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 (6)올레길 위의 '풍경'

2024-07-22     편집팀
사진제공=오정자

“쇠·소·깍!” 소리 내어 불러본다. 힘이 넘치고 무언지 결연함이 느껴지는 쇠소깍은 물빛이 연푸르고 깊었다. 이곳은 한라산에서부터 이어지는 물길이 바다로 흘러드는 지역으로 서귀포와 남원읍 사이에 있는 효돈천 하구다. 지중해 바다가 아름답기로 이토록 신비롭고 오묘할까. 우윳빛을 살짝 품은 비취색 물빛만큼 이름 또한 평범하지 않다.

‘쇠’는 효돈마을의 옛 이름 쇠둔에서 유래했고, ‘소’는 웅덩이를, ‘깍’은 강물이 바다를 만나는 하구를 이른다. 이름만 들어도 어디인지 알법한 흥미로운 제주말이다. 쇠소깍은 날씨에 따라 물 색깔이 달라진다. 마침, 햇살이 내리고 있어 최상의 빛깔로 차려입은 쇠소깍을 눈에 담는다. 깎아지른 기암이 에메랄드 물빛을 호위하듯 둘러섰고 숲은 우거져 풍성함을 더한다. 그 아늑한 소 위에 여기저기 작은 배가 물살을 가르며 떠다닌다. 배 안에 마주 앉아 정담을 나누는 젊은 청춘들은 이들을 굽어보는 숲처럼 푸르디푸르다.

구명조끼를 갖춰 입은 대여섯 사람을 태우고 ‘테우’도 미끄러져 간다. 제주에만 있는 전통 뗏목이다. 원시적인 고깃배의 하나이면서 우리 선박 역사에서 중요한 민속 유물이란다. 통나무 열 개 정도를 엮어 만드는데 만들기도, 운행하기도 쉬운 편이다. 원래의 쓰임새와 모습은 약간 달라졌지만, 그 전통이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테우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해진다. 줄을 잡아당기며 천천히 나아가는 풍경에서 느림 속 힐링의 여유가 풍긴다.

올레 7길을 걸을 참이었다. 제주 풍광을 누리는데 무게를 뒀던지라, 부지런히 완주하기보다는 그저 싸묵싸묵 걷기로 했다. 올레길에 서면 ‘놀멍, 쉬멍’ 아닌가. 그 길 들머리에 있는 ‘바닷가 하얀 집’ 펜션에 짐을 풀었다, 우람한 야자수가 쭉쭉 뻗은 드넓은 정원을 슬렁슬렁 걸으며 몸을 달랬다. 어느덧 붉은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정원 쪽문을 나서니 올레길로 이어졌다. 나무에 기대서서 작은 섬 너머 수평선에 시선을 두었다. 뭍을 향해 달려오던 저물녘 바다는 마침 구름을 벗어난 희부윰한 달빛에 몸을 뒤챘다.

이른 아침 올레길로 나선다. 서귀포 바다는 쇠소깍의 물빛과는 다르다. 잉크 빛 웅숭깊은 몸짓으로 움씰움씰 너울거린다. ‘풍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고 동창 여덟이 소풍 온 아이들처럼 한 줄로 걷는다. 싱그러운 자연과 바다 내음이 이들의 설렘에 섞여 제주 바람에 흩날린다.

사진제공=오정자

걷다 보니, 가장 아름답다는 너덜 길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 해안가 암벽에서 떨어지고 부서져 내린 돌덩이가 투덕투덕 쌓인 길을 뒤뚱이며 걷는다. 바위 또한 파도와 바람에 부대끼며 긴긴 생멸의 과정을 겪어내는 중이려니 싶었다. 울퉁불퉁 현무암 바윗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다. 갑자기 덮칠 듯 솟구치는 파도에 놀라 움찔거려도, 손에 잡힐 듯한 바다와 나란히 걷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넓적돌을 찾아 철썩대는 바다를 향해 잠시 앉는다. 바다는 쉴 새 없이 바위를 움켜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닿을 듯 닿지 못하건만, 바다는 뭍으로 오르고 싶어 저리도 안달하는 것인가.

문득, 최민자 수필가의 유려한 글, 〈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길은 애초 바다에서 태어났다. 뭇 생명의 발원지가 바다이듯, 길도 오래전 바다에서 올라왔다. 믿기지 않는가. 지금 당장 그대가 서 있는 길을 따라 끝까지 가 보라. 한끝이 바다에 닿아있을 것이다.” 그랬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이 길의 시작이요, 먼 곳을 돌아온 길이 바다와 만나 소멸하는 곳도 이곳 아닌가.

산다는 것은 길을 따라 헤매는 것의 연속이랄까. 길 끝에는 무엇이 있으려나, 희망과 갈증으로 닿은 그곳에 선물처럼 웃음보따리가 놓였기도 했지만,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가시덤불이 도사리고 있기도 했다. 뒤돌아설 수 없는 그곳에서도 주춤거리며 나아가야 했고, 모퉁이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던 길들. 길은 길로 이어진다고 했던가, 만났다가 흩어지고, 구부러지며 이어진 길 위에서 바다를 만난다. 길이 지고 나는 곳. 그래서 허허로운 바다를 바라보면 시름을 잊는 것일까. 무념의 상태로 걸음을 떼는 순간 또 하나의 길이 잉태되는 것이므로.

목이 마를 즈음 만난 오아시스 같은 쉼터가 우릴 반긴다. 백년초를 넣어 만들었다는 막걸리는 ‘한잔 어때, 응?’ 불그레한 얼굴로 눈웃음을 헤헤, 흘린다. 찰떡궁합 백년초 부침에 곁들이니 너덜을 딛고 온 발바닥이 찌르르 울린다. 10대부터 내길 네길 곁눈질하며 더불어 지내 온 ‘풍경’, 친구들은 올레길을 걸으며 저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쇠소깍의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어 그 존재가 사위는 게 아니라, 바다에 첫길을 내는 강물이었을 터. 다시 길 위에 선 우리 또한 물빛 고운 쇠소깍이기를…. 가라앉은 막걸리를 휘휘 저으며 꽃잎처럼 둘러앉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수필가 배공순>

사진제공=오정자

배공순의 두근두근 제주 엿보기는...

나만의 소박한 정원을 가꾸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하고 깊은 사유로 주변을 바라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보태려 했던 것은, 문화재와 어우러지는 봉사활동이었다. 창경궁을 둥지 삼아 ‘우리 궁궐 지킴이’로 간간이 활동 중이다.

이곳저곳을 둘레둘레, 자박자박 쏘다닌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올레를 걷고 오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사색의 오솔길을 오가며 사람 내 나는 이야기, 문화재나 자연 풍광, 처처 다른 그 매력을 소소하게 나누고 싶어 글을 쓴다.

<약력>

2016년《수필과비평》등단, 한국수필문학진흥회원, 제주《수필오디세이》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