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속살을 보는 것

제주 4.3을 기억하며 [기고]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2021-04-04     한정선

제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비는 지속하고 있었다. 처음 제주살이를 시작한 곳은, 육지에서 살면서 으레 생각보다 가장 안전하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저렴한 학식이 있어서 입맛이 없을 때 찾기 좋은 대학가가 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제주의 풍광과 제주 중산간의 맑고 아름다움을 동시에 만끽하면서 풍요로운 제주살이를 편리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라 오판했다.

중산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평지보다 조금 높은 지대를 의미하는데 그렇다 보니 병풍처럼 놓인 한라산을 중심으로 날씨는 변덕이 심했다. 흐리다는 예보에도 비가 내렸고 눈이 내렸다.

처음 원룸에 기거하며 그 빗속을 뚫고 도착하는 이삿짐들을 정리하는 내내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날을 질색하는 개인적 성향에선 답답할 노릇이었다. 조금 내려가면 편의점이 있었지만, 후문 쪽이라 밥집과 술집은 있어도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마실 때도 마땅찮았다. 식당가들은 대학 구내식당을 포함해 놀랍도록 일찍 문을 닫았고 따라서 퇴근 후 밥 먹을 데가 없었다. 편의점 도시락은 지겹도록 먹었다. 가로등을 제외하면 저녁이 내리면 간판 불 꺼진 곳이 대부분이었다. 겨울에는 더했다.

문제는 약국도 가까이 없고 큰 마트도 가까이 없다는 거였다. 약국에 가거나 마트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나가면 스타벅스부터 온갖 커피전문점이 즐비하고, 약국들이 건물마다 있고, 대형마트들이 곳곳에 있는, 도시 아파트 전형의 삶을 오래 살아왔던 입장에선 보통 난감한 게 아니었다. 업무에 치이고 몸은 약해서 주말에 멀리 나가서 물건을 사 온다는 것은, 그것도 뚜벅이라 버스를 타고 다니며 무거운 장을 보고 갖고 온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최대한 버리고 버려서 최소한의 짐으로 이사를 해온 터라 사야 할 물건은 넘쳐났다. 제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버스는 자주 오지 않았고 자주 갈아타야 목적하는 곳에 갈 수 있었다. 아주아주 큰 섬에 인구 70만이 채 안 되는 이곳은, 내겐 말로만 듣던 광활한 대륙의 일상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태에 비는 아흐레를 내렸다. 쉬지도 않고 내리는 비를 보면서 꿈꾸던 제주살이의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우울증만 기승을 부렸다. 제주살이를 축하하기 위해 친구가 육지에서 날아왔을 때, 그가 운전을 잘한다는 것이 축복이었다. 같이 대형마트에 가서 그간 못 샀던 무겁고 꼭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길을 헤맸다. 길을 헤매면서도 친구와 달리 나는 드넓은 대지와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했고, 비가 아래쪽에는 간간이 내렸을 뿐 내내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러다 도착한 곳이 바로, 내가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처음 가게 된 곳, 바로 《4.3 평화기념관》이었다. 칠월 말인데도 무척이나 추웠다. 태풍의 징후로 여겨지던 바람이 제주의 일상 바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러고도 조금 더 지나서여서, 이렇게 흐린 날이라 해도 칠월인데 이렇게 추워도 되냐며 서둘러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그곳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생각보다 가벼운 기분으로 입구에 들어섰다.

내가 가벼운 기분이라 했던가. 입구부터 느껴지는 중압감은 조금 전 느낀 추위와 다른 서늘함으로 몸에 붙었다. 예정하지 않았지만, 제주에 오면 가장 먼저 들르고 싶었던 곳이라, 나는 아주 천천히 글 하나하나 전시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읽으며 걸었다. 참담했다. 당황스러워서 핸드폰을 열어 4.3 민주항쟁을 검색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도의 내용만 적혀 있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역사는, 네가 알고 있는 게 얼마나 교묘히 왜곡돼 있는지 낱낱이 드러내고 있었다. 지식의 얕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과서에서 배워온 것들이, 육지것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서술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 소외와 차별과 무심으로 배제해온 것인가 하는 것들에 대한 증언이었다. 도민으로 살고 있지만, 우리가 그간 자행해온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공포와 슬픔을 참다가 결국, 다 보지 못하고 기념관을 빠져나왔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잠시 기대있다가 기억의 나무 같은 게 있어서, 거기에 메모를 남겼다. 언젠가 네이버 블로그를 잠시 할 때 만나게 된 친구가 제주 출신이었는데 짧게 남긴 블로그 글에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잠시 울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엇이 고마운가……. 그간 우리는 제주를 우리나라라 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쓰라렸다.

한정선

그 후, 누군가 제주를 오면 어디를 가면 좋을지 물을 때마다 《4.3 평화기념관》과 거기 있는 공원에 들르라고 말한다. 그 후에 제주의 풍광을 보면 우리가 말하는 낭만성이란 것의 가벼움을 알게 될 것이고, 제주의 속살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부디 꼭 가 봐달라고 당부한다.

이제는 바다 가까이 내려와서 도시의 편리함을 만끽하면서도 방에서도 조막처럼 보이는 바다를 볼 수 있다. 길을 걸으면 한라산이 친근하게 웃는다. 내가 사는 곳 근처는 한 길을 따라 쭉 동백이 피어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한 길을 따라 벚꽃이 쭉 들어서 있다. 이 매혹적인 풍경 속에서, 그래서 더 잔인했을 사월을 생각한다. 어제는 4.3이었다. <한정선 / 웹매거진 멍MUNG 작가>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웹매거진 멍MUNG에도 실려 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