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 미쳤어!,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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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미쳤어!,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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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콰이강의 다리'와 '현실 혼돈', 그리고 '패거리'

사상 유례없는 극도의 혼탁함으로 얼룩진 6.2 지방선거.

제주에서의 6.2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이들마다 "사상 최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주도가 미쳤다"고들 한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그 영예는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판, 애꿋은 유권자들은 차분히 정책비교를 할 여유조차 없다.

일방적인 비판들만 쏟아질 뿐이다. 자신의 정책은 무조건 옳아야 하고, 상대의 정책은 그 의미를 헤아리기 보다는 무조건 나빠야 한다는 듯, 연일 '큰 목소리 내기'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혼란을 부추기는 가장 큰 문제는 '패거리 정치'를 부추기는 소위 오피니언리더들의 처세다. 최고의 지성임을 자부하는 교수들까지 유력 후보군에 줄을 서서 '미친 듯이' 일방적인 외침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부 그릇된 교수들의 행동에,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줄서기하는 모습은 각계각층으로 열병처럼 번져나간다. 줄 서지 않은 선량한 시민들이 애처로워 보일 뿐이다.

민주화운동 세대 혹은 민주세력을 대변한다는 이들도 유력후보군과 깊숙히 끈을 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이들 중에서도 그럴듯한 '명분'을 제시하며 유력후보군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들은 작금의 정치현실을 추악하게 만들고, 선거문화를 수십년전으로 되돌리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잊은채, 지지하는 유력 후보군의 당선을 위해 '행동대장'을 자처하고 있다. 캠프 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나, 외부에서 '줄서기용 기자회견'을 갖는 이들이나, 그들은 제주의 발전이 아니라 제주를 망치고 있다.

제주정치를 10년, 20년 후퇴시키는 장본인들이다. 현실을 왜곡시키고 있음에 다름없다.

교수들까지 '줄서기'의 명분으로 그릇된 논리를 설파하는데 나서고 있다. 학자적 양심은 이미 내버린 듯 하다. 심지어 정당의 당원들도 자당 후보를 뒤로하고 유력후보군에 줄서기를 하는 괴이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왜 특정 유력후보군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그들은 '차선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제주현실에 대한 자괴감을 갖게 한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면 낼 수록, 한발치 물러서 선거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은 자괴감과 더불어 허탈감, 정치 냉소주의 속으로 빠져든다.

과거 진보와 보수, 혹은 민주와 반민주 구도로 대립했던 군사정권시절의 선거보다도 더욱 혼란스럽다. 유력 후보군 캠프에 합류한 이들의 성향은 그야말로 '짬뽕'이다. 정체성의 혼란이다.

그 정체성의 혼란은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를 연상케 한다.

'휘파람 행진곡'으로 더욱 유명한 이 영화는 2차대전 중 타이의 밀림 속에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 잡혀온 영국군들이 일본군의 계획에 의한 콰이강에 다리를 건설하는 내용을 소재로 한다.

다리공사에 포로들을 투입시키는 문제를 놓고 영국군 장교는 일본군과 자존심을 걸고 항거한다. 투철한 군인 정신과 진실한 인간성의 갈등으로 마찰을 빚는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포로 신분인 영국군과 일본군의 정체성은 확연히 구분됐다. 그러나 영국군 단독적으로 다리공사를 해내고, 완성된 콰이강의 다리를 바라보는 영국군 장교는 그것이 연합군에 피해가 됨은 잊어버린채 대견해하고 흡족해 한다.

그러다가 다리가 개통되고 열차가 들어오는 순간 영국군 장교의 눈에는 다리에 폭약 점화장치가 연결돼 있는 것을 발견한다.

"미쳤어"라는 말을 내뱉으며 폭약 점화장치의 도화선을 따라가는 영국군 장교.

자기가 완성한 다리가 적을 이롭게 한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영국군으로서의 포로임을 그 순간 잊어버리고, 오직 다리만이 대견하게 보여 그 폭파장치를 제거하려는 영국군 장교.

결국 다리 폭파를 위해 몰래 침투한 아군인 영국군 유격대와 장교는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폭파를 위해 침투한 유격대 대원들이 하나둘씩 일본군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마지막 남은 영국군 장교는 뒤늦게야 정신이 들었는지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라며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폭파 장치의 누름장치 위로 쓰러지며 결국 콰이강의 다리는 폭파되었지만, 영웅적인 군인으로서의 명예는 너무도 인간적인 약점으로 인해 한 순간에 다리와 함께 날아가고 만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보여준 영국군 장교의 아이러니한 행동은 왜 나왔을까?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라고 뒤늦게서야 현실을 깨닫는 그 인간적 나약함은 '집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지금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행해지는 유력 후보군을 중심으로 한 추악한 선거문화 또한 집착과 변조된 정체성 혼란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선거캠프에 합류하기 전 가졌던 '최초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왜곡에 왜곡을 반복하는 현실.

6월2일 투표가 끝나고 나서야,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라고 읊조리지는 않을지 모를 일이다.

선거일을 코앞에 둔 6월1일 하루만이라도, 냉정을 찾고 유권자들에게 혼란이 아닌 현명한 판단을 줄 시간을 주자.

선거운동 일련의 과정이 "지나쳤다"는데 동의한다면, 마지막 유권자들이 차분하게 판단할 시간을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유권자들이 '소신 투표'를 하도록 단 하루라도 여유를 주자. <헤드라인제주>

<윤철수 대표기자 /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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