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의 발자취, 역사적 의미를 찾아서
[기고] 고종석 제주특별자치도 해양수산국장
지난주 제주해녀 34분과 함께 독도를 방문하였다. 경상북도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 행사는 50~60년대에 제주해녀가 매년 수십 명씩 2~3개월 독도에 머물며 물질을 하면서 의용수비대와 함께 독도를 지켰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어서 제주해녀사 뿐만 아니라 우리 국토수호의 역사적 관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행사다.
특히 이번 방문은 당시 독도에서 실제 물질을 하며 생활했던 네 분이 동행을 하셔서 당시의 증언과 인터뷰가 더해져 현장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가는 일정은 현재도 멀고 지난한 과정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60~70년 전에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망망 바다에 의탁하여 12~13시간 무동선 배를 이용하여 독도에 닿은 해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졌다.
제주해녀들은 새로운 어장을 찾아 생명을 무릅쓰고 독도에 도착한 후 물이 솟는 동굴이 있는 서도에 머물면서 미역 등을 채취하며 의용수비대와 함께 독도에서의 실효적 지배를 이어나갔다. 풍랑이 거세 보급선이 접안하지 못할 때는 보급품을 날라주고 식수가 떨어져 곤경에 처했을 때는 서도 물골에서 물을 실어 동도에 살던 의용수비대원들에게 전달하였다.
해녀들이 채취한 미역 등 해산물은 의용수비대원들이 운반 판매하여 수익을 공유하였고 이러한 수익금은 의용수비대의 경비로 사용될 수 있었다. 이렇게 물과 식량이 부족하고 경비가 지원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용수비대가 장기간 독도 수호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제주해녀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이렇게 제주해녀는 의용수비대와 함께 독도지킴이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이러한 활동과 역할은 당시의 사진과 기록 등으로 모두 입증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의용수비대의 경우 관련법이 제정되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고 연금이 지급되고 있는 반면 제주해녀의 역할은 거의 알려지지 아니하였고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독도 방문은 그 중요한 역사적 의미 못지않게 많은 과제도 남겼다. 우선은 고령인 해녀 분들의 기억과 증언을 채록 보전하고, 관련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우리시대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관심은 인식을 주도한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뿌리에 관심을 갖고 기억해내고 보전하고 새로운 차원의 인식으로 전환시킬 때 우리의 미래는 열린다고 생각한다. <고종석 / 제주특별자치도 해양수산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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