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정체성 모호해지는 제주도 주민참여예산
[데스크논단] 2025년 주민참여예산 편성내역과 제기되는 문제
'284억', 규모 커졌으나...일반사업 끼워넣기로 '부풀리기'?
행정시 각종 시설비, 주민참여예산으로 은근슬쩍 편성 논란
제주특별자치도의 주민참여예산 규모가 한층 커졌으나,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갈수록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회 심의가 진행 중인 2025년도 제주도 예산안 중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총 516건에 284억9400만원이 편성됐다.
이 중 주민참여예산 읍.면.동 지역회의에서 선정한 지역기본사업이 303건에 109억1600만원(제주시 162건, 서귀포시 141건), 행정시 조정협의회에서 선정한 지역참여사업은 138건에 86억8300만원(제주시 78건, 서귀포시 60건), 제주시와 서귀포시 본청에서 진행하는 시정참여사업은 57건에 67억6000만원 , 제주도 광역.청년사업은 18건에 21억3500만원이다.
물론 사업 선정과정의 절차적 민주성은 상당부분 확보됐다고 볼 수 있다. 당초 올해 신청한 사업 건수는 1018건에 달했다고 한다. 다양한 논의와 심사를 통해 절반 수준(516건)으로 최종 압축하는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다.
일례로 읍.면.동별 주민참여사업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3단계 과정을 밟는다. 읍.면.동 지역회의에서 1차적 논의를 통해 필요한 사업을 추려내고, 행정시 단위의 조정협의회를 거친 후 제주도 관련부서 검토 및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30%의 반영 비율인 도민투표를 통한 의견도 수렴된다. 올해 도민 투표에는 역대 최다 인원인 1만4500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지난해 4000명이 참여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늘어난 규모다. 투표에 참여한 도민들은 주민 생활환경 개선, 환경보존, 건강.안전예방, 아동.청소년 대상 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선정 과정의 민주성은 높이 평가받을만 했다. 제주도가 "내년 주민참여예산 사업 목록은 도민이 직접 제안하고 선정한 결과"라고 강조한 점도 이러한 측면에서는 동의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예산안에 편성된 세부 사업 목록을 보면, 많은 아쉬움과 의문이 남는다.
전체 516개 사업 중 도내 43개 읍.면.동별 사업으로 편성된 지역기본사업(303건)과 지역참여사업(138건), 그리고 청년사업(10건)은 모두 도민들이 원하고 선택한 결과라는 점에서 주민참여예산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제주도 광역사업에서 일부, 제주시와 서귀포시 본청에서 집행하는 시정참여사업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과연 주민참여예산이 맞는가 라는 근본적 의문을 갖게 한다.
광역사업에서는 '제주 한 여름밤의 드론라이트쇼'(2억9000만원)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사업은 지난해에도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최초 성산읍 지역축제와 연계해 제안됐던 사업이라는 점에서 주민참여예산 영역에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행사 개최는 지역 행사가 아니라 '2024 제주 글로벌 미래항공우주 컨페스타'의 일환으로 개최됐고, 개최 장소나 내용이 크게 확장됐다.
사실상 일반적 사업 영역으로 편성해야 할 사업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2년 연속 주민참여예산으로 편성됐다.
행정시 '시정참여예산'으로 올라있는 주민참여예산 목록을 보면, 모호성은 더욱 커진다. 두 행정시 모두 공통적으로 '시설비' 사업들을 대거 편성하고 있다
제주시 본청 부서에서는 △오름공원 산책로 정비 2억원 △번영로 도로조명 설치 4억원 △어린이놀이터 정비 1억원 △제주시 공원 운동기구 정비사업 1억원 △제주종합경기장 황톳길 조성 4억원 △인도 콘크리트 맨홀덮개 교체 등 3억원 등이 시설비로 편성됐다. 해당 부서의 고유 사업들임에도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사업비를 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분야에서는 △취약계층을 위한 '몬딱' 서비스(1억9000만원) △장애인 거주시설 패러다임 전환(4억원) 등이 눈에 띈다. 일반 부서의 사업으로 예산을 편성해도 무방함에도 주민참여예산에 포함했다.
우당도서관에서는 작가 초청 강연 등의 행사운영비와 도서 구입비 등 6건을 주민참여예산으로 편성했다.
서귀포시 역시 마찬가지다. 건설과와 공원녹지과, 도서관운영사무소의 시설비 사업이 주민참여예산으로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하는 공연 행사(5월 가정의 달 특별공연 2억7000만원)와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1억5000만원)을 비롯해, 삼매봉도서관 무인도서 반납기 교체 등도 목록에 올라 있다.
해당 부서에서는 '시민 제안사업'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업계획의 내용을 보면 전형적 '행정의 틀'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시정참여예산은 총 57건에 67억여원이 편성됐는데, 하나같이 일반사업예산과 주민참여에산의 경계 구분이 모호하다. 다분히 일반 예산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인데, 변칙적으로 주민참여예산에 '끼워넣기'를 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은근슬쩍 끼워넣기는 주민참여예산 규모가 커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위적 설정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한다.
제주도의 주민참여예산제는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첫 해인 2013년 296건 132억원에서 출발했다. 이어 △2016년 251건 150억원 △2017년 285건 170억원 △2018년 283건 200억원 △2022년 357건 202억원 등 민선 7기 도정까지는 200억원 선이 유지됐다.
민선 8기 도정은 일반회계에서 국비 제외한 예산의 1%로 단계적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으나, 출범 후 첫 편성인 2023에는 382건 225억원, 올해에는 431건에 259억원 편성했다. 내년에는 284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공약 실천계획에 따르면 올해에는 예산 규모의 0.8% 수준인 290억원, 내년에는 0.9% 수준인 305억원을 편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현재 편성된 예산액은 '역대 최대'인 것은 분명하나, 공천 실천계획에는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물론 이해못할 바가 아니다. 국세 감소에 따른 세입 결손 등으로 지방재정 여건이 녹록치 못한 상황에서 주민참여예산만 계획대로 늘려 잡을 수는 없는 실정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문제는 주민참여예산 편성과정에서 2년 연속 행정시 본청 부서의 일반사업들을 끼워넣기 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작년에 언론과 도의회로부터 실컷 문제를 지적받았음에도 올해에도 또 다시 그렇게 했다는 점이 놀랍다.
이는 주민참여예산제의 의미를 스스로 축소시키고 변질시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예산 편성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크다. 예산의 규모 보다도 편성하는 과정, 그리고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 그럼에도 대외 홍보용 '편성 규모'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역대 최대 규모로 포장되며 '몸집'만 커졌을 뿐, 정체성은 갈수록 모호해지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