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기고]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물을 마신다. 커피를 내리고, 그 사이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침실에 기대어 몸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주로 이 시간에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산문집을 읽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아니 미룰 수가 없어서 집어 든 책이 『소금꽃나무』였다. 실은 책을 두고도 읽을 수가 없었다. 읽기가 두려웠다. 무심코 친구와 함께 퀴퀴한 책 냄새로 가득한 두류도서관 구석에서 발견한 『전태일 평전』을 읽고서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흔히 TK 지역이라 불리는 대구의 구석, 그러나 넓고 예쁘고 오래된 공원, 어린 시절부터 무지개를 좇아 분수대를 찾아 연못을 구경하러 갔던 그곳, 탐이 나도록 예쁜 인어공주 그림 동화책이 있는 그 도서관에서, 나는 꿈도 희망도 기쁨도 절망도 놓아버렸다.
알고 있던 세상은 허상이었다. 학교에서 배우고 집에서 엄한 아버지의 가르침과 교회에서 성경 강독으로 듣던 세상은 모조리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곳이 이 세상이었다. 나는 그걸 참이라고 믿고 그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세상을 희미하게 바라보며 낭만을 꿈꾸고 형이상학을 논하는 국문학도가 싶어 했던, 보수적이고 착실한 학생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훅하고 끼쳐오던 오래된 냄새는 마치 흙 같기도 했고 땀내 같기도 했다. 자리에 앉지도 않고 책장에 기대어 단숨에 읽어 내려가며 바닥으로부터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이질감은 현기증이 되고 마침내 오열이 되었다.
절망조차 가질 수 없는 우울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문학소녀라는 정체성으로 인한 낭만적인 우울감이 다소 있었지만, 누구보다 경쟁심과 자존심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쾌활한 성격이었다. 부유했던 집안이 나날이 가난해져 갈 때도, 마당이 넓고 과실나무와 꽃나무와 다양한 식물이 가득했던 집, 커다란 라일락 나무에 걸터앉아 사과를 베어 물고 책을 읽던 그 집 부엌보다 더 작은 안방이 있는 집으로 차례차례 이사해야 할 때도, 다른 학교와 달리 내가 다니는 학교들만 교복을 입지 않아 오빠 옷을 물려 입던 사춘기 시절에도 나는 절망하지 않았었다. 가난해지는 게 부끄러움과 불편함과 슬픔을 동반한다는 것을 체득하여 욕구보단 포기를 배우며 살아가면서도 자존심 강한 성격에 내색 한번 한 적 없었다. 잘 모르는 친구들은 내가 부자인 줄 알 정도였다. 차라리 절망이 있는 우울은 고칠 수가 있는 병이었다. 키르케고르의 유명한 저서처럼 가장 무서운 것은, 절망의 근원을 알 수 없이 절망으로 치달아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는 것이다. 매일매일 죽어가면서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낸다는 것은 마침내 모든 감정을 소멸시키는 방법뿐이었다. 그 세월이, 참으로 길었다.
그런데 소금꽃나무라,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고된 노동에 절여 땀이 만들어낸 등판에 핀 소금꽃나무라……,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다가올 고통이 예감돼서 책만 봐도 저릿하게 밀려와서 만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멀리, 오래 저 책을 밀쳐두고만 싶었다. 그런데 지난겨울, 김진숙 지도(김진숙 지도위원은 본인이 김지도로 불리길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래에서부턴 김지도로 호명했다.)가 다시, 길을 걷는다고 했다. 매서운 바람보다 더 냉혹한 현실에서 이 나라 사회적 약자들이 추위를 가릴 천막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농성을 하는 곳, 청와대를 향해 걷는다고 했다. 해고 노동자 복직, 복직 없는 퇴직은 없다며 멀리 저 남단 끝에서 남한 북단에 가까운 서울까지 걸어 걸어서 오고 있다고 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이 되겠다던 대통령의 선거 구호는 ‘나중에’에 휩쓸려 지워진 지 이미 오래였다. 절망한 사람들은 절망을 절망으로 두지 않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 곡기를 끊고 절을 했다. 모여서 노래를 하고 밥을 나누었다. 그곳을 향해 걷는 걸음이 너무나 빨라서 함께 하루라도 걸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합류해서 연대하기 위해 김지도의 발걸음은 뛰는 듯했다고 한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애가 타는 와중에, 어머니 병간호 중이었던 나는 가끔 동조 단식을 하고 매일 108배를 보탰다. 뇌 수술한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집안이 너무 따뜻해서 반소매 옷을 입고서 절을 하면 땀이 나는 게 한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웠다. 절 한 번에 간절함을 담아 넣고 마음의 길을 트면서 부디 함께 걷는 모든 이들이, 단식 투쟁 중인 모든 이들이, 청와대 앞 농성장을 지키는 모든 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고 빌었다. 하지만 ‘든든한 대통령’은 그들의 길을 막아섰고 천막을 거부했으며 대화를 잘라버렸다. 도시락과 초코파이가 나뒹굴고 수도와 전기를 끊었다. 참담해서 눈물만 나는데 노동자들은 그 와중에도 웃고 있었다. 절망이 강력하게 포효하는 그 가장자리에서 두려움과 슬픔에 흐느끼는 나와 달리, 절망 가장 깊은 속에서 절망과 하나가 된 사람들이 웃으며 걷고,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절망이 없는 우울은 치유될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서 저토록 절망하는 이들은, 그래서 절망이 돼 버린 이들은 오히려 치유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어느 날, 왔다. 절망을 기필코 집어삼키기 위해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 추위와 배고픔에도 온몸으로 버티며 맞서는 이들, 마침내 이 땅의 투사가 돼야 했던 마음을 어설프게 슬퍼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이 긴 세월을 관통하고서야 조금 알게 됐다.
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책장에 오래 꽂혀 있던 『소금꽃나무』를 펼쳐 들었다. 아침마다 읽는다. 읽으면 심장이 서서히 썰리는 고통을 느낄 때가 대부분이라 한 꼭지 이상을 읽지 못한다. 아침의 시작은 절망이 되었다. 때마침 어제는 노동절이었다. 김지도는 내게 절망을 선물하면서 손을 흔든다. 이젠 내 인생 구호가 돼 버린 말, 가슴 아리고 벅차고 행복해서 눈물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말.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웹매거진 멍MUNG에도 실려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