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人제주] (5) '미로공원' 창립자 더스틴 교수
상태바
[세계人제주] (5) '미로공원' 창립자 더스틴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더스틴'과 '미로공원'을 입력하면 많은 뉴스와 블로그, 카페 등이 검색된다.

검색 결과의 대부분은 김녕 미로공원을 만든 사람이 프레드릭 H. 더스틴(80, 미국) 교수라는 것과 그 공원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2003년부터 제주대학교에 거액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는 소식도 해마다 들려온다.

이렇듯 미로공원을 지어 관광객들에게는 기쁨을 주고 제주대에는 도움을 주는 더스틴 교수를 사람들은 흔히 '좋은 일 많이 하는 외국인'이라는 막을 씌워 놓곤 했다.

노(老) 교수의 제주사랑 이야기는 이미 제주에서 알만 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제주관광에 대한 그의 끝없는 고민, 그리고 그의 집념으로 완성한 미로공원을 통해 얻어진 수익금을 제주대 후학양성을 위해 쾌척하는 나눔의 미덕,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아낌없는 후원 등.

지난 14일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김녕 미로공원에서 만나 한꺼풀 벗겨본 더스틴 교수는 현지 출신 제주인 보다도 더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의 현안을 꿰뚫는' 제주인이었다.

#김녕 미로공원...그리고 요트사업

인생의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내고 있고 얼마전에는 제주에서 팔순을 맞았다. 40대에 제주와 인연을 맺은 후 어느 덧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더스틴 교수와 한국과의 첫 인연은 미8군 제7연대소속 연합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1~1979년 제주대 관광영어 강사와 1982~1994년 제주대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교단을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더스틴 교수' 하면 그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하는 교수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1995년부터 5년 넘게 제주도청에서 공무원 영어교육과 국제협력 등에 많은 공헌을 했다.

제주대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때인 1982년, 중대한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남은 삶을 제주에서 살기로 결정했는데 그 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직업도 없었는데 여기서 산다면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대신 저는 지금 김녕 미로공원이 서 있는 이 땅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 우연히 한 지리학 잡지를 보게됐어요. 거기서 미로 디자니어인 애드린 피셔의 글을 읽었죠."

그 후 그는 애드린 피셔에게 미로 디자인을 의뢰했고, 김녕 미로공원은 그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1987년 11월 25일 첫 나무를 심기에 이른다. 1995년 완성돼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게 된 미로공원은 이날도 미로 끝에 달린 종을 치며 미로탈출을 자축하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프레드릭 H. 더스틴 교수 <헤드라인제주>

미로공원이 성공가도를 달리자 그는 요트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제주에서의 요트사업은 충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콩에서 출발해 대만, 이키시마를 지나 제주를 경유해 다시 되돌아 가는 등 제주는 중간 경유지로 최적지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특히 러시아의 부호들은 추운 러시아를 떠나 요트를 타고 제주에 오고 싶어 한단다.

하지만 제주는 4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음에도 보트를 델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한 게 현실.

그래서 그는 2년 전 2억여 원을 투자해 김녕에서 요트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밝히기 꺼려한)사업 진행상의 문제가 발생해 지금은 발을 뗀 상태라는 그는 언젠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면 다시 시작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다시 시작하기에 앞서 그는 요트사업의 성공을 위한 방안을 하나 제시했다.

정부나 도정 차원에서 돈을 투자해 요트사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개인법인 등에 돈을 빌려줘 그들이 이끌어야 한다는 것.

그는 요트사업 이야기를 시작으로 정부, 제주도로부터 개인에게의 'Loan(대출)'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비양도 케이블카? NO!...한라산 케이블카? YES!

더스틴 교수와의 대화가 있고 난 다음이지만 협재해수욕장과 비양도를 잇는 케이블카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심의가 '보완 후 재심의'하기로 결정됐다.

비양도 케이블카와 관련, 그는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거친 표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 표현을 완화해서 글로 옮김을 밝혀둔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비양도 케이블카는 협재 바닷가로부터 비양도까지의 아름다운 해양관경을 망치고 환경을 죽이고 말겁니다."

프레드릭 H. 더스틴 교수 <헤드라인제주>
또 다른 논쟁의 대상인 한라산 케이블카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이며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영실에 케이블카가 들어서게 된다면 누가 볼 것이며 얼마나 많은 나무가 주차장을 위해 잘려 나갈까요. 영실에 놓여서는 절대 안 됩니다"라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케이블카를 좋아하고 도입을 원하지만 지금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더스틴은 어디에 케이블카를 놓고 싶어할까요? 그건 바로 돈내코부터 윗새오름까지입니다. 이 구간은 케이블카를 타고 감상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고 타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것은 비양도의 그 것과는 달리 경관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

대화가 케이블카로 흐르자 그는 또 다시 'Loan(대출)'을 언급했다.

케이블카가 도입되더라도 제주도정이나 시정은 케이블카에 쓰일 돈을 빌려줄뿐 그 소유권은 제주도민이 가져야 한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그 이유가 자못 궁금해 물었지만 일단 자기 얘기 더 들어보라며 그의 또 다른 'Pet peeve(누군가가 특히 싫어하는 것)'을 풀어놓았다.

#"돼지 똥, 이거 언제까지 이런식으로 처리할겁니까?"

얼마전 제주발전연구원의 '제주지역 양돈분뇨의 적정관리를 위한 방안 연구' 결과가 보도됐다.

결과에 따르면 제주 양돈분뇨 처리시설의 처리량이 발생량의 절반에도 못 미처 악취발생 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됐다.

"20년 동안 주장해 왔습니다. 사람의 분뇨를 비롯한 제주에 너무나도 많은 돼지, 소, 닭들의 분뇨는 바이오가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설로 가서 처리돼야 합니다. 이렇게 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 바로 제 두번째 'Pet peeve'입니다."

더스틴 교수는 현재 돼지, 소, 닭 등의 분뇨는 처리시설을 거치지 않고 바로 땅으로 가고 있어 더럽고, 매스껍고, 오염을 일으킨다고 했다. 일부는 바다에도 버려지고 있어 '미친거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는 제주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분뇨가 발효하면서 발생하는 수소, 메테인 등과 같은 가스 상태의 연료를 에너지 소비의 일부로 보충시켜주는 시설이 마련돼야 할 때라는 것. 

그는 처리시설 도입을 정부가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정부는 시설 도입에 쓰일 돈을 빌려주고 전문기술자를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또 나왔다. 정부, 도정의 'Loan(대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또 묻자 이윽고 그는 "지금 제주 사람들은 정부, 도정에서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느냐만을 묻고 있습니다"라며 입을 말문을 텄다.

사람들이 쓰는 모든 돈을 정부, 도정으로부터 원하고만 있는 상황이 이 나라의 가장 큰 실수라고도 했다.

이어 그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묻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라.'

더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세계자연유산, 올레 입장료 3000 곱하기 600만 명은?

끄덕거리던 고개가 다시 더스틴 교수의 입과 눈에 집중됐다.

그는 얼마전 제주도의회 오영훈 의원(제주시 일도2동 갑, 민주당)과 문대림 의원(대정읍, 민주당)이 공동으로 마련한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 보존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에 동의한다며 세계자연유산에 대해 입장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또 올레코스도 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라산, 거문오름, 성산 일출봉 등 모두 입장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레코스도요. 작년에 25만여 명이 공짜로 올레코스를 다녀갔다고 합니다. 트레킹화, 트레킹복 등을 마련하는데 몇십만 원을 들이인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다녀간 올레코스, 누가 고칩니까? 서귀포시랑 군 병력이 고칩니다. 수리에 드는 돈은 우리의 세금이고요."

올레꾼 한 명에게 2000원씩만 받아도 그 돈이 얼마이고, 거기에서 세금을 10%만 걷어도 그게 얼마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 더스틴 교수.

프레드릭 H. 더스틴 교수 <헤드라인제주>
그는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을 제안했다.

"한국인을 포함한 제주를 찾는 모든 관광객은 일단 공항에서 입장권과 비슷한 개념의 티켓을 하나에 3000원 정도의 가격에 구입합니다. 이 티켓이 있으면 세계자연유산, 올레코스를 무료로 갈 수 있는 거죠. 안 사면? 그 곳에 가서 직접 입장료를 내도 되고요."

지난해 관광객 600만 명 곱하기 3000원. 가히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야기가 너무 '돈'으로 흐르는 것 같아 그에게 왜 이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지금 상황을 보면 세계자연유산인 제주땅에 몇몇 사람들이 왕으로 군림해 왕국을 건설하려는 것처럼 보여요. 세계자연유산은 제주 사람들의 것입니다"였다.

자기 스스로를 제주에 살고 있을 뿐인 손님이라 칭하고, 제주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밝힌 더스틴 교수. 하지만 그는 제주의 오름, 산, 경관 등은 아직도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손님의, 외국인의 눈으로 본 지금의 제주는 세계자연유산 관람료 징수, 케이블카 도입, 분뇨 처리시설 등으로 인해 복잡하게 꼬인 하나의 '예쁜 미로'와도 같다. 

우리 또한 알고 있다. 지금 우리네 사회는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이 여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음을.

그런데 이를 어쩌나. 김녕 미로공원을 만든 더스틴 교수조차도 그 미로의 길을 제대로 찾아갈 때가 드물다고 했다.

지금 제주도는 미로의 끝을 보기 위해 수없이 막히고 부딪히는 중이다. <헤드라인제주>

[세계人제주] 연재는...
 
   
▲ 조승원 기자

[세계人제주] 연재는 국제자유도시 제주에 거주하거나 제주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그들의 눈에 비친 제주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아직은 영어 인터뷰에 서툰 면이 있었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진솔하고 따뜻함이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었습니다. 능수능란한 의사소통은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시도가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재를 통하여 제주를 아끼고 사랑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또 직업전선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프로'다운 끼를 발휘하려는 그들의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정말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를 좋아하고, 제주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는 외국인 분들을 알고 있는 독자여러분의 추천을 바랍니다.

기획연재 담당기자 조승원(사무실 064-727-1919, 010-2391-325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