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단체, 강경진압 주도 박진경 추도비 앞 '올바른 안내판' 설치 청원

"최소 역사적 사실관계 적시한 안내판이라도 설치해야"

2023-03-10     홍창빈 기자
제주민예총

제주4.3당시 제주도 주둔 9연대장을 맡아 무차별적 강경진압 작전을 주도한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내 4.3단체 및 시민사회단체가 최소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4.3안내판이라도 추도비 앞에 세울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주4·3연구소, 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등 4·3단체들과 제주주민자치연대, 제주통일청년회, 제주평화인권센터 등 30개의 시민사회단체는 10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 '박진경 대령 추도비 올바른 4·3안내판 설치에 대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청원서에서 “대다수 4·3희생자·유족 입장에서는 강경진압의 책임자 중 하나인 박진경 대령을 추도하는 비석이 제주 땅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역사의 후퇴”라며 “행정당국 차원에서 올바른 4·3안내판 설치 등을 통해 다음세대를 위해 4·3에 대한 역사를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4·3진상조사보고서를 비롯한 객관적인 역사로서도 박진경 대령은 추도의 대상이 아닌 단죄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실제 4·3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진경 연대장이 무모한 강공작전을 폈다는 주장은 그가 연대장 취임식 때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했다는 전임 연대장의 증언 등을 토대로 보면 강경진압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또 "4·3평화기념관 전시물에서도 '박진경 신임 연대장은 브라운대령의 명령에 따라 강경작전을 벌였다. 6주간 6천명이 체포됐다. 중학생까지 포함한 무차별 검거작전이었다. 미군정은 이 체포작전을 성공적 작전으로 평가하면서 제주에 부임한지 한달도 채 되지 않는 박진경 연대장을 대령으로 특진시켰다'고 적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단체는 "하지만 박진경 추도비에 대한 제주도의회 의견에 대해서도 행정당국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에서조차 박진경 추도비에 대한 철거 주장에서부터 추도비 앞 객관적 사실을 적시한 4·3 안내문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이에 대해 집행당국은 도의회가 그동안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이러저러한 구실을 대면서 회피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행정당국은 4·3유족회를 비롯한 4·3단체와의 사전 교감이나 공유된 의견 없이 지난해 박진경 추도비에 대한 무리한 이설을 추진하면서 4·3 단체들의 반발 등 사회적 갈등만 양산시킨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바로 잡는 4·3 안내판 설치는 마땅하게 이행해야 될 최소한 행정행위"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근본적으로 4·3 학살의 주역 중 하나인 박진경 추도비를 제주 땅에 다시 기억하라고 양지바른 곳으로 옮긴 일은 타당한 행정행위가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미 박진경 대령과 관련해서는 국립 현충원에 비석과 그의 고향인 남해 군민공원에 동상까지 설치되어 있으며, 창원에서 위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학살의 땅에서 그를 추도하는 비석이 남겨져 있다는 것은 역사의 상식의 관점에서 동의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박진경 대령 추도비는 당초대로 지장물로 철거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면서 "다만, 정부의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를 비롯해 객관적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4·3 안내판 설치 등을 통해서라도 최소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일은 행정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할 최소한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이에 우리는 제주도의회가 화해와 상생은 진실 된 역사 위에서 피어난다는 의미를 되살려 청원의 내용대로 행정당국이 즉각적으로 이행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나서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당시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9연대장으로 부임한 후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주도한 인물이다.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 명을 모두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하는 등 4.3 당시 도민들을 강압적으로 체포하고 강경진압을 지휘했다.

당시 박 대령에 의해 제주도민 6000명 이상이 끌려가거나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임 한 달 만인 1948년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부하들에게 암살당했다. 

그 동안 4·3 단체를 비롯해 제주도의회에서도 박진경 추도비 철거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나 제주시 충혼묘지에 설치돼 있었던 박진경 추도비는 지난해 제주국립호국원이 개원하면서 한울공원 인근 도로변으로 이전됐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