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윈드앙상블 창단 30주년 기념 연주회에 모시며, 한·일 음악교류를 생각함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한라윈드앙상블 단원)

2024-09-05     황경수

한라윈드앙상블은 1993년 6월 7일 첫 창단공연을 하면서 본격적, 공개적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2024년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다. 본 글에서는 올해 9월 21일 있을 창단 30주년 기념 78회 정기연주회(토요일, 오후 2시 30분, 제주문예회관대극장), 에 앞서 일본과의 교류역사를 찾아보려고 한다. 김승택 음악감독과 김우신 지휘자의 말씀을 듣고 국제교류의 의미를 나름 정리하였다. “국제교류가 지속되어왔던 에너지가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글이 될 듯 하다.  

첫째, 안정적인 한 점을 중심으로 방사상의 형태로 외국의 다양한 팀과 교류를 했다. 

“한라윈드앙상블”이라는 하나의 중심점을 기준으로 일본의 다양한 도시와 다양한 팀들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에 의존하거나 어느 한 단체에 의존하는 교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기관으로서의 공립 연주단체 등이 국제교류의 여건으로는 좋은 점들이 많으나 순환보직으로 지속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 조직 운영의 지속성 담보, 담당업무의 지속성 등의 측면에서는 사설 연주단체가 안정적일 수도 있다. 구성원들이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한라윈드앙상블이 중심점이 되어 국제교류를 지속하는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올 해로 일본과의 교류연주회는 교토(2회), 오카야마(3회), 히로시마(1회), 구마모토(1회), 구기노무라(1회), 고베(1회), 도쿄(2회), 사이타마(1회), 가쓰우라(1회) 등과 함께 했다고 한다. 물론 그만큼의 다양한 단체들과 교류를 했으며, 일본으로 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단체들을 한국 제주에 모셔서 교류연주회를 지속적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이번 30주년 기념 연주회에도 “오사카 코리안 윈드오케스트라”와 “캐슬 윈드앙상블”팀이 제주로 내방을 하여 독립적 스테이지와 연합 무대를 동시에 만들게 된다. 이 부분은 문예회관에 방문해주시면 느끼실 수 있다.    

둘째, 상호방문, 상호교류의 의미를 유지했다. 

김승택 지휘자는 초기 교류부터 상호방문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다. 1994년 5월 23일 일본 에스포와르 관악합주단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지휘하게 되는 시점에 제주신문과의 인터뷰(제주신문, 1994.5.21.일자)에서 상호방문연주라는 부분을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지향이 외국과의 상호방문연주의 지속성 담보를 가능하게 하지 않았는가하는 해석을 해본다. 이 시점은 1993년 창단한 바로 다음 해의 일이다. 한라윈드앙상블은 창단하면서부터 외국과의 교류를 지향했고, 그에 걸맞는 실력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상호방문 연주이기 때문에 국제적 수준의 메너를 갖추려고 노력했고, 상호교류를 위한 소통과 작은 협상의 노력들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작은 노력들의 노우하우가 축적되어 지금은 외국단체와 교류에 조금도 어색하거나 난처한 일이 없이 자연스럽게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셋째, 미리 계획하고, 섭외하고, 단원들과 동감하고, 그에 맞게 준비하는 프로세스였다. 

제주투데이, ‘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칼럼 452회(2014년 8월 20일자)의 내용 중 정호규 단장의 표현에서 미리 준비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칼럼 제목은 “한라윈드 앙상블 20년, 김승택과 일본”이다). 

"선생님은 젊은 사람들이 못 쫓아갑니다. 이미 내 후년까지 스케즐을 짜놓았어요. 처음 뵙고 계속 놀라는 것이 우리는 당장 다음 날 예측도 못하는데 선생님은 내 후년 일정까지 계획하고 계셔요. 저희가 따라갈 수 없으니까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아주 멀리 계십니다.” 

항시 미리 섭외하고, 그 범위 내에서 단원들과 같이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김승택 지휘자님과 과거를 이야기하는 모습 내내, 사안별로 지속적으로 외국인들과 논의했고, 계획했고, 제안했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의존적이거나 일방적이거나 하지 않았다. 교류조건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추진은 하지 않는 의지도 엿볼 수 있었다. 김승택 지휘자에게는 “형평과 균형”이라는 철학이 교류의 지속성을 담보해줄 것이라는 마음이 확실히 있었던 것 같았다. 

넷째, 소유적인 욕심보다 존재적인 순수의지가 훨씬 더 강했다.

악보를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악보들을 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외국팀들과의 교류였음을 인지하고, 슬쩍 겸하게 추진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싯점에서 보면 조금은 이해가 잘 안될 터이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우리나라 체계에서 공식적 악보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이번에 오시는 고창수 교수는 수준 높은 곡들을 작곡도 해주시고, 안내도 많이 해주셨다. 한라윈드앙상블은 그 외에도 박수현 선생, 김은진 선생 등 일본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작곡을 의뢰하고, 곡을 받아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구하기 어렵고, 소중한 곡들을 얻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 동기가 원래 교류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외부효과로서 얻어진 소중한 결과물이 되었다. 
  
한라윈드앙상블과 같은 공연단체의 경우, 존립을 위한 자산 중 하나가 악보라 할 수 있다. 일본처럼 국가가 출판사에 지원하여 고교 악대들에게 악보를 제공해주는 배려까지 있는 상황이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악보를 직접 구매해야하는 우리나라의 사설 공연단체들의 경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어려움이 크다. 제값을 주고라도 악보를 구입하려 하지만 그 또한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국제교류에는 여느 여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한라윈드앙상블 팀은 지휘자도 경비를 똑 같이 부담하는 규칙을 가지고 있어서, 교류에 임함에 있어, 소유양식적 물욕은 없었다고 본다. 즉, 번외활동의 의미보다는 외국 단체들의 연주형태, 운영형태 등을 살펴보고, 해당 단체나 지역의 지휘자 등과의 컨텍, 부수적으로 자연스럽게 악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여건만들기가 중요한 지향이었던 것 같다. 외국의 지휘자를 객원으로 모시면 일단 그 지휘자분이 악보를 가지고 오시니 그 자체만으로도 여러 가지 상황이 정리되고, 악보를 공유하게 되는 잇점이 있었다 하신다. 돌이켜 보면 고맙고 소중한 추억들이다.   

다섯째, ‘한국적 관악운동’의 효시로서 역할을 다짐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윈드앙상블이라는 공연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지만 한국적 관악운동을 한다는 차원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긍정화노력을 하고 있었다. 소명감이었다. 그 운동을 통해 국제간 교류를 열심히 하고, 그곳에서 또 배우고, 의지하고, 베풀기도 하는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기성단체들이 걸어가지 않았던 길을 한라윈드앙상블팀이 먼저 걸어야만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취주악, 브라스, 윈드앙상블로서의 프로들만으로 구성되지 않은 사설 기성단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라윈드앙상블이 처음이니 선도적 역할을 했어야만 했다. 특히 일본과의 교류는 더욱 그렇다. 일본에서도 사설 취주악단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고, 모든 여건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1200여개가 넘는 사설 공연단체들이 있어서 그들 서로의 소통에 따라 얻게되는 노하우가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악보구하기와 저작료를 지불하는 시스템이 안정적이었다는 점 또한 참고할 일이다. 일본의 경우, 고정적 연습장을 보유하기는 우리보다 더 어렵고, 대도시 중심지의 공연장을 아마츄어 단체들이 임대하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중에도 연습

공간을 빌리게 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여러 섹션으로 나누어 활용하는 측면도 교훈적이었다. 도심 중심지에서 공연을 못하면 인근 교외도시(공연장은 좋음)의 공연장을 찾아가서 공연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 사례를 들으면서 한라윈드앙상블은 배우기도 하고, 나아진 한국상황에 대해 자긍심도 느끼면서 국제교류의 걸음을 걸어오게 된 듯하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한라윈드앙상블이 일본과의 국제교류 활동이 지속적일 수 있었던 것은 김승택 현 음악감독의 리더쉽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김승택 지휘자의 국제교류와 관련한 리더쉽 요소들로는 1) 국제교류활동에 순수한 존재양식적 접근,  2) 다양한 외국음악인과, 물론 다양한 단체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노력, 3) 미리미리 준비하는 계획적 접근, 4) 소통할 수 있는 일본어 소양의 출중함, 5) 한국적 관악운동을 펼치겠다는 소명의식의 충일함 등이었다고 하겠다.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한라윈드앙상블 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