곳 중 단 4곳만이 장애인화장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공중화장실 접근성 모니터링에 이어 실시된 민방위대피소 접근성 모니터링의 결과 또한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430개의 민방위대피소 중 342곳은 계단 혹은 기계식주차장으로 되어 있거나 경사가 심하게 가파른 지하주차장 형태로 휠체어 이용자의 단독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민방위대피소는 고작 20%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노약자가 일상생황을 살아감에 있어 혹은 비상상황에서도 물리적인 장벽 때문에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24시간 언제든지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야 할 편의점, 휴전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공습을 당했을 때 모두가 대피할 수 있어야 할 대피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생리현상을 처리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 누군가에게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물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접근 시설을 갖추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평등하게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법적 의무를 넘어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앞서 시상식에서 박위가 말했듯이 편의시설의 유무로 결과가 예측이 되는 현실이 아니라 굳이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편의시설이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생활에 스며드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모두가 평등하게 일상을 누리고,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현진희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약자접근성안내센터>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