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다 저랬다' 제주들불축제...결국 '디지털 쇼'만 남았다

제주시 축제 개막 20여일 앞두고 또 계획 변경 논란
달집태우기-횃불행진도 폐지...'불' 대신 '디지털'로 전환
'불꽃쇼' 고수...들불축제 의미 상실→'빛.조명.디지털' 축제로 전락

2025-02-20     윤철수 기자
제주들불축제가

많은 논란이 일었던 제주들불축제가 콘텐츠를 전면 개선해 2년 만에 새롭게 개최될 예정이나, 제주시 당국의 '이랬다 저랬다' 식 잦은 변경으로 혼선만 가중되고 있다. 

종전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던 '오름 불놓기'의 폐지가 지난 해 결정된데 이어, 축제 개막 20여 일을 앞두고는 돌연 '달집 태우기'와 '횃불 대행진'도 폐지했다. 

결국 제주들불축제의 원래의 의미는 완전히 사라지고, '빛과 조명'의 디지털 쇼와 같은 전혀 다른 성격의 축제로 변모한 것이다. 참담한 기획의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완근 제주시장은 20일 축제 관련 브리핑을 여고 오는 3월14일부터 16일까지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개최하는 '2025 제주들불축제'의 계획을 다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변경된 내용은 '달집태우기'와 '횃불대행진'을 디지털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 2개 프로그램은 종전 '오름불놓기'와 더불어 3대 핵심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불과 한달 전인 지난 달 13일 김완근 시장이 축제계획을 확정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불' 없는 축제를 지향하면서 오름 불놓기는 폐지하되 소규모 불이 사용되는 달집 태우기와 횃불대행진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축제가 임박한 시점에서 다시 입장을 바꿔 참가자들의 소원지를 담은 달집태우기와 횃불대행진도 폐지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김 시장은 "축제에서는 ‘오름불놓기’를 포함한 ‘달집태우기’, ‘횃불대행진’의 콘텐츠를 디지털로 전환하여 새롭게 연출할 예정이다"면서 "이는 지난 1월 축제 세부추진계획 수립 이후 제기된 다양한 우려 속에서, 탄소중립과 기후환경 위기라는 과제 앞에 지속 가능한 축제를 위해 전면적 디지털 행사로의 변경을 고민한 결과이다"고 설명했다.

변경된 내용을 보면, 달집은 높이 5m의 디지털 달집으로 대체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달집 앞에 설치된 소원판(키오스크)에 작성한 소원을 디지털 달집에 바로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횃불대행진은 기존 등유, 파라핀을 사용한 횃불 대신 LED 횃불로 변경해 진행한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 명칭도 '디지털 달집 점화', '디지털횃불등반'으로 각각 바뀌었다.

다른 대부분의 프로그램도 '디지털'이란 수식어가 붙여졌다. 빛과 조명 등으로 새별오름을 수놓아 불을 형상화하는 미디어아트 방식으로 펼쳐지는데 따른 것이다. 

첫째날에는 '디지털 횃불등반'을 시작으로, 개막 축하공연으로 '미디어아트 퍼포먼스'가 진행된다. 둘쨋날에는 '디지털 불놓기', '디지털 달집 점화'이 진행되고, 축제기간 진행되는 공연 명칭도 '디지털 불멍콘서트'로 제시됐다.

사실상 오름 들불축제의 정체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전혀 다른 성격의 '디지털 축제'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시 당국은 이에 대해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언론 브리핑을 직접 하겠다고 예고했던 김완근 시장은 지난 1월 계획 확정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질의응답은 담당부서장에게 맡기고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갔다.

담당부서장은 제주들불축제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 "디지털로 전화되고 있으나 축제의 정체성은 그대로 이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들불축제'라는 명칭을 '디지털 축제'로 바꾸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번 축제가 끝나면 평가를 거쳐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 축제에서는 '불꽃쇼'를 그대로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대량의 화약이 사용되는 대규모로 시행하지 않고, 개막식 당일 필요한 정도에 따라 최소한도로 하겠다고 밝혔다.
 
◇ 제주 대표적 문화관광콘텐츠 들불축제, 왜 논란이 됐나

한편, 제주의 대표적 문화관광축제로 꼽히는 제주들불축제는 1997년부터 개최돼 왔다. 제주 최대의 노동력이던 말과 소의 건강한 양축을 위해 방목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늦겨울에 불을 놓았던 제주의 옛 목축문화인 들불놓기(방애)와 새해 첫 정월대보름 액막이와 소원기원 의례를 관광·문화적 측면에서 재현한 축제다 

그러나 지난해 오름 불놓기 폐지가 결정되면서 축제는 중대 위기를 맞았다. 오름 불놓기 페지는 지난 2023년 3월 개최된 들불축제가 국가적 산불위기로 인해 '불'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전면 취소한 것이 발단이 됐다. 

각종 공연 및 줄다리기, 듬돌들기 등과 같은 경연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진행됐으나, '불'이 빠진 '반쪽 프로그램'으로 축제의 의미를 강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제는 '불' 없는 들불축제가 작년이 처음이 아니라 종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수 있다는데 있다. 2022년에도 육지부 산불 재난상황으로 인해 들불축제가 전면 취소됐다. 1997년 처음 축제가 시작된 후 산불위험과 강풍, 코로나19 등으로 축제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사례는 8차례에 이른다. 이중 3번은 '불' 없는 축제로 진행됐다.  

여기에 제주도가 추진하는 기후 변화시대 탄소없는 섬 정책과 맞지 않은 축제라는 점도 존폐 논란을 달아오르게 했다.

결국 제주시는 지난 2023년 숙의형 원탁회의 결과를 반영해 오름 불놓기를 폐지하는 한편, 2024년 축제를 전면 취소하고 '불' 없는 축제 재설계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전면 재설계된 축제의 내용은 기존 들불축제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고, 이랬다 저랬다 하며 잦은 변경으로 결국은 '무늬만 들불축제'인 디지털 쇼로 전락시켰다는 힐난이 이어지고 있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